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어 입장!"
29일 오전 3시께 한 유튜브 채널의 라이브 방송에 입장하자 카지노 딜러가 카드를 섞기 시작했다. 딜러 건너편에 앉아있던 스트리머가 손을 뻗어 카드를 받아들자 게임이 시작됐다. 라이브 화면에는 '올인'을 외치는 채팅이 쉴 새 없이 오르내렸다. 이곳은 불법 온라인 도박 '바카라'를 생중계하는 유튜브 채널이다. 스트리머가 게임 한 회차를 마치자 500만원, 1000만원 등 참가자가 내건 판돈 액수가 채팅창 위에 표시됐다.
최근 유튜브상에는 스트리머가 시청자가 건 판돈으로 게임에 참여하는 이른바 '대리 도박' 콘텐츠가 횡행하고 있다. 해당 영상은 동남아시아 일대 카지노에서 송출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실제 게임에 참여하는 듯한 몰입감을 느끼도록 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대리 도박 영상은 심야 시간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활개를 치고 있다. 실제로 같은 날 오전 1시께 한 유튜브 바카라 생중계 방송에는 시청자 670여명이 몰리기도 했다. 스트리머가 실시간으로 바카라를 생중계하며 호응을 유도하자 "게임이 재밌어 보인다", "참여해보고 싶다"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이어졌다.
이 같은 영상들은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시청자에게 무작위로 노출되고 있다. 직접 불법 도박을 검색하거나 찾아보지 않아도 예고 없이 방송에 노출돼 시청자로 유입될 수 있다. 관리·감독 기관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단속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전면 근절은 쉽지 않은 실정이다.
방심위가 올해 초부터 지난달까지 시정 요구 조치를 내린 불법 도박 정보는 총 5만3086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전체 시정 요구 건수(5만5610건)에 맞먹는 수치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가 방심위에 심의를 요청한 불법 도박 콘텐츠 건수 역시 2021년 1만7462건에서 지난해 3만7390건으로 대폭 늘었다.
일각에서는 방심위 심의 절차 특성상 불법콘텐츠를 즉각 차단하기 어렵다는 점을 문제로 지목한다. 현행법상 도박 등 기타 불법 콘텐츠의 경우 방심위 심의 과정에서 대면 회의를 거치는 탓에 차단 조치까지 긴 시간이 소요된다. 디지털 성범죄가 전자문서로 심의를 진행해 시정조치 처리까지 평균 하루 정도가 소요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시간이 지연되는 동안 불법 콘텐츠 제작 업자들은 수시로 URL 주소를 변경하며 단속망을 피해 나간다.
정치권에서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도박 콘텐츠에 전자심의 제도를 도입하는 이른바 '불법 사이트 퇴출법'이 발의됐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개정안은 불법 도박사이트와 콘텐츠 제작 업자가 수시로 주소를 우회하지 못하도록 방심위 상시 심의를 통해 즉각 차단 조치를 취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방심위 관계자는 "사감위와 지난 10일 불법 도박 사이트 대응을 위한 공조 방안을 논의하는 등 불법 도박 근절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불법 콘텐츠 전반에 전자심의 제도가 도입된다면 시정조치에 걸리는 시간도 현재보다 훨씬 단축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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