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조지호 경찰청장은 지난 6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조 청장에게 에너지의 원천은 현장이다. 전날 대한민국 곳곳에서 벌어진 일선 경찰의 활약상은 다음 날 아침 경찰 조직 수장에게 전달된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치안 강국, 대한민국의 오늘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지가 그 안에 녹아 있다. 국민의 평안한 일상을 위해 누군가 밤낮으로 흘렸던 땀의 기록물.
조 청장은 "제가 순경이라면 하지 못했을 일들이 보고 된다"고 전했다. 이 얘기를 전할 때 조 청장 목소리 톤은 살짝 올라갔다. 일선 경찰관들이 현장에서 얼마나 고생하는지를 더 많은 국민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자동차가 지나가는 그 짧은 시간에 앞뒤 번호판이 다른 것을 파악하고, 수배자 차량을 잡은 사례도 있다."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장면에서 어떤 경찰관은 남다른 집중력을 발휘해 예상하지 못한 성과를 만들어냈다. 조 청장은 "이런 사례들을 볼 때마다 일선 현장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조 청장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이다. 경찰청의 여러 요직을 거치면서 꼼꼼한 일 처리와 원칙을 중시하는 업무 태도가 녹아 들었다. 14만명에 이르는 경찰 조직의 특성을 고려할 때 카리스마는 필요한 덕목이지만, 때로는 부드러운 리더십이 요구될 때도 있다. 일선 경찰관의 고충을 헤아리고, 아픔을 어루만지는 역할이다. 조 청장은 강함과 부드러움이 어우러지는 지도자로 연착륙할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 그는 뚜렷한 소신이 있다.
조 청장은 "경찰청장이 아니라 현장 경찰관이 스타가 돼야 한다. 현장 경찰이 국민들을 안심시키고 감동시킨다"고 강조했다. 일선 경찰이 보람을 느끼며 자기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듬직하게 뒤를 받쳐주는 존재, 조 청장은 그런 역할을 지향한다. 경찰은 범죄의 현장에서 지내야 하고, 때로는 자기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국민 삶을 지켜야 할 때도 있다. 조 청장이 건강 관리는 물론이고, 체력 관리의 중요성에 천착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조 청장은 본인 스스로 경찰 평균 이상의 체력을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하루의 일과도 이와 관련이 있다. 그의 아침 루틴은 스트레칭과 스쾃, 팔굽혀펴기다. 50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인데도 청년 못지않은 유연함을 자랑한다. 이는 평소의 생활습관 덕분이다. 조 청장은 주말에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인왕산에 오르거나 둘레 길을 걷는다. 몸과 마음을 정돈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삶의 활력이 충전된다.
조 청장은 예전부터 축구를 즐겼다. 40대까지는 경찰 축구 동호회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경찰 주요 직책을 맡게 된 이후에는 과거처럼 축구 동호회에서 활동하지는 못하지만, 꾸준하게 등산과 걷기 등을 이어가며 체력 관리에 힘을 쏟고 있다. 경찰청장이라는 중책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항상 또렷한 자세로 삶에 임하고자 힘을 쏟는다.
경찰청장에 취임한 지 아직 100일도 지나지 않은 조 청장. 그가 어떤 경찰청장이 될 것인지는 경찰 조직은 물론이고, 국민들도 궁금해하는 대목이다. 인터뷰 내내 조 청장이 강조한 것은 국민 또 국민이었다. 국민을 최우선에 두는 자세를 견지해야 치안 강국 대한민국 위상을 이어갈 수 있다는 진단이다. 그러면서 조 청장은 경찰 조직을 향해 이렇게 당부했다.
다음은 조지호 경찰청장과의 일문일답 전문.
-경찰청장으로 취임한 지 80일을 지났는데, 그동안 소회를 전한다면.
▲공직자가 국민만을 바라본다는 것은 당연한 명제다. 경찰도 공무원 중심의 사고가 작동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시각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경찰 조직이 건강해지고, 국민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고, 경찰이 응답해야 한다. 경찰청장이 앞장서서 행정 체계를 바꿔나가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면 분명히 달라질 것이라고 본다.
