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꿈의 비만약’이라는 위고비가 원격의료(비대면진료)의 부작용을 노출시켰다. 출시되자마자 원격의료 플랫폼을 통해 ‘묻지마 처방’이 쏟아진다. 이 약이 불러온 원격의료 이슈는 국정감사 도마까지 올랐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감 답변에서 "원격의료에서 비만약 제외를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나, 원격의료의 구멍은 의약품 하나를 넣어라빼라 하며 단발성 땜질할 게 아니다.
원격의료는 1990년대부터 속속 공인됐다. 미국은 1997년 원격의료를 고령자 연방건강보험(메디케어)에 포함했다. 일본도 같은 해 원격의료를 공인했으며, 2015년 전면 허용했다. 1996년 추진 개시한 호주에선 5년 만인 2001년 본격 시행됐다. 우리만 의료계 결사반대로 1988년 이후 36년째 시범사업에 머물고 있다. 더 이상 원격의료를 거부할 명분이 없다.
정부는 현재 원격의료 법제화를 추진 중인데, 이참에 제도를 정교하게 다듬기 바란다. 시범사업으로 확인한 약점(안전성)은 해결하고 강점(편리성)은 강화하며 법제화해야 한다.
안전성 이슈는 둘이다. 비대면으로 인한 불충분한 진단(의사들이 지적하는 문제), 위고비처럼 오남용을 유발하는 과잉처방(의사들이 유발하는 문제). 전자는 의사에게 대면진료 전환권을 부여해서 보완할 수 있다. 비대면진료 중 의사 판단에 따라 대면으로 돌릴 권한을 주고, 환자가 안 따르는 데 따르는 의료사고는 면책하는 것이다. 후자는 보건당국의 관리감독 강화로 풀어야 한다. 비급여 처방내역 보고제도를 활용해 비대면 과잉처방 의료기관을 단속할 만하다.
편리성 증대는 의료서비스공급자가 할 일이지만, 핵심 정책 하나는 정부가 추진해야 한다. 의약품 비대면판매(택배 배송) 허용이다. 약계는 택배 배송 반대에 똘똘 뭉쳐 있다. 명분은 의약품 오배송 및 변질 가능성이지만, 속내는 약국 방문수에 따라 건강보험에서 받는 복약지도료·약국관리료 감소와 방문객 대상 건강기능식품 등 권유판매 매출 하락이다.
일본 선례가 참고된다. 일본 정부는 2020년 약사법을 개정해 의약품 택배 배송을 허용했다. 일본 약사들도 반발했지만, 일본 정부는 온라인 복약지도료를 신설해주면서 타협점을 찾았다.
원격의료가 동네의원에 직격탄을 쏠 거라는 의료계 걱정은 지나친 감이 있다. 우리나라는 국토면적 1㎢당 의사 1.24명이다(OECD 3위). 평균적으로 전국 아무 지점에서 동서남북 어디로든 1㎞만 걸어가면 의사를 만난다는 뜻이다. 문만 열고 나가면 눈앞에 병원이 빽빽하다.
일반적인 원격의료는 어쩔 수 없는 사람만 이용한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 논문에 따르면, 일본은 코로나19 이전까지 원격의료 이용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미국도 코로나19 이전 건강보험 청구액 중 원격의료 비중이 0.2%였다. 양국 모두 그 이후 조금 늘었다.
그러니 우리도 의약계는 원격의료를 더 편리하게 서비스하고, 정부는 안전하도록 관리하면 된다. 그러면 원격의료는 ‘의료접근성이 세계 최고임에도 뺑뺑이가 발생하는’ 우리 의료공급 허점의 보완수단으로 적당하게 자리잡을 것이다.
이동혁 바이오중기벤처부장 do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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