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서울 노원구에 거주하는 학부모 김모씨(47)는 고등학교 1학년 자녀에게 아이패드를 사줬다. 자녀가 자신만 종이 교재로 공부를 한다며 마구 졸라댔기 때문이다. 김씨는 보급형 모델을 구매하려고 했지만, 성화에 못이겨 약 100만원짜리 모델을 구입했다. 김씨는 "공부한다고 해서 사주긴 했는데 너무 비싼 것 같다"고 토로했다.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서 태블릿 PC가 새로운 ‘등골브레이커’로 떠오르고 있다. 등골브레이커는 부모의 등골을 휘게 할 정도로 비싼 물건이라는 신조어이다.
11일 한국갤럽에 따르면 지난해 2~7월 13~18세 미만 청소년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태블릿 PC를 보유하고 있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61%를 차지했다. 2020년 하반기(36%)에 비해 약 1.65배 증가한 수치다.
태블릿PC 열풍은 이른바 '페이퍼리스(Paperless)' 공부법이 학습 트렌드로 자리 잡은 영향이다. 교재를 전자기기에 담아 가방 무게를 줄일 수 있는 데다, 이미 채점한 문제집도 새 것 처럼 쓸 수 있다. 고등학생 이모양(18)은 "요즘은 과외 선생님들도 문제 풀이를 태블릿 PC로 해주는 경우가 많다"며 "과외 자료도 에어드롭(애플의 콘텐츠 공유 서비스)이나 모바일 메신저로 전송해주는 경우가 많아 문제 풀이용 태블릿 PC가 없으면 공부하기 몹시 불편해진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태블릿 PC가 학생 간 상대적 박탈감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가 모델도 기본 수십만원을 호가하기에 가정형편이 되지 않는 학생은 구매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서울 강서구에서 보습학원을 운영 중인 박모씨(51)는 "학원에서 중학생 한 명이 아이패드를 꺼내 문제를 풀었더니 주변 학생들이 부러운 듯 그 학생을 쳐다봤다"며 "몇 주 뒤 두 명의 학생들이 아이패드를 따라샀다. 끝내 구매하지 못한 학생 1명은 속상해 했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과거 10대 사이에서 불던 명품 패딩 유행이 태블릿 PC로 옮겨간 것일 뿐"이라면서 "이러한 유행이 상태적 박탈감으로 번지지 않도록, 학교 차원에서 과시 소비와 동조 소비를 억제하기 위한 교육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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