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1. 90세를 앞둔 A씨는 100억대 자산가다. 2023년 초, A씨의 아내인 B씨는 A 씨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A씨의 부정행위(외도)로 의심되는 사례가 B 씨에게 포착된 것. 당시 이들의 재산은 모두 A씨의 이름으로 된 상태였다. B씨는 절세 방법이 궁금했다. 상담 과정에서 이혼으로 재산분할 금액을 전액 현금으로 받게 된다면 A씨와 B씨가 내야 할 세금이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 자녀 2명은 아버지 A 씨에게 어머니 B씨와 이혼하라고 설득했다. 아버지가 사망했을 때 상속받는 재산에 대해 상속세를 내야 하는데 사망 전 어머니와의 재산분할로 재산 규모가 작아진다면 상속액이 적어져 상속세도 작아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어머니가 상속인이 아니기 때문에 상속받을 수 있는 액수가 더 커질 가능성도 피력했다. A씨는 결국 B씨와 이혼했다.
#2. C 씨는 보유한 주택의 수가 많아지자 중과세가 걱정됐다. 절세 고민이 컸다. 중과세를 피하기 위해 배우자와 이혼하기로 결심했다. C 씨는 실사 때 위장 이혼이라는 사실이 적발되는 경우가 있어 어떻게 하면 될지 법률 자문을 구했다.
#3. 기러기 아빠인 D 씨는 증여세를 아끼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다가 해외에서 지내는 아내와 이혼하는 방법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곧장 변호사를 찾아 자세한 자문을 구했다.
70세 이상 초고령 자산가들이 ‘절세 이혼’을 자산 정리 방책으로 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대개는 거액의 상속세나 증여세를 피하기 위해 세무 상담을 받다가 ‘이혼이 절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결론에 이르면서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 이혼 상담까지 받는 것이다. 변호사들은 “위장 이혼은 위법”이라고 경고하지만,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이 실질적인 절세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니다”고 할 수 없어 자문을 안 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세금 내지 않는 ‘재산분할’로 자산정리
법조에서는 상속·증여세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을 근본적인 원인으로 보고 있다. 상속세는 과세표준 30억 원을 초과하면 세율이 50%에 달하고, 배우자 증여도 비과세 한도가 6억 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이 같은 수요가 더 많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남편과 아내가 70대 이상인 경우 이혼 건수 및 비중은 증가하는 추세였다. 남편이 75세 이상이고 아내가 75세 이상인 경우는 전체 이혼 건수가 감소함에도 증가하는 추세다. 75세 이상인 남편이 이혼하는 건수 가운데 아내가 75세 이상인 경우의 비중은 2020년 이후 꾸준히 30%를 넘고 있다.
남편과 아내 모두 75세 이상인 경우엔 이혼 건수가 2014년 224건, 2015년 233건, 2016년 268건, 2017년 331건, 2018년 449건, 2019년 526건, 2020년 555건, 2021년 629건, 2022년 681건, 2023년 682건에 달한다. 이들의 이혼율은 2014년 24%, 2015년 25%, 2016년 25%, 2017년 26%, 2018년 28%, 2019년 31%, 2020년 31%, 2021년 31%, 2022년 35%, 2023년 36%였다< 3면 그래프 참조>. 초고령 이혼의 원인이 ‘절세’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법조에서는 이런 경향도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조세 체계 바꾸지 않으면 계속”
한 가사 전문 변호사는 “오래전부터 자문 수요가 있었다”며 “경험상 대부분 60대 이상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100억 원대 자산가가 아니더라도, 30억 원만 넘으면 50%의 상속세율을 적용받기 때문에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금을 피하기 위해 이혼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굉장히 난감하다”며 “선택은 의뢰인이 하더라도 변호사로서 ‘아니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다른 가사 전문 변호사도 “‘부부 별산제’라고 하지만 하나의 가구를 중심으로 세제가 짜여 있고 배우자 세금 공제 기준도 낮기 때문에 고액 자산가가 이혼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하는 것”이라며 “이혼이 최선이라고 결정하는 고액 자산가들이 늘고 있다”고 시장 상황을 전했다.
국세청은 세금을 줄이기 위한 이혼을 ‘가장 이혼’으로 정의하고 세금을 부과한다. 이때 법적 다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 다른 가사 전문 변호사는 “탈세 수단으로 볼 수도 있다”면서도 “세금을 아끼기 위한 이유를 포함해 여러 이유로 협의해 이혼을 선택한다면 이것을 범법으로 볼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부부를 기준으로 보는 세금이 결혼을 안 한 경우보다 큰 상황이어서 이혼을 택하는 것 같다”며 “서울에 아파트 한 채만 있어도 내야 할 세금이 많아 조세 체계 변화 없이는 관련 자문 수요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일본·프랑스는 배우자 전액 면제
수많은 요구에도 상속·증여세는 수십년간 과세 요건에 변동이 없다. 대주주 할증까지 적용하면 60%에 달하는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 자산가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면서 국내 자산의 해외 도피와 역외 탈세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유신혜(47·사법연수원 40기) 변호사가 작성한 논문 ‘고령화사회에서 상속세 및 증여세의 합리적 개편방안 검토’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은 상속세를 폐지했거나 부담을 낮춰 운용하고 있다. 38개 OECD 회원국 중 상속 관련 세금을 부과하는 국가는 24개국으로 미국, 영국, 덴마크, 한국 4개국은 유산세 방식(피상속인 전체 재산에 대해 과세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고, 나머지 20개국은 유산 취득세 방식(상속인이 상속으로 인해 취득한 상속재산만을 기준으로 누진세율을 적용해서 과세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OECD 비회원국 중에는 2008년 싱가포르가 상속세를 폐지했다. 중국, 홍콩, 러시아, 베트남도 상속세가 없다. 유산세 방식을 취하는 국가 중 배우자 공제에 공제 한도를 설정한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미국, 영국, 덴마크는 한도 없이 전액 면제다. 유산 취득세 방식을 취하는 국가에서도 일본, 프랑스를 포함해 대부분 국가가 배우자의 경우 한도 없이 전액 면제하고 있다.
박수연 법률신문 기자
한수현 법률신문 기자
최신순
추천순
답글순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