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0
5
0
사회
77년 만에 찾은 이름… “아버지,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제주 강동삼 기자
    입력 2025.02.24 16:48
    0

4·3희생자 고 김희숙씨의 아들 김광익씨가 24일 오후 2시 제주4·3평화공원 내 4·3평화교육센터 대강당에서 열린 4·3희생자 신원확인 보고회에서 인사말을 하다 목메어 울고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4·3희생자 고 김희숙씨의 아들 김광익씨가 24일 오후 2시 제주4·3평화공원 내 4·3평화교육센터 대강당에서 열린 4·3희생자 신원확인 보고회에서 인사말을 하다 목메어 울고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아버지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4·3희생자 유해 2구에 대한 신원확인 결과보고회가 24일 오후 2시 제주4·3평화공원 내 4·3평화교육센터 대강당에서 열렸다. 이번에 확인된 희생자들은 예비검속 희생자 고 김희숙(1921년)씨와 9연대 군인 희생자 고 강정호(1926년)씨다.

김 씨의 아들 김광익씨는 “4·3관계자 여러분, 아버지 유해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며 목메어 불러보고 싶은 아버지 이름을 불렀다. 얼마나 부르고 싶었던 이름이었을까. 그동안 참아왔던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세번씩 외치며 눈시울을 붉혔고 마치 만세하듯 두손을 불끈 올리며 울먹이자 장내가 숨죽인 듯 숙연해졌다. 그동안 아버지를 보고 싶을 때마다 알뜨르 비행장 비석에 새겨진 아버지 이름을 만지며 소리쳤던 회한의 세월을 떠올렸다.

강씨의 조카 강중훈씨도 “작은 아버지가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모른다. 그렇게 덧없는 세월이 어느덧 70여년이 흘렀다. 부르고 싶어도 부르지 못했던 숙부님 이름을 이제야 불러본다”며 “당시 제 나이 8살 되던 해, 숙부님은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형제 모두 성산포 터진목에서 죽음을 당했다. 그 사연을 어디에서도, 누구에게도, 하소연 못하고 숨기며 살아왔다”고 통한의 세월을 토로했다.

그는 “가슴 아픈 혼돈의 세월이었다”며 “제 나이도 85살이 됐으며 돌아가신 가족을 추모하던 어머니도 102살에 세상을 뜨셔서 이제 우리 곁에 없다”고 전했다. 이어 “늦었지만 그래도 숙부님 신원이 확인된 건 하늘의 은혜”라고 말한 뒤 “4·3평화공원에도 환한 봄기운이 찾아든다. 용서와 화해의 기운으로 샘솟고 있다”며 부디 영면하길 기원했다.

4·3희생자 신원확인 보고회에서 고 김희숙 희생자의 아들 김광익(오른쪽)씨와 고 강정호 희생자의 조카 강중훈씨가 이름없던 유해함에 이름표를 붙여드리고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4·3희생자 신원확인 보고회에서 고 김희숙 희생자의 아들 김광익(오른쪽)씨와 고 강정호 희생자의 조카 강중훈씨가 이름없던 유해함에 이름표를 붙여드리고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제주4·3 당시 최대 학살터로 알려진 제주국제공항 활주로 아래 묻혀 있던 두사람. 그동안 이름표 없이 번호로만 안치됐던 유해의 신원이 유가족의 채혈로 확인되면서 70여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날이었다.

한림면 저지리 출신 김 씨는 2007년 제주공항 남북활주로 서북편에서 발굴됐다. 한경면 저지리에 거주하던 고인은 고인은 1948년 소개령이 내려지자 해안마을인 고산리로 이주해서 살다가 저지리 마을재건 명령 떨어져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6·25전쟁 발발 직후 시행된 예비검속으로 인해 1950년 7월쯤 이유도 모른채 모슬포경찰서로 끌려간 후 행방불명됐다.

2009년 제주공항 남북활주로 동북편에서 수습된 희생자 강 씨는 성산읍 오조리가 고향으로 1948년 제주 출신 9연대 소속 군인들이 집단 희생당했을 때 함께 끌려갔다는 소식을 끝으로 행방불명됐다. 강씨는 모슬포에서 군인으로 복무를 하고 있던 상황이다.

1948년 4·3이 발발했을 때, 제주에 들어온 9연대는 강경진압작전에 나섰지만 이에 동조하지 않은 일부 군인들이 탈영 이후 체포돼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오영훈 제주도지사, 이상봉 도의회의장, 김광수 교육감이 4·3희생자 신원확인 보고회에서  4·3희생자 유해함 앞에서 헌화와 분향을 하고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오영훈 제주도지사, 이상봉 도의회의장, 김광수 교육감이 4·3희생자 신원확인 보고회에서 4·3희생자 유해함 앞에서 헌화와 분향을 하고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이날 행사에 참석한 오영훈 지사는 추도사를 통해 “애초에 두 분은 섯알오름과 모슬포에서 각각 희생된 것으로 조사됐지만, 이번 신원확인을 통해서야 제주공항에서 사망한 사실이 밝혀졌다”며 “역사의 어둠 속에서 오랜 세월 이름 없이 잠들어야 했던 영령들의 명복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영령들이 하루빨리 제 이름을 찾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직계와 방계 유족의 추가 채혈을 해주길 바란다”며 “제주도정은 4・3평화재단과 함께 4・3 희생자들의 신원을 모두 밝히고, 그들이 가족 품에 돌아와 비로소 영원한 안식을 취하도록 총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상봉 도의회의장은 “오랜 세월 침묵 속에 묻혀 있던 두분의 유해 신원 확인됐다. 여전히 이름을 찾지 못한 많은 희생자들이 있다. 마지막 한 분까지 이름을 되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한 분도 잊히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면서 “4·3 진실을 기억하고 알리는 모든 과정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달라”고 주문했다.

