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지난달 28일 오후 9시께 찾은 서울 마포구 공덕역 인근 마포경찰서 교통정보센터. 서울 마포경찰서 교통과의 막내 김익진 순경(31)은 “마포경찰서는 서울 안에 있는 경찰서 31곳 중 가장 많은 대교를 관할하고 있다”며 “교통 수요가 항상 많은 곳”이라고 소개했다.
김 순경 말대로 서울에서 교통량이 두 번째로 많은 성산대교와 세 번째로 많은 양화대교 모두 서울 마포경찰서 관할에 자리 잡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곳은 각종 방송국, 월드컵경기장이 있고 행사와 인파가 몰리는 지역인 탓에 교통량도 상당하다. 복잡하고도 다사다난한 교통정보센터에서 씨름하는 교통안전계 막내 순경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2021년 입직한 김 순경은 기동대에서 근무하다가 교통과를 희망해 지난해 8월 마포서에 배치됐다. 김 순경은 “국민 가까이에서 실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교통과에 지원했다”며 “처음 왔을 땐 정신 없었는데 선배들 덕분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통정보센터 한쪽에는 대형 화면이 10여개로 쪼개져 서울 마포구 곳곳의 교통상황을 실시간으로 비춰주고 있었다. 팀원들은 틈틈이 화면을 보며 차량 흐름을 파악했다.
교통안전계는 112 출동을 주 업무로 하고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 교통정리 업무를 고정적으로 하고 있다. 이 외에도 교통법규 위반 단속, 어린이보호구역, 음주 단속 등 유동적으로 업무가 이어진다. 센터에는 서류 작성 등을 위해 잠깐 들어올 뿐 이곳 경찰관들은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서 보낸다. 마포서 교통정보센터의 가장 바쁜 시기는 봄·가을 행사철. 지난 10월에도 난지한강공원, 하늘공원 일대에서 각종 축제와 마라톤이 열렸고, 경기장엔 항상 축구나 콘서트가 진행돼 사람과 차량이 몰린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서울 서부권 최대 유흥지역으로 꼽히는 홍대입구역 클럽 거리에 교통량과 인파가 집중된다. 특히 한겨울은 교통사고가 나면 대규모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긴장할 수밖에 없는 시기다. 김 순경은 “눈 내리는 날엔 운전자들이 조금만 실수해도 큰 사고로 번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대로변이나 강변북로에서 사고가 났다고 하면 걱정부터 앞선다”고 전했다.
온갖 행사와 축제로 복잡한 마포구 차량 흐름을 정리하는 데 김 순경도 한몫하고 있다. 교통안전계 외근 2팀 선배들은 김 순경에 대해 “뭐든 열심히, 적극적으로 임하고 선배들이 얘기하는 걸 잘 따라준다”며 “워낙 성격이 좋아 어디에서나 잘 어울릴 수 있는 둥글둥글한 사람”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 순경은 “경찰이 계급 집단이다 보니 경직된 조직 문화가 없지 않은데, 우리 마포경찰서 분위기는 정말 좋다”며 “막내라고 무시하지 않고 제 의견과 건의 사항을 모두 경청해 주시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 눈치 안 보고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웃어 보였다.
오후 10시께 서울 마포구 강변북로 인근 서울월드컵경기장 진입로에서 음주운전 단속이 이뤄졌다. 이날 서울 마포구의 날씨는 영하 1~2도. 전날 내린 기록적인 폭설로 도로 곳곳엔 눈이 남아있었고, 찬 바람도 매섭게 불었다. 순찰차에서 내린 김 순경은 양손에 입김을 불었다. 그는 “선배들은 잘 아셔서 두꺼운 방한 장갑을 챙겨 나오셨는데, 저는 깜빡하고 안 챙겨서 얇은 장갑을 끼고 있다”고 머쓱해했다.