-외국에 나가 보면 대한민국 치안의 우수성을 체감한다고 한다. 대한민국 치안에 관한 평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외국인들은 국내에 방문한 뒤 한국의 치안이 세계 최고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며, 손가락을 치켜든다. 과거에 모범적인 경찰이라고 하면 영국을 떠올렸는데 이제는 런던 경찰보다 서울 경찰이 훨씬 우수하다는 얘기다. 우리가 롤모델로 삼았건 영국 경찰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는 경찰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자부심을 가질 일이다.
-경찰 조직을 이끌기 위해서는 리더십도 중요한데. 여러 경험 속에서 어떤 철학을 갖게 됐는지.
▲경찰 조직에서 총경이 처음 됐을 때 관리자 역할은 무엇인지 여러 가지 고민했고 세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첫 번째는 직원들이 일을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두 번째는 직원들이 어려울 때 해결해 주고, 세 번째는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지는 게 관리자다.
-경찰청장 취임 이후 가장 먼저 보고체계를 바꿨는데, 그 배경은 무엇이고 긍정적 효과는 무엇인지.
▲경찰청에서 청장은 주요 정책 현안에 대한 최고 결정권자이고, 국장들은 소관 업무 책임자다. 두 사람이 만나 논의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 모델이다. 예전처럼 과장이 경찰청장과 국장의 메신저 역할을 하는 의사결정 구조는 비효율적이고, 잘못 기능할 위험성이 있다. 국장들이 도와줘서 의사결정이 빨라졌고, 혼란이 많이 줄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제 범죄는 초국가적 형태를 띠고 있다. 국제협력이 더 중요해졌는데 경찰은 어떤 노력을 하는지.
▲보이스피싱, 마약, 투자리딩방 등 국경을 넘나드는 범죄가 많다. 해당 국가에 가서 수사할 수 없기 때문에 외국 수사기관과의 협력이 중요해졌다. 주요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제가 직접 출장을 가기도 하고, 대상국 수사기관장을 초청해 회의도 한다. 제3국가와의 협력에 대비해 인터폴에 연간 15억원 이상의 펀딩을 하고 있다.
-범죄 형태의 변화와 맞물려 경찰 업무가 더 늘어난다면, 경찰 인력을 충원해야 할 것 같은데.
▲현장 경찰관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서 가장 이상적인 것은 인력 충원이다. 증원은 지속해서 요구하고 있지만 국가의 재정 여건이 있어 무한정 늘릴 수는 없다. 현재 인력으로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 불필요한 일은 덜어주고, 핵심적인 일에 집중하게 만들고 있다. 국가수사본부나 시도청에서 사건을 분석하고 병합 수사를 추진해 인력 절감 효과도 거두고 있다.
-딥페이크 성범죄가 사회적인 문제로 떠올랐는데, 텔레그램 수사 협조는 잘 이뤄지고 있는지.
▲대부분 외국 메신저 업체들은 수사 협조를 잘해주는데 유독 텔레그램만 비협조적이었다. 그동안 텔레그램을 지속해서 압박해 왔고, 그 결과 상당 부분 입장이 많이 바뀌었다. 전향적인 내용의 입장 변화가 있었다. 외국의 다른 플랫폼 업체와 비슷한 수준의 협조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이상동기범죄로 국민들이 불안을 느끼는데 어떤 대책이 있는지.
▲동기가 뚜렷한 범죄는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다. 그러나 이상동기범죄는 동기가 없고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경찰은 이상동기 범죄들이 가지는 특징을 계속 분석해서 진단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정상적으로 진행된다면 내년에 개발될 것 같다. 그전이라도 이상동기범죄가 갖는 경향성을 분석하고, 경찰 차원에서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경찰청장으로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경찰이 경찰다운 모습으로 만들어지는 모습을 상상하며 매일 아침 출근한다. 오늘이 임기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그 일에 전념한다. 우리 경찰의 좋은 DNA를 복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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