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오늘날 일자리는 개인에게 행복을 안겨주고 사회를 통합시킬 수 있는 근원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가이 스탠딩 런던대학교 소아스(SOAS) 교수는 저서 ‘시간 불평등’에서 오늘날 노동이 과연 행복을 가져다주는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노동은 통제할 수 없는 시간을 의미하며 이는 현대인에게 스트레스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의 원래 제목은 ‘시간의 정치학(The Politics of Time)’이다. 스탠딩 교수는 오늘날 거의 동일한 의미로 쓰이는 노동과 일이 고대에서부터 오랜 기간 동안 구분된 개념이었다는 설명으로 글을 시작한다. 일은 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행위이고 노동은 시간을 통제할 수 없는 행위였다고 설명한다. 그는 인류의 경제 체제가 일과 노동의 경계를 희미하게 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면서 통제할 수 없는 노동이 늘었고, 이로 인해 많은 문제가 야기됐다고 지적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일과 노동을 구분했다. 그리스인들은 시간을 사용하는 활동을 노동, 일(작업), 여가, 놀이, 관조의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다. 이 중 노동을 가장 하위의 개념으로 생각했다. 즉 노동은 일보다 하위에 있는 개념으로 인식했다. 노동이란 노동자와 장인, 외국인, 노예 등이 생계를 위해 수행하는 행위였다. 이러한 육체 노동은 신체와 정신 모두를 기형으로 만드는 행위로 보았다. 스스로를 수양할 수 있는 시간을 상쇄했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은 ‘아레테(arete)’, 즉 탁월함 혹은 도덕적 덕목을 갖춰야 시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노동을 할 경우 노동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느라 아레테를 갖추기 위해 스스로를 교육할 시간이 없다고 여겼다. 노동은 시민의 자격을 갖추는데 방해요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노동의 어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노동을 뜻하는 그리스어 포노스(ponos)는 고통과 노고를 의미했다. 또한 노동은 가난이라는 뜻의 페니아(penia)와 어원적 뿌리가 유사하다. 즉 그리스인에게 노동은 가난한 상황에서 수행하는 고통스럽고 힘든 활동을 의미했다. 반면 일(ergon)은 집 안 혹은 집 주위에서 친척이나 친구들과 함께 하는 활동이었다. 이를테면 돌봄, 공부, 교육, 군사훈련, 창조적 활동(시· 음악·연극), 배심원 활동, 종교의례 참여 같은 것들이었다.
불행하게도 인류의 역사는 이같은 노동과 일의 구분이 점차 희미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스탠딩 교수는 농업, 산업, 서비스업 순으로 발전한 경제 구조에 따라 시간 체제를 세 시기로 구분한다. 그는 산업화 시대인 19세기 말에 이르자 수많은 남성과 여성이 시간을 자기 방식대로 쓸 수 없게 됐다고 지적한다. 직업적 통제권을 상실했고 노동과 일자리에서 시간의 상품화가 이뤄졌다. 시간의 통제권 상실은 노이로제와 히스테리 등 광범위한 정신적·신체적 이상을 야기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광기와 문명: 이성의 시대 정신이상의 역사’ 등의 저서를 통해 정신병원은 바람직한 행동규범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을 구속함으로써 사회경제적 질서의 가치를 내면화하고 이에 순응하도록 하는 경고의 수단이 됐다고 지적했다. 스탠딩 교수는 부당 감금의 증가, 신체 구속구의 사용, 진정제의 남용 등은 노동주의 사회로의 이행에서 드러난 위기적 징후였다고 풀이했다.
정보기술혁명으로 대두된 오늘날 제3의 시간 체제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많은 사람들이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노동하는 데 사용하면서도 더 적게 벌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전지구적으로 계급 구조가 진화했다고 스탠딩 교수는 주장한다. 그 계급은 부호계급, 엘리트, 프로피션, 살라리아트, 프롤레타리아트, 프레카리아트로 구분된다.
부호계급은 일하지만 노동은 하지 않는 세계적인 억만장자들이다. 소득의 대부분이 보유 자산에서 나온다. 엘리트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사장 등을 일컫는다. 어느 정도 노동을 하면서 지대 형태의 자산에서 뿐 아니라 봉급으로도 소득을 얻는다. 프로피션은 컨설턴트, 건축가 등 자영업을 하는 전문직 종사자들인데 소득을 얻기 위해 열정적으로 노동하는 계층이다. 고용 문제에 있어 독립적이다. 살라리아트는 국가나 기업의 피고용인으로 정기적이고 예측 가능한 봉급을 받고 고용을 보장받은 계층이다. 오늘날에는 안정적이지만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줄고 고용이 불안정한 프레카리아트가 점점 늘고 있다. 프레카리아트는 소득을 거의 전적으로 노동과 일에 의존하기 때문에 고용의 불안정은 이들에게 큰 위협요인이 된다. 이들은 노동에만 매몰돼 있기 때문에 돌봄, 교육, 여가 등의 여유가 없고 사실상 시민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스탠딩 교수는 오늘날 통제할 수 없는 시간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계속 늘고 있다며 노동과 일을 구분하고 일의 회복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현대인들은 통제할 수 없는 노동에 매몰돼 있으며 통제할 수 있는 시간의 회복이 가능한 정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또 노동 환경이 열악해지는 현 상황에서 완전고용은 해법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대신 기본소득이 통제할 수 있는 시간의 확보를 위해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시간 불평등 | 가이 스탠딩 지음 | 안효상 옮김 | 창비 | 540쪽 | 2만8000원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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