그런 김 순경이지만, 빨간 야광봉을 들고 단속 업무가 시작되자 표정이 돌변했다. 늘 미소를 띠고 있던 입꼬리는 차분히 내려앉았고, 양쪽 눈에는 힘이 들어가 사뭇 진지한 모습이었다. 김 순경의 지시에도 속도를 제때 늦추지 않는 운전자에게는 “정차하십시오”라며 단호하게 소리치기도 했다.
“안 됩니다. 하차하십시오!” 순간 김 순경의 목소리가 커졌다. 술을 마신 것으로 보이는 운전자가 차에서 내리지 않고 그대로 차를 몰려고 했기 때문이다. 김 순경의 단호한 지시에 운전자는 순순히 차에서 내렸다. 김 순경은 선배 박현재 경위와 함께 음주운전자의 신분을 확인하고 진술을 확보했다. 이 순간에도 김 순경은 친절함을 잃지 않았고, 음주 운전자가 묻는 말에 상세하게 답변해 줬다. 이어 대리운전 기사가 현장에 도착하는 것까지 살핀 후 이 운전자의 안전한 귀가를 도왔다.
이날 김 순경은 3~4명의 동료와 함께 2시간가량 음주운전 단속을 이어나갔다. 일부 경찰관은 단속 중에도 끊임없이 순찰차를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김 순경은 “인근에서 큰 사고가 나면 2~3대 정도는 하던 일을 멈추고 해당 현장으로 달려가야 한다”며 “특히 목, 금, 토요일에 음주운전자도 많고 사고도 자주 발생해 가장 바쁘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순경은 “교통과의 경우 단순 주취자보다 음주운전자들을 상대하다 보니 비교적 감정이 격해진 상태일 때가 많다”며 “경찰관까지 격해지면 자칫 일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친절하게 응대하며 음주 측정을 유도한다. 현행범 체포나 강제적인 방법으로 대응할 수도 있으나 최대한 유하게 상황을 다루려고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물론 이런 김 순경에게도 교통안전계에 적응하기까지 힘겨운 시기는 있었다. 4조 2교대로 돌아가는 시스템에서 근무일과 쉬는 날은 철저히 보장되지만, 낮과 밤이 매번 바뀌는 생활은 건강에 치명적이다. 김 순경은 “처음엔 생체 리듬이 엉켜서 피곤해도 낮에 잠이 안 왔다”며 “암막 커튼을 설치하고 잠이 잘 오는 노래를 틀어놓는 등 방법을 찾아서 적응하고 있다”고 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묻는 말에 김 순경은 처음으로 사망자를 마주한 교통사고 현장을 떠올렸다. 그는 “사망자를 처음 보고 나서 2주 넘게 피 냄새가 계속 났다”며 “냄새가 사라지지 않아서 선배들에게도 물어보고 운동을 더 열심히 하면서 겨우 극복했다”고 회상했다. 지난 10월31일 핼러윈데이도 힘들었던 날 중 하루다. 김 순경은 “당시 오후 4시께부터 다음날 오전 4~5시까지 작은 교차로, 횡단보도마다 서서 관리했다”며 “ 특히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사람들이 많던 새벽에 가장 힘들었다. 혹시나 인파가 몰려 사고가 발생할까 걱정이 컸다”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김 순경이 힘을 낼 수 있는 이유는 시민들 덕분이다. 김 순경은 본인의 업무를 ‘해결사’라는 한마디로 표현했다. 김 순경은 “시민들 가까이에서 불편함과 어려움을 해결해줄 수 있을 때 진정으로 행복하다”면서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다들 정신이 없어서 당황하고 벌벌 떨고 있는 분들도 계시는데, 제가 사고 처리를 도와주고 현장을 정리하면 나중에 고맙다고 인사하러 오기도 한다. 이럴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 순경은 경찰을 꿈꾸는 미래 후배들에게 “대한민국 치안이 잘 관리되고 있는 것은 경찰과 다른 공무원들이 현장에서 열심히 뛰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경찰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상당히 높고 자부심도 크다”라며 “예비 신입생들도 경찰에 대한 자부심을 버리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서 꼭 함께 일할 수 있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심성아 기자 hea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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