국내 전선업계 대표 기업 대한전선과 LS전선에 대해 협력적 경쟁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양사의 글로벌 경쟁력을 고려할 때 선의의 경합을 바탕으로 한국 전선 산업의 위상을 더욱 높이는데 매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법정 공방 속 대한전선·LS…글로벌선 '파죽지세'
3일 전선업계에 따르면 LS전선과 대한전선은 최근 몇 년간 기술유출과 특허 침해 여부를 두고 공방 중이다.
양사가 미래 먹거리를 두고 벌이는 다툼으로 볼 수도 있지만, 오랜 갈등에 따른 앙금이 '신경전'으로 번졌다는 일각의 해석도 나온다.
이 같은 법적 다툼이 지속되는 가운데도, 양사는 글로벌 전선 시장에서 '슈퍼사이클'로 불려질 만큼 업황 호조에 힘입어 호성적을 거두고 있다.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전력망 교체와 인공지능(AI) 인프라 확장에 따른 해저케이블, 초고압 전력 케이블 등 고부가가치 전선 제품에 대한 수요 폭증이 반영된 결과다. 국내 전선업계에 유례없는 '기회'가 도래한 셈이다.
이 같은 흐름 속 국내 전선업체들은 글로벌 수주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올리고 있으며, 생산기지 확대를 포함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며 시장 주도권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실제 양사는 최근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사상 최대 수준의 수주 실적을 기록하며 글로벌 시장에서의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업계 1위인 LS전선은 지난해 말 기준 6조원이 넘는 수주잔고를 기록했다. 해저케이블 2조7000억원, 지중 초고압 케이블 2조5000억원 등 창사 이래 최대치다. LS전선은 기존의 유럽과 동남아시아 시장을 넘어 미국 시장까지 본격 진출하며 수출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대한전선의 상승세도 눈에 띈다. 지난해 신규 수주 규모는 3조7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연말 기준 수주잔고는 전년 대비 60% 이상 늘어난 2조8000억원에 달한다.
특히 미국 시장에서만 7300억원 규모의 신규 프로젝트를 확보하며 북미 전략이 본격화됐다. 지난해 9월에는 미국에서 초고압직류송전(HVDC) 케이블 시스템을 처음 수주하는 성과도 이뤄냈다. 이는 기술력 중심의 수주 전략이 결실을 맺은 사례로 평가된다.
이같은 북미 시장의 수주 증가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MAGA(미국 우선주의)' 기조에 따른 미국 내 제조업 시설 투자와 그에 따른 전력 인프라 확대와 무관치 않다.
여기에 트럼프는 'AI 초강대국'을 내세우는데, 올해 1월 5000억 달러 규모의 AI 인프라 사업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발표하기도 했다. AI 산업 특성상 안정적인 전력망 구축이 필수이며, 이는 해저케이블·초고압 케이블 수요로 직결될 수 있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시장에서는 미국 해저케이블 시장이 향후 10년간 연평균 30% 이상 성장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이 밀집한 미국 시장은 글로벌 수요의 핵심으로도 자리잡고 있다.
LS전선은 이러한 흐름에 맞춰 미국 버지니아주 체사피크시에 미국 최대 규모의 해저케이블 생산기지 건립에 착수한다. LS전선의 미국 자회사 LS그린링크는 총 1조원을 투입해 초고압직류(HVDC) 케이블을 생산할 계획이며, 2027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공장은 북미 지역 수주 확대의 거점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전선은 국내 생산기지 확장을 통해 대응에 나섰다. 지난해 당진 해저케이블 1공장 1단계 공사를 완료한 뒤 상반기 중 외부망 생산을 위한 2단계 설비 구축이 예정돼 있다. 이 공장은 해상풍력 내부망 해저케이블 생산을 위한 설비다. 여기에 더해 2027년까지 7200억원을 투입해 2공장을 신설하고, HVDC 해저케이블 설비까지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미국 등 현지 생산 능력 확보를 위한 투자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선산업의 미래…'협력'·'경쟁' 균형 필요
포화한 내수 시장에서 LS전선은 1위, 대한전선은 2위다. 하지만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는 상황이다. 2020년만 해도 국내 5개 전선사 매출에서 LS전선이 차지하는 비중은 50%에 달했다. 하지만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점유율은 37.6%까지 떨어졌다. 같은 기간 대한전선이 차지하는 비중은 22%에서 29.3%로 치고 올라왔다.
이 같은 상황 속 일각에서는 전선업계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기업 간 균형 잡힌 경쟁과 협력의 조화가 필수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양사가 세계 시장에서 한국 전선산업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만큼, 불필요한 분쟁 대신 건설적인 협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제인협회 관계자는 "양사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는 만큼, 국내 전선기업들의 화합을 통해 시너지를 창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술 분쟁이 오히려 한국 전선업계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며 "협력적 경쟁 구조를 통한 시너지 창출로 글로벌 시장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전선업체들은 기술 경쟁을 벌이면서도 공동 연구개발(R&D)이나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해 시장을 키우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업계에 따르면 스미토모 전공(Sumitomo Electric Industries) 등 일본과 프리즈미안 그룹(Prysmian Group) 등 유럽 내 주요 전선업체들은 협업을 통한 글로벌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한국 전선업계도 기술 경쟁을 하면서도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전력 인프라 시장의 확대로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친환경 에너지 전환, 스마트그리드 구축, 해저 케이블 설치 등 대규모 전력망 투자에 나서고 있다"며 "전선업계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이 첨단 기술 개발과 생산 역량 확대를 통해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 전선업체들이 무리한 경쟁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협력과 경쟁을 병행하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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