김광수 교육감도 “제주4·3은 아직도 진행형인 역사이며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 남아있다”며 “신원 확인과정이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과정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오승국 시인(제주작가회의 회장)은 ‘속절없이 울고 가는 정뜨르 바람이여/ 빈 들판 풀잎을 흔들리 마라/목숨하나 허덕이는 처절한 모습일지라도/ 동녘이슬 소박하게 맞아/동백꽃 붉게 붉게 눈물로 피워낸다//…사멸의 불바람이/휩쓸고 간 죽음의 시대/돌아오지 않을 새 봄을 꿈꾸며/허지기진 배 쥐어잡고/간절했던 목숨하나 호소했건만/아, 고향땅 성산포/마룻장 밑 짧은 사랑이여/말한마디 손가락질 하나가/죽음으로 가는 죄였구나//… 칠십오년 세월 사뿐히 건너/태 사른 땅 한라의 대지에서 편히 쉬세요/작별하지 않을 약속을 위해/우리 제주섬 후손들 손 꼭 잡아주세요’ 라며 헌시 ‘진혼애가’를 바쳤다.

한편 4・3평화공원에는 행방불명인 표석 4064기가 아직 주인의 귀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유해 발굴과 유전자 감식 사업을 통해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147명이다. 도내에서 발굴된 유해 417구 중 아직 272구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평화
    #기자
    #신원
    #이름
    #제주
    #확인
    #보고회
    #아버지
    #사랑
    #희생자
포인트 뉴스 모아보기
트렌드 뉴스 모아보기
이 기사, 어떠셨나요?
  • 기뻐요
  • 기뻐요
  • 0
  • 응원해요
  • 응원해요
  • 0
  • 실망이에요
  • 실망이에요
  • 0
  • 슬퍼요
  • 슬퍼요
  • 0
댓글
정보작성하신 댓글이 타인의 명예훼손, 모욕, 성희롱, 허위사실 유포 등에 해당할 경우 법적 책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최신순
    추천순
    답글순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회 주요뉴스
  • 1
  • 김현곤 경과원장, 14일 취임…19개 해외 GBC 소장과 화상회의
    아시아경제
    0
  • 김현곤 경과원장, 14일 취임…19개 해외 GBC 소장과 화상회의
  • 2
  • 대진대, 상생발전委 발족…대학 혁신과 미래 성장 도모
    아시아경제
    0
  • 대진대, 상생발전委 발족…대학 혁신과 미래 성장 도모
  • 3
  • 백종원, 이번엔 '농약통으로 주스 살포' 논란?…연이은 구설수
    아시아경제
    0
  • 백종원, 이번엔 '농약통으로 주스 살포' 논란?…연이은 구설수
  • 4
  • LG화학·롯데케미칼 정전 사고 원인 공유…서산시 재발 방지 촉구
    스타데일리뉴스
    0
  • LG화학·롯데케미칼 정전 사고 원인 공유…서산시 재발 방지 촉구
  • 5
  • 하남시, 정책모니터링단 통한 권역별 현장모니터링 체계 강화
    아시아경제
    0
  • 하남시, 정책모니터링단 통한 권역별 현장모니터링 체계 강화
  • 6
  • 핫플 급부상한 '하이커 그라운드', 방문객 200만 명 돌파 
    Tour Korea
    0
  • 핫플 급부상한 '하이커 그라운드', 방문객 200만 명 돌파 
  • 7
  • 경기도, 감염병 대응 강화…감염병관리위원회 2025년 정기회의 개최
    중앙이코노미뉴스
    0
  • 경기도, 감염병 대응 강화…감염병관리위원회 2025년 정기회의 개최
  • 8
  • 고양시, 지식산업센터 협의회 간담회 개최
    아시아경제
    0
  • 고양시, 지식산업센터 협의회 간담회 개최
  • 9
  • 주광덕 남양주시장 “교통·문화 인프라 확충에 총력 기울일 것”
    아시아경제
    0
  • 주광덕 남양주시장 “교통·문화 인프라 확충에 총력 기울일 것”
  • 10
  • 부산시교육감 재선거 후보 3명 등록…중도·보수 ‘2차 단일화’ 될까
    서울신문
    0
  • 부산시교육감 재선거 후보 3명 등록…중도·보수 ‘2차 단일화’ 될까
트렌드 뉴스
    최신뉴스
    인기뉴스
닫기
  • 뉴스
  • 투표
  • 게임
  • 이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