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테무 등 중국발 e커머스가 세관 직원의 일상마저 바꿨습니다. 밀물처럼 몰려드는 물량을 보면서 이곳이 흡사 ‘전쟁터’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난 24일 관세청 평택직할세관 특송통관장(이하 특송장)에서 이승희 특송통관과 과장이 전한 분위기다.
특송장은 해외직구 물품이 국내로 반입되기 전 거쳐야 할 필수 관문이다. 평택세관은 지리적 특성상 중국에서 건너온 해상특송을 주로 처리한다. 알리·테무 등 중국발 e커머스 물량 상당수가 이곳을 거친다.
특송장 현장에는 세관, 특별수송업체, 택배사 관계자 등 100여명이 뒤엉켜 분주하게 손을 놀리고 있었다. 누군가는 컨테이너에서 물건을 내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컨베이어벨트(레일)를 통해 이동하는 물건을 목적지별로 분류했다. 분류된 물건은 다시 일반 택배 차량에 싣는 작업이 연이어 진행됐다.
여느 택배 물류현장의 상·하차 작업 과정과 다를 게 없는 풍경이다. 다만 특송장을 거치는 모든 물품이 X-레이 검색대를 통과하는 점은 달랐다. 평택세관은 현재 총 7대의 검색대로 물량을 전수검사한다. 통관 전 신고한 물품과 실제 들여오는 물품이 같은지, 불법·유해 물품이 포함되지 않았는지 여부를 살펴보는 절차다.
낌새가 이상한 물품은 세관직원이 개봉해 이상 유무를 눈으로 직접 살핀다. 실제 이날 현장에선 세관직원이 플라스틱 재질의 모형 총기(권총, 탄알 등)가 담긴 포장 박스를 개봉해 확인하는 과정을 어깨너머로 볼 수 있었다.
이 같은 절차는 목록통관(서류상)에서 필요하다고 판단되거나, 현장 X-레이 판독 전문 경력관이 검색대에서 이상을 확인한 후 현장에 있는 세관직원에게 요청해 이뤄진다. 특히 특송장에서 전문 경력관의 역할은 크다. 이들은 통상 1인이 일평균 1만3000~1만4000개의 물품을 X-레이로 판독하고, 이상 징후를 찾아내는 일종의 거름망 역할을 한다.
전문 경력관은 공공기관에서 2년 이상 근무한 이력을 가졌을 때 응시할 수 있다. 현장 실무에 곧장 투입할 수 있는 검증된 자격이 필요한 것이다. 여기에 소위 말하는 ‘감’ 혹은 ‘촉’이 더해질 때 전문 경력관의 능력도 빛이 난다.
평택세관 특송장에서만 5년째 전문 경력관으로 활동 중인 장재은(31·여)씨는 “팬데믹 당시 코로나19 치료제를 합배송(여러 물품을 혼합 배송) 물품에 포함해 몰래 반입하려 한 사례를 적발한 적이 있다”며 “눈으로 볼 때 자칫 지나치기 쉬운 작은 점 하나도 흘려보낼 수 없는 게 전문 경력관의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송장이 해외직구 물품에 불법·유해 물품이 섞여 반입되지 않도록 하는 관문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전문 경력관 모두가 책임감과 보람을 동시에 찾게 된다”고 덧붙였다.
최근 특송장에서는 급격히 늘어난 해상특송(중국발 e커머스) 물량으로 업무에 과중함을 느끼는 분위기도 역력했다. 지난 5년간 평택세관 특송장을 거친 해외직구 연간 물량은 2020년 1326만3000건, 2021년 2306만8000건, 2022년 3164만3000건, 지난해 3975만2000건 등으로 늘었다. 2020년 대비 지난해 3배가량 처리 물량이 늘어난 셈이다.
올해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평택에선 이미 1~9월 해외직구 2815만건이 특송장을 거쳐 갔다. 여기에 내달 중국 광군제와 미국 블랙프라이데이 등 해외 대규모 할인행사가 연이어 진행되는 점을 고려하면 연간 누적 물량은 최대치를 경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장은 “평택세관 특송장은 중국 연태, 위해, 용안 등지에서 출발하는 해상특송의 주된 반입 경로”라며 “알리·테무 물량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최근 특송장 업무량이 많이 늘어났다”고 전했다.
중국발 e커머스 물량 증가로 특송장 직원의 야간근무가 일상이 됐다. 이 과장은 “해상특송 물량이 급증한 상황을 반영해 지난해 8월부터 교대근무 제도를 도입해 특송장 근무 시간을 오후 6시에서 자정으로 늘렸다”며 “현장 실정에 맞춘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평택세관은 그간 특송장 외연을 꾸준히 확대했다. 2019년 4월 기준 1대에 불과했던 X-레이 검색기를 총 7대로 늘렸고, 같은 기간 1~3차 리빌딩으로 특송장 내 수용능력(공간 확충)과 처리능력(컨베이어 등 추가 설치)을 보강했다.
최근에는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평택세관을 본부세관으로 승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 5월 원유철 평택시민회 회장은 평택세관을 직할 세관에서 본부세관으로 승격시킬 것을 요청하는 내용의 건의문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직접 전달하기도 했다.
이 과장은 “그간 특송장 외연을 꾸준히 확대한 것은 맞지만, 급격히 늘고 있는 해외직구 물량을 해소하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라며 “본부세관 승격이 쉬운 문제는 아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분명히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대전=정일웅 기자 jiw30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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