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사람들이 없다고들 하지만 매일 출간되는 새 책의 양을 보면 한국은 가히 ‘책의 나라’다. 지난해 출판 종수는 6만2865종(대한출판문화협회 2023 한국출판연감)이다. 하루 평균 170권이 넘는 새 책이 나온다. 쏟아지는 책 중에서 어떤 책이 좋은지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독서 인구가 줄면서 신문, 방송 등 매체에서 책을 다루는 비중도 과거에 비해 현격히 줄었다.
아시아경제는 독자들의 양서 선택에 대한 고민을 덜어주고자 새로운 형식으로 추천 도서를 소개하고자 한다. 아시아경제는 매주 한 차례씩 대표와 에디터, 각 부서장이 모여 편집전략회의를 개최한다. 이 자리에서 에디터 다섯 명이 돌아가면서 읽은 책 가운데 한 권을 추천한다. 1년에 약 50권, 분기별로 10여 권이다. 그 책들을 지면에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올해 3분기까지 추천받은 책들을 소개한다. 앞으로는 매 분기 초 직전 분기에 에디터들이 어떤 책을 추천했는지 소개할 예정이다. 오랜 시간 쓰기와 읽기를 업으로 삼았던 에디터들의 선택이 독자 여러분들의 읽기 고민 해결에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시대의 화두 ‘인공지능·가상화폐·테슬라·엔비디아·기후변화’인공지능(AI)의 시대인만큼 ‘AI 마인드’, ‘AI와 뉴스’ 등 AI를 제목으로 내세운 책들이 주목받았다. ‘AI 마인드’는 23인의 인공지능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담은 책이다. 인터뷰이는 알파고를 개발한 데미스 허사비스, 10년 이내에 자율적으로 인간을 죽이는 로봇 병기가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한 ‘현대 AI의 아버지’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 명예교수 등이다. AI가 발전하면서 인류가 어떤 문제에 직면하게 될지, 또 그 해결방법은 무엇인지 모색한다.
‘AI와 뉴스’를 추천한 임훈구 에디터는 AI의 등장으로 뉴스라는 카테고리가 무너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임 에디터는 "AI는 여러 매체에서 관련 뉴스를 찾아 스스로 내용을 학습한 후 한 건의 문서로 정리한다"며 "이 과정에서 언론 매체의 제호가 매몰되고 독자도 어떤 것이 뉴스인지 아닌지 굳이 의식하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
‘애플 엔비디아 쇼크웨이브’ 역시 AI 반도체 시장의 성장과 함께 주도권을 움켜쥔 엔비디아를 주로 다루고 있어 AI를 다룬 책으로 볼 수 있다. 시가총액 세계 1위 테슬라 모터스와 테슬라를 이끄는 일론 머스크 역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주제다. 전기차 시대를 주도하고 있는 테슬라 역시 AI 시대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을 안고 있다.
일론 머스크는 스티브 잡스 등 유명인의 전기 작가로 유명한 월터 아이작슨이 쓴 책이다. 전체 760쪽짜리, 소위 말하는 ‘벽돌책’이다. 책을 추천한 신범수 에디터는 책이 재미있어 지치지 않고 읽을 수 있다고 했다. 아울러 "혁신을 위해 독재는 불가피한지, 우리나라에서도 과연 머스크와 혁신적 인물이 탄생할 수 있는지 등 다양한 문제를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라고 소개했다.
‘더 피아트 스탠다드’는 비트코인의 미래를 낙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필수 에디터는 "지금은 PB, 증권가 애널리스트 등 제도권 전문가들도 포트폴리오의 10% 정도는 담으라며 가상자산을 추천한다"며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한 엘살바도르의 경제고문을 맡은 사이페딘 아모스 레바논아메리칸대학 경제학 교수가 쓴 책"이라고 소개했다. ‘아쿠아 플래닛’은 미국의 세계적인 석학 제러미 리프킨이 기후위기 문제를 다룬 책이다. 리프킨은 물을 통제하고 착취하는 방식으로 이뤄온 발전 방식이 한계에 봉착했다며 수권의 가치를 새롭게 재인식하는 가치관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계속되는 경제 위기주요 선진국의 저성장 국면이 고착화되면서 경제 위기를 화두로 제시하는 책은 꾸준히 추천받고 있다. AI가 주목받는 이유도 사실은 혁신을 통해 추락한 성장동력을 다시 한번 끌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에 따른 급속한 변화가 오히려 불확실성만 키운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성장이 멈춘 시대의 투자법’, ‘덫에 걸린 한국경제’ 등은 지속되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어떤 대응책이 있는지 모색하는 책이다. ‘자본시장의 문제적 사건들’, ‘경영, 이나모리 가즈오 원점을 말하다’ 등은 과거의 사례를 통해 현재 처한 위기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지 모색하는 책이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통하는 기업인이다. 교토세라믹(교세라)와 대형 통신회사 KDDI를 창업했으며 일본항공(JAL)을 파산 위기에서 구해낸 주인공이다.
