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최근 신용카드 대신 체크카드를 선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체크카드는 계좌에 잔액이 없으면 결제가 안 되기 때문에 충동 소비나 과소비를 막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세액공제율 또한 신용카드보다 더 높기 때문에 알뜰족 사이에선 체크카드를 발급받는 이들이 적지 않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젊은층은 '욜로'(YOLO·인생은 한 번뿐)를 추구하며 과소비 성향을 보였다. 그러나 최근 고물가·고금리 상황이 장기화하자 불필요한 구매를 자제하려는 '요노'(YONO·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뿐) 트렌드가 급부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체크카드 발급 수는 지난 몇 년간 꾸준히 감소해 왔으나, 올해 반등했다. 지난 9월 여신금융협회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올 2분기 기준 8개 전업카드사(신한·삼성·현대·KB국민·롯데·하나·우리·BC)의 체크카드 발급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약 92만8000장이 늘어 6236만9000장에 이르렀다. 같은 기간 이용액 역시 약 4605억원가량 증가해 27조5537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신용카드 대신 체크카드를 선택하는 서민들이 늘어나는 영향으로 보인다. 고물가가 이어지면서 과도한 소비는 자제하고 버는 만큼 소비하고자 하는 이들이 늘어난 셈이다.
신용카드 대신 체크카드를 주로 사용한다고 밝힌 직장인 이모씨(28)는 "대학생 때 체크카드를 사용하다가 직장인이 된 후 신용카드를 발급받았다"고 했다. 이어 "처음에는 신용카드 혜택이 체크카드보다 많아서 만족했지만, 점점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과소비하게 돼서 결국 체크카드로 돌아갔다"고 했다. 이 씨는 "신용카드는 할부가 있으니까 필요하지 않은 물건도 구매하게 된다"며 "체크카드는 금액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필요한 물건만을 사게 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과소비를 우려해 체크카드를 이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신용카드 플랫폼 카드고릴라가 '체크카드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36.8%가 체크카드를 쓰는 가장 큰 이유로 '과소비가 우려돼서'(36.8%·1231표)를 꼽았다. 2위는 '연말정산 소득공제를 최대로 받기 위해'(17.5%)가 차지했다. 3, 4위는 근소한 차이로 각각 '계획적인 소비가 가능'(15.8%), '낮은 연회비 부담'(15.8%)이 차지했다. 해당 설문조사는 카드고릴라 웹사이트 방문자를 대상으로 지난달 1일부터 21일까지 약 3주간 실시됐고, 총 3347명이 참여했다.
2010년대 후반부터 2030세대 소비 트렌드는 '욜로'였다. 현재의 행복을 위해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는 의미였지만, 형편에 맞지 않게 사치를 일삼는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그러나 최근에는 실용적인 소비를 추구하는 '요노'가 뜨고 있다. 이는 꼭 필요한 상품만을 구매하고 불필요한 물건 구입은 자제하는 소비행태다.
소비 방식이 변함에 따라 젊은층이 구매하는 물품도 변했다. NH농협은행이 개인 고객 3200만 명의 금융 거래를 분석한 결과, 올 상반기 2030세대의 수입차 구매 건수는 전년보다 11% 감소했다. 반면 중고차 소비는 같은 기간 29% 늘었다. 한 끼 10만~20만원에 달하는 '오마카세' 유행도 옛말이 됐다. 2030세대의 상반기 뷔페 소비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4% 줄고 양식 업종 외식은 8% 감소했다. 반면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2030세대의 간편식 소비 건수는 전년 동기보다 21% 증가했다. 다른 연령대의 간편식 소비 증가율(11%) 대비 두 배에 가깝다.
'요노' 트렌드는 국내에만 보이는 현상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 출생한 젠지(GenZ)를 중심으로 '저소비 코어'가 급부상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소비를 줄이는 데서 나아가 자신의 지출이 적다는 것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자랑한다. 액정이 깨진 스마트폰, 10년도 더 된 노트북, 오래된 가구, 빈티지 의류 등은 SNS에선 궁상맞은 물건이 아닌 자랑거리다.
뉴욕포스트는 젊은층 사이에서 유행하는 '저소비 코어' 문화에 대해 "인플레이션의 산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또 CNN은 지난 6월 '욜로가 죽어가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소비자 지출은 감소하고 있으며 소득이 높은 미국인도 월마트 같은 할인매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며 "일부 매장은 주저하는 쇼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가격을 낮추고 있다"고 했다.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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