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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40년 산 집 떠나는 노인들…"재건축 하면 어디로 가라고"[내 집을 시니어하우스로]
    입력 2025.02.1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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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25일 서울 영등포구 남성아파트. 남성아파트는 지난 2023년 5번의 유찰 끝에 시공사가 선정됐으며, 올해 안 이주를 목표로 재건축 사업이 진행중이다. 강진형 기자

[ 아시아경제 ]

"내가 사는 25평에 다시 들어가려면 재건축 분담금이 3억5000만원이래.”

누군가 꺼낸 재건축 얘기에 분위기가 일순간 어두워졌다. “젊으면 은행에서 대출이라도 받지. 벌이가 없는데 노인이 무슨 수로. 아파트에서 수십 년을 같이 살았는데 헤어지려니까 너무 섭섭해. 어디로 가냐고? 모르지. 몰라."

1983년 지어진 남성아파트는 재건축을 앞두고 있다. 2023년 10월 한화건설이 시공사로 정해졌다. 빠르면 올해부터 이주가 시작된다. 짧아도 20년, 길게는 40년 넘게 살아온 정든 곳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어르신들은 마음이 무겁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 다들 수십 년이다. 그 사이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장성한 자식들은 독립해 홀로 남은 할머니들이 많다.

“이 아파트에 사는 할머니들 중에 남편 있는 사람은 여섯뿐이야. 전부 과부라 갈 데도 없어. 자식들이 (재건축에) 동의해주라고 해서 하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취소됐으면 좋겠어." "390가구 중에서 100가구만 다시 들어와도 많이 오는 거라 하더라고. 더러는 분담금 내고 새 아파트 지으면 돌아오겠다고 하는 이들도 있긴 해." "재건축한다고 다른 데로 이사하면 나는 외지사람이 되는 거잖아. 거기서 다시 사람들 사귀기도 힘들 거야." 여기저기서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재건축·재개발…위기의 노인들
지난해 10월 25일 서울 영등포구 남성아파트에서 민순덕 할머니와 황정규 할머니가 경로당에서 함께 점심식사를 마친 뒤 집으로 이동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남성아파트의 현재 시세는 전용 58㎡ 기준으로 7억원 선이다. 분담금 3억원을 못 내면 현금청산을 하게 된다. 시행사로부터 감정평가 금액만큼 집값을 받는 것이다. 감정평가 금액은 실거래보다 대체로 낮다. 집을 판 돈으로 서울에서 전셋집 하나 구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노인들에게 살던 집을 떠나는 것은 사실상 '재난'이다. 낯선 곳으로 이주해 건강이 나빠지면 더 이상 집에 혼자 살 수 없고, 요양원 같은 시설에 들어가야 한다.

최희경 신라대학교 상담심리복지학과 교수는 "도시 노인들은 재개발·재건축으로 공간의 변화뿐 아니라 관계 단절과 심리적 불안을 겪으며 위기를 맞는다"며 "불안정한 이웃 관계는 혼란을 주고, 자기 정체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노인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의 재건축이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이다. 최 교수는 "정비사업을 계획하고 추진할 때 노인들의 인식과 경험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살던 동네에 머물게 하려면

재개발이나 재건축 때문에 거처를 옮겨야 하는 노인들을 위한 대책은 현실적으로 마땅치 않다. 박용선 국토교통부 주택정비과장은 "어르신들만 특정해서 이주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무주택자들도 넘쳐나는데, 유주택자 노인들의 이주까지 국가가 도와주는 건 형평성이 어긋난다는 맥락이다.

임대주택 우선 분양권 같은 고려할 만한 방법은 있다. 유선종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분담금이 없어서 입주를 못 하는 어르신들에게 새 아파트 내에 지어지는 임대주택 우선 분양권을 준다면 최소한 살던 동네에서 계속 사실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심나영 차장(팀장) sny@asiae.co.kr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강진형 기자(사진) aymsdre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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