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허위 발언, 고의 인정"…'해외출장 사진 조작'·'백현동 용도변경은 국토부 탓' 유죄
검찰이 구형한 징역형 선고하고 집행유예…형량 확정되면 피선거권 10년 상실·대선 못나와
'선거재판 6·3·3 원칙' 천명한 조희대 대법원…2심 이어 대법 내년 상반기 선고 가능성도
(서울=연합뉴스) 황윤기 기자 = 유죄가 인정되더라도 벌금형 정도가 아니겠느냐는 일각의 예상을 깨고 법원이 15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징역형을 선고한 것에는 문제의 발언 대부분이 허위이고 선거의 민의를 왜곡하려 했다는 판단이 배경이 됐다.
이 대표가 당선될 목적으로 대장동 개발 사업 실무자였던 고(故) 김문기 씨와 해외 출장에서 골프 친 사실을 의도적으로 숨겼으며, 스스로 결정한 백현동 부지의 용도변경을 마치 국토교통부의 압박을 못 이긴 것처럼 속였다는 것이다.
◇ 해외출장 사진에 "조작이죠"…'골프 친 적 없다' 의미해 허위사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한성진 부장판사)가 심리한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크게 두 가지 허위 사실로 구성된다.
첫 번째 공소사실은 2021년 12월 22일부터 29일까지 이 대표가 방송사 인터뷰 등에 출연해 김씨에 관해 "시장 재직 때는 몰랐다"며 총 4차례 관계를 부인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 대표가 김씨를 '몰랐다'고 발언한 것은 허위 사실이라고 볼 수 없지만, '골프를 친 적이 없다'고 부인한 건 허위 사실을 공표한 불법 행위라고 판단했다.
김씨는 대장동 개발 사업을 추진한 실무자로 특혜 의혹의 진위를 가려줄 핵심 관계자로 꼽혔다. 그러나 의혹이 커지던 시기에 숨진 채 발견됐다. 검찰은 이 대표가 대선이 임박한 시기에 불거진 대형 이슈인 대장동 의혹과 거리를 두기 위해 허위 사실을 말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 대표의 발언 중 유죄가 인정된 부분에 대해 국민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을 기준으로 한 판단"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대통령선거를 약 3개월 앞둔 상황에서 대장동 개발사업 실무책임자인 김문기가 사망해 대장동 특혜 의혹을 중심으로 한 피고인과 김문기의 관련성이 부각됐다"고 당시 발언들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 대표는 12월 22일 인터뷰에서 김씨와 관계를 부인했으나, 이후 국민의힘이 이 대표가 김씨와 2015년 1월 해외 출장을 간 사진을 공개하고 함께 골프도 쳤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논란이 커졌다.
이 대표는 12월 29일 방송에 출연해 "국민의힘에서 4명 사진을 찍어가지고 마치 제가 골프를 친 것처럼 사진을 공개했던데, 제가 확인을 해보니까 전체 우리 일행, 단체 사진 중 일부를 떼내가지고 이렇게 보여줬더군요. 조작한 거죠"라고 했다.
재판부는 우선 '조작한 것'이라는 발언은 그 경위와 맥락, 일반 선거인의 인식을 기준으로 볼 때 '김씨와 함께 간 해외 출장 기간에 김씨와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규정했다.
그 전제에서 "해외 출장에서 일행 중 성남도시개발공사 직원은 김문기와 유동규뿐이었고 공식 일정에서 벗어나 피고인과 함께 골프를 친 사람도 김문기와 유동규뿐"이라며 "기억에 남을만한 행위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김문기는 대장동 도시개발사업 특혜 의혹에 대한 피고인의 대응에 관여하고 사망 전까지 관련 수사를 받아왔는 바, 피고인이 골프 발언을 하기까지 기억을 환기할 기회나 시간은 충분했다"며 "고의가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다만 '김씨를 몰랐다'는 발언 자체는 무죄로 판단했다.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는 죄가 될 수 있는 대상을 몇 가지로 한정하는데, 이 대표에게 적용된 것은 당선될 목적으로 어떠한 '행위'에 관해 허위 사실을 공표했다는 차원이다.
재판부는 '어떤 사람을 모른다'는 것을 '행위'에 관한 구체적 교유(交遊) 행위를 부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지는 엄격히 판단해야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유죄로 인정한 해외 골프 동반 행위를 제외하면, 해외출장 동행이나 표창장 수여 의혹에 대해서는 이 대표가 인정하거나 인정하는 전제에서 발언했고, 김씨를 '하위 직원'으로 지칭해 업무적 교유행위는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그 외 '몰랐다'는 말이 다른 구체적 교유행위를 부인하는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하지만, '몰랐다'는 발언은 골프 발언 부분과 포괄일죄(포괄적으로 하나의 죄) 관계에 있어 해당 부분을 선거법 위반 유죄로 인정하는 이상 따로 주문에서 무죄를 선고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 백현동 의혹에 "국토부 협박 때문"…"성남시 자체 판단이라 거짓"
두 번째 공소사실은 이 대표가 2021년 10월 20일 경기도 국정감사에 출석해 대선에 당선될 목적으로 성남시 백현동 특혜 의혹과 관련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 한국식품연구원은 2014년 1월 부동산개발업체 아시아디벨로퍼와 부지 매수 양해각서(MOU)를 맺고 성남시에 여러 차례 부지 용도 변경을 신청했다.
