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도 과거 여권 신장에 비례해 여자대학 급감
여대 공학반대 시위 격화, 의견수렴 절차 밟았어야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미국은 여성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나라로 각인돼 있지만 여자가 명문대의 문을 뚫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버드, 예일과 함께 아이비리그를 대표하는 컬럼비아대는 반전 시위와 퓰리처상 선정 대학이란 명성에 걸맞지 않게 1983년까지 여성을 받지 않았다. 프린스턴과 예일은 1969년, 하버드는 1977년까지 여성의 학부 입학을 불허했다.
재학생은 말할 것도 없고 졸업생들의 반대가 거셌다. 다트머스대 교내 기숙사 벽에는 '남녀공학이 되느니 죽는 게 낫다'는 섬뜩한 배너가 내걸렸고, 프린스턴 동문회에선 "교내에 구닥다리 사창가를 만들면 학생들 실력이 나아지느냐" 등 여성 혐오 발언이 이어졌다.
여성 하대 풍조로 인해 여성만 입학할 수 있는 여자대학이 많았다. 1836년 세계 최초의 여대인 웨슬리언을 시작으로 이후 40년 사이에 50개 여대가 생겨났다. 이때 설립된 마운트 홀리요크, 배서, 웰즐리, 스미스 등 동북부 소재 7개 여대는 '세븐 시스터스', '여자 아이비리그'로 불리며 수많은 여성 인재를 배출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웰즐리 학부를 졸업한 동문 사이다.
여권의 신장은 되레 여대의 수명을 단축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1960년대 최대 281개였던 여대 수가 2024년 현재 26개로 쪼그라들었다. 여성들이 교류의 폭이 넓은 남녀 공학으로 진학하는 현상이 두드러진 탓이다. 세븐시스터스 가운데 배서가 1969년 가장 먼저 공학으로 전환했고 1970년 개봉한 영화 '러브스토리'의 촬영 무대이기도 한 래드클리프는 1977년 하버드로 흡수됐다.
한국의 여대들도 미국과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1978년 수도여대(세종대)를 시작으로 90년대 들어 성심여대(가톨릭대)와 효성여대(대구가톨릭대), 상명여대(상명대), 부산여대(신라대)가 공학으로 전환했다. 서울 지역 4년제 여대로 이화, 숙명, 성신, 서울, 덕성, 동덕 6곳만 남았다. 이들 대학 일부는 등록금이 매년 동결되는 상황에서 학령인구 급감과 이공계 약세로 학교 재정과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서울여대에 이어 동덕여대가 남학생 입학에 대한 학생들의 반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동덕여대에선 여러 건물과 조형물이 스프레이로 훼손되고 남성 혐오 발언이 잇따르는 등 우리 사회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 일을 단순한 젠더갈등으로 본다면 핵심을 잘못 짚은 것이다. 의대 동맹 휴학과 전공의 사직 사태에서 목도했듯 현재 20대는 권위에 순종적인 부모 세대들과 달리 개인의 권리가 걸린 문제에는 거리낌 없이 할 말을 하고 행동으로 대처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사전에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으면 안하느니만 못하다.
j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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