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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K우먼톡]누명 벗기 위해 원수를 찌른 조선시대 여성 김은애
    입력 2025.01.06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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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경제 ] 1790년 전라도 강진현에서는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이제 겨우 18살의 새색시 김은애가 이웃의 여성 안조이를 살해한 뒤 관청에 자수했다. 그런데 이 살인사건에는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 피해자 안조이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중년 악역 여성의 나쁜 정수를 모은 것 같은 인물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친척 조카 최정련에게 은애를 결혼시켜주겠다며, 두 사람이 간통했다는 소문을 동네방네 퍼뜨렸다.

조선시대에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이런 추문을 듣는 것은 몹시 치명적이었지만, 다행히 은애의 무고함을 알아준 남편이 있어 은애는 무사히 결혼했다. 하지만 이 일로 앙심을 품은 안조이는 더욱 김은애의 흉을 보고 다녔다.

그렇게 2년이 흐르도록 안조이의 비방은 더욱 심해졌고, 마침내 참을 수 없어진 은애는 가족들 몰래 한밤중에 흉기를 들고 안조이의 집으로 찾아갔다.

사건 이후에 벌어진 조사에 따르면 안조이는 나이는 많되 키가 크고 건장했고 오히려 은애는 약했다. 그래서 안조이는 은애를 우습게 보며 도발했고, 마침내 은애는 안조이를 살해했다. 옷이 모두 피에 물들여 색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 은애는 최정련마저 죽이려 했지만, 은애의 어머니가 말렸기에 그만두고 관아에 가서 자수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살인은 엄청나게 큰 죄였다. 하지만 은애는 온몸을 묶인 채 심문을 받으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이제까지 공권력이 자신을 전혀 도와주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사람을 무욕한 죄에 대해서 관가에서 베푼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은애는 운이 아주 좋았다. 비록 남의 목숨을 빼앗는 살인이란 최고 수위의 폭력이었고, 의도적으로 그것을 저지른 은애가 죄가 없을 리는 없었다. 조선의 국법에서도 남을 죽인 자는 사형을 당하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은애가 처음 체포되었을 때의 현감과 관찰사 모두 은애의 사정을 듣고 안타까워했고, 처벌하기보다는 어떻게든 정상을 참작해주기 위해 애를 썼다. 결국 이 일은 왕에게까지 알려졌다.

당시 조선의 왕이었던 정조는 은애의 사정을 알고 특별히 명령을 내렸다. “억울하다고 자살하기는 차라리 쉽지만, 누명을 벗기 위해 칼을 잡고 원수를 찔러 자신이 죄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한 것”이라고 선언하고, 법을 굽혀가면서까지 은애를 처벌하지 않고 풀어주었다. 그리고 정조는 이덕무에게 명령을 내려 은애의 사건을 정리한 은애전을 쓰게 했다. 그렇게 은애는 파격적인 사면을 받았지만, 그래서 마냥 잘되었다고 하기엔 뒷맛은 씁쓸하다. 지난 2년 동안 은애가 자신의 억울함을 말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러나 무시당했고 도움을 받지도 못했다. 결국 살인이라는 최악의 폭력을 저지르고 난 다음에야, 세상은 은애의 목소리와 사정에 귀를 기울이고 안타깝게 여겼다.

그래도 살인은 그렇지 않느냐라고 말하는 것도 무심한 말이다. 많은 조선시대의 여성들은 억울한 일을 당하면 대들보에 목을 매어 삶을 끝내곤 했다. 그것도 엄연한 폭력이었다. 자신을 죽이느냐, 남을 죽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어째서 법을 지키는가?

그리고 어째서 법을 어기면 처벌을 내리는가? 법은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며 살기 위한 규칙이다. 그런데 만일, 법이 있음에도 죄 없는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면 내 억울함을 풀어주지 못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런 약자에게 무정하고도 잔인한 세상의 가슴팍에 칼을 꽂음으로써 은애는 자신의 이름 세 글자를 붉게 역사에 남겼다.

이한 역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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