‘80억 인류, 가보지 않은 미래’는 미국 인류학자인 제니퍼 스쿠바 로즈 칼리지 정치학 종신교수가 쓴 책으로 인구통계학의 관점에서 향후 경제 전망을 다룬다. 한중일의 고령화, 난민과 이주민이 늘면서 점점 강화되는 서구의 극단주의, 여전히 가파르게 늘고 있는 신흥국의 인구 증가 등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분석한다. ‘60년대생이 온다’는 한국의 인구통계학적 문제를 다룬다. 1960년대에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함의를 포괄적으로 살핀다. ‘국가의 약탈 상속세’, ‘주주 권리가 없는 나라’, ‘엘리트 세습’ 등은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가 낳은 논란을 고찰한다.
이중환 ‘택리지’·웹소설 추천도소종섭 에디터는 경제신문 기자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라며 ‘택리지’를 추천해 눈길을 끌었다. ‘전지적 독자 시점’은 유일한 웹소설 추천으로 주목받았다. 택리지는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1690~1756)이 말년인 1751년에 저술한 인문 지리서다. 소종섭 에디터는 2018년 휴머니스트에서 출간된 ‘완역 정본 택리지’를 추천하며 "택리지는 지역의 물산과 교통을 소개한 경제서로 어디서 살아야 하느냐는 실존적 문제 의식을 다루고 있다"고 택리지를 소개했다.
‘전지적 독자 시점’은 웹소설 작가 싱숑의 작품으로 온라인 웹소설 서비스인 문피아에서 연재하기 시작했다. 영화로도 제작됐다. 이민호, 안효섭, 채수빈 등이 주연을 맡았으며 올해 5월 촬영을 마쳐 내년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백강녕 에디터는 "2020년 5월부터 미국, 일본, 프랑스, 태국, 인도네시아 등 네이버웹툰을 통해 해외에 공개되고 현재 10여개 언어로 번역됐다"며 웹소설이 지닌 가능성에 주목했다. 실제 네이버웹툰이 2022년 2월 문피아 지분 과반을 확보해 최대주주가 됐다. 백 에디터는 "웹소설의 인기는 세상의 변화를 보여준다"며 "웹소설에서 ‘반지의 제왕’과 세계적 콘텐츠가 나올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묘사의 힘’, ‘마포주공아파트’, ‘도쿄를 바꾼 빌딩들’ ‘위험한 일본책’ 등은 독특한 주제를 다룬 책으로 책의 제목이 호기심과 궁금증을 유발한다. ‘묘사의 힘’은 글쓰기에 대한 내용을 다루며 ‘도쿄를 바꾼 빌딩들’은 시부야 미야시타파크, 아자부다이 힐즈, 도쿄 미드타운 등 일본 수도 도쿄에서 주목할 건물들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다룬다.
마포주공아파트는 1964년 준공, 1991년 철거된 한국 최초의 아파트 단지다. 책 ‘마포주공아파트’는 박철수 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의 유작이다. 박 교수는 단지 내 인프라를 입주자가 부담하는 방식, 임대가 아닌 분양, 30년 후 재개발 등 한국 아파트 단지의 특징이 60년 전 마포주공아파트에서 시작돼 여전히 당시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위험한 일본책’은 박훈 서울대 역사학부 교수가 우리를 식민지배했던 일본이 어떤 나라인지 속속들이 파헤치고 일본에 대한 우리의 혐오와 적대감을 고찰한 책이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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