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프란치스코 교황(88)이 폐렴과 호흡 곤란으로 인공호흡기 치료를 반복하며 사투 끝에 안정적 상태를 유지했다고 지난 5일(현지시간) 교황청이 밝혔다. 즉위 이후 20여일째 최장기간 입원 중이다. 코로나19로 사망자가 쏟아진 2020년 3월 비 내리는 저녁, 성 베드로 광장에서 노구를 이끌고 인류를 위해 홀로 기도하던 그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이젠 전 세계가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PrayForPope
영화 ‘두 교황’(The Two Popes·2019)을 다시 봤다. 가톨릭계 ‘정통 보수’였던 베네딕토 16세의 자진 사임과 그 뒤를 이은 ‘진보 성향’ 프란치스코 두 교황의 실화를 다뤘다. 교황은 종신직이기에 가톨릭 역사에서 두 교황이 동시대에 공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베네딕토는 바티칸 내부 비리 등으로 위기를 겪던 교황청 개혁을 위해 2013년 자진 사임을 전격 발표하고 자신과는 대척점에 서 있던 프란치스코를 후임자로 추천했다. 바티칸 역사에서 교황이 스스로 물러난 것은 598년 만의 일이었다.
‘두 교황’을 다시 본 이유가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있다. 국민은 갈라졌으며 법치는 위태로워지고 있다. 전례 없는 분열과 대립 속에서 상처받은 우리 공동체에 전하는 신의 ‘메시지’가 있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바람 때문이었다.
로마 가톨릭은 신이 세운 인간으로서 최고의 권력을 교황에게 부여한다. 그러나 베네딕토는 그 권력이 어떻게 승복하고 물러날 것인지를 보여줬다. 지상에서 최고의 권력을 가진 자의 가장 특별한 승복을 보여준 것이다. 모든 것이 서로 달랐던 영화 속 두 교황의 대화 장면은 만남과 화해의 서사시다.
“세상의 기준과 타협하지 않고 전통을 지키는 것이 종교다. 신은 변하지 않는다”(베네딕토) / “교회가 더 이상 세상의 일부가 아닌 것 같다. 소외된 자들과 함께하고 있지 않다”(프란치스코) / “인기를 위해 타협하는 것이 아닌가”(베네딕토) / “아니다. 변화다. 고해성사는 죄를 씻지만, 피해자를 돕지 못한다”(프란치스코)
베네딕토는 동성애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세속주의와 남미의 해방신학에 반대해왔다. 프란치스코는 비유럽권(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사제였을 때부터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했고 동성애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열려 있다. 그러나 베네딕토는 로마 가톨릭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가장 비전통적인 출신과 성향의 프란치스코를 후임으로 선택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다가오면서 일부 종교 지도자들이 헌재 해체까지 주장하며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면 불복해야 한다고 선동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헌재 결정에 승복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지 않고 있다. 헌재가 어떤 결정을 하든 그 결정이 우리 공동체 분열의 종착지가 될지 시발점이 될지 걱정이 깊어진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종교의 과잉 정치는 경계했다. 그는 “공동선을 향한 뜨거운 마음으로 사회 ·문화·정치 생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달라”고 당부하면서도 “믿음이 대립을 조장하려는 집단들에 이용되거나 도구화될 위험”을 경고했다.
우리는 정치로부터 떨어져 살 수 없으며 누구라도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자유가 있다. 그래서 우리 공동체는 모두가 동일해질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다만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것들을 안으로 품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다가올 헌재 결정이 특정 진영의 승패가 아닌 모두의 일상을 회복하는 시작점이 돼야 한다.
조영철 콘텐츠편집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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