한국식품연구원 부지는 자연·보전녹지지역이었다. 성남시는 이 땅을 2종일반주거지역으로 높여달라는 두 차례 요청을 반려했는데, 이후 4단계 높은 준주거지역으로 변경해달라는 3차 신청은 돌연 승인했다.
이 지점에서 이 대표가 민간에 부당한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대표의 선거대책본부장 출신인 김인섭 씨가 '로비스트'로 관여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도 이후 드러났다.
이 대표는 국정감사에서 "국토부가 요청해서 한 일이고 공공기관 이전 특별법(혁신도시법)에 따라 저희가 응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라고 했다. "국토부가 직무 유기를 문제 삼겠다고 협박했다"는 발언도 덧붙였다.
혁신도시법 43조 6항은 국토교통부 장관이 수립한 공공기관 이전 부지의 활용계획을 지방자치단체가 도시관리계획에 의무적으로 반영하도록 규정한다.
이 대표는 이 의무 조항 탓에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재판부는 그러나 "피고인의 백현동 부지 용도지역 변경은 이 사건 의무 조항에 근거한 국토부의 요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검토하여 변경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국토부가 공문을 보내면서 구체적인 용도지역을 기재한 적이 없고, 2014년 12월 9일자 공문에서 "종전 협조 요청은 혁신도시법 43조 6항에 따른 요구가 아니고 용도지역 변경은 성남시가 적의 판단하라"고 밝힌 게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성남시는 2차 입안 제안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상위계획 불부합 문제에 관한 처리방안으로 준주거지역으로의 용도지역 변경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며 "3차 입안 제안 이후 백현동 부지의 용도지역이 자연녹지지역, 보전녹지지역에서 준주거지역으로 변경됐다"고 했다.
이에 "용도지역 변경은 성남시의 자체적 판단에 의한 것"이라며 "국토부 공무원들로부터 협박당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 대표가 식품연구원 부지의 용도변경 관련 내용을 여러 차례 보고받았고 미리 답변에 쓸 패널을 준비했다는 점에서 범행의 고의도 있었다고 봤다.
◇ "민주주의 본질 훼손 염려" 징역형…내년 상반기 확정될까
재판부는 당초 유죄가 인정되더라도 100만원 안팎의 벌금형이 선고될 것이라는 일각의 예상과 달리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동종 전과도 있는 이 대표가 적극적으로 허위 사실을 공표해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했기 때문에 죄책이 무겁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양형 이유에 관해 "선거 과정에서 유권자에게 허위 사실이 공표되는 경우 유권자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없게 돼 민의가 왜곡되고 선거제도의 기능과 대의민주주의의 본질이 훼손될 염려가 있다"며 "죄책이 가볍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범행은 모두 피고인을 향해 제기된 의혹이 국민적 관심사인 상황에서 해명이라는 명목을 빌어 이뤄졌고, 방송을 매체로 이용해 그 파급력과 전파력이 컸다. 범행 내용도 모두 후보자의 능력과 자질에 관한 중요한 사항"이라며 "동종 범행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전력도 있다"고 지적했다.
당선목적 허위사실공표의 경우 대법원의 양형기준은 징역 10개월 이하 또는 200만∼800만원의 벌금형이 기본이다. 다만 죄질이 나빠 가중 요소가 많을 경우 징역 8개월∼2년, 벌금 500만∼1천만원을 권고한다.
재판부의 선고 내용에 비춰볼 때 이 대표가 공표한 허위 사실이 유권자의 중요한 판단 사항과 관련이 있는 점, 발언의 전파성이 높았던 점, 동종 전과가 있는 점 등을 형량 가중 요소로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장은 2010년 4월 지하철에서 불법 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이 대표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피선거권이 박탈돼 국회의원직을 잃는다. 10년간 대선 출마도 불가능하다.
법조계에서는 2년 넘는 1심 재판에서 대부분의 사실관계에 대한 조사가 이뤄져 2심·3심 재판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공직선거법은 선거사범 재판을 1심은 6개월, 2심과 3심은 각 3개월 안에 끝마쳐야 한다고 정한다. 이는 준수해야 하는 '강행규정'이지만 별도 처벌조항은 없고 실무상 그간 제대로 지켜지지 못한 사례들이 많았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최근 전국 법원에 이 같은 법정 처리 기한을 가급적 지키라고 권고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재판 지연 해소'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기 때문에 이 대표 사건에서도 법원이 심리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2심과 3심을 3개월 안에 끝마쳐야 한다는 규정을 지킬 경우 내년 상반기 중에 대법원 판결이 선고될 가능성도 있다.
wate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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