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반려견 플랫폼 개발에 투자하세요.”
가상화폐(코인) 투자가 새로운 재테크 수단으로 갓 떠오르기 시작한 2021년 말. 새로운 투자처를 찾던 직장인 김재광씨(31)는 인터넷에서 한 광고를 보고 마음이 동했다. 반려견 플랫폼 개발 사업과 관련된 코인에 투자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최근 반려동물 인구가 1000만명에 육박했다는 뉴스를 본 김씨 입장에서는 평소 관심을 갖고 있던 코인 투자를 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해당 코인 업체에 김씨가 투자 방법을 문의하자 곧바로 답변이 돌아왔다. 1차 투자금 12만원부터 투자자의 선택에 따라 최대 1200만원까지 투자를 할 수 있는데, 사업 성과에 따라 최대 300%의 수익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것. 게다가 일 단위로 일정 금액의 수당까지 지급된다는 설명에 김씨는 업체 홈페이지에 가입한 뒤 12만원을 입금했다.
김씨의 의구심이 사라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업체의 설명대로 일 수당이 꾸준히 김씨의 계좌에 입금됐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재테크라고 판단한 김씨는 점점 투자금 규모를 늘려나갔다. 일부 지인들이 위험해 보인다며 말렸지만, 김씨에게 이 투자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도 같았다. 그렇게 김씨는 투자금을 600만원까지 늘리며 ‘장밋빛 미래’를 그렸다.
그러던 김씨에게 2022년 4월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자신을 경찰이라고 소개한 이는 김씨의 코인 투자와 관련해 수사 중이라며 해당 업체 계좌에서 김씨와의 거래 내역이 확인됐다고 했다. 깜짝 놀란 김씨가 업체 홈페이지에 접속했지만, 이미 서버가 터진 듯 먹통일 뿐이었다.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3계 6팀이 해당 업체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것도 같은 시기였다. 업체 계좌의 자금 흐름이 비정상적이라는 점을 포착한 금융정보분석원(FIU)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면서다. 경찰은 해당 업체의 계좌는 물론 대표 A씨(50대 중반)의 각종 범죄 사실들을 취합해 본격적인 수사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업체 홈페이지에 가입된 투자자 계정만 5만1000여개에 달한 데다가 업체 계좌를 통해 흘렀던 금액이 1664억원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컸던 탓에 범죄 사실을 규명하는 데만 수개월이 걸렸다. 이 기간 동안 경찰이 분석한 자료만 무려 350GB(기가바이트)에 달할 정도로 방대했다.
수사 1년 만인 2023년 4월 경찰은 업체 대표 A씨를 비롯해 전산 관리자 B씨, 사업자 C씨 등 주범 3명을 사기 및 유사수신행위규제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전국에 퍼진 지점장 등 63명을 검거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 일당은 후순위 투자자들로부터 받은 투자금액으로 초기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돌려주는 이른바 ‘돌려막기’ 수법으로 투자자들을 끌어모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범죄수익금 83억여원을 기소 전 추징 보전하는 한편 이들 일당을 모두 검찰에 넘겼다. 현재 이들은 수원지법 안양지원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유병돈 기자 tamon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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