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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70대라서 ‘강남 건물주’도 국선 변호사 쓴다[국선변호리포트]
    입력 2025.03.12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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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경제 ]

편집자주형사사건 피고인 10명 중 4명이 국선(國選) 변호사 도움을 받는다. 국선 변호는 주로 경제적 능력 등으로 인해 변호인을 선임하기 힘든 피의자·피고인의 헌법상 권리(변호인 조력권)를 보장하려고 만든 제도다. 그런 만큼 ‘국선 변호 스토리’에는 우리 사회의 환부와 사각지대가 많이 녹아 있는 것이다.

10년차 국선전담 변호인인 A변호사는 70대 강남 건물주 김모씨 사건을 법원으로부터 배당받았다. 김씨는 세입자와 다툰 후 상가의 전기를 끊고 잠금장치를 바꾼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런데 “변호사 수임료가 아깝다. 일단 국선이 하는 걸 보겠다”며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국선변호인을 붙여달라고 법원에 청구했다.

미성년자를 유흥업소에 고용해 기소된 이모씨 사건도 A변호사에게 왔다. 이씨가 공소사실을 부인하면서 변호인 선임을 미루자 법원에서 증거조사와 주장 정리 목적으로 국선변호사를 붙여준 것이다. 이씨 또한 상당한 재력가였다. A변호사는 “이런 사례가 국선 변호인에게 배당되는 사건의 절반 가량은 될 것”이라며 “진짜 ‘국선변호’가 필요한 피고인들 사건에 집중하기 어렵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국선 변호 제도는 본디 사회·경제적 약자의 방어권을 국가가 보장해 주자는 차원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보호 대상을 ‘두텁게’ 하자는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운용 사례도 적지 않다. 형사소송법은 70세 이상 피고인을 ‘필요적 국선’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일흔 넘는 노인 피고인은 법원이 직권으로 국선변호인을 선정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나이’만 기준으로 돼 있어서 자력으로 변호인을 선임할 충분한 능력이 되는 ‘노인’들이 ‘밑져야 본전식’ 혹은 ‘간보기용’으로 국선변호인을 쓰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한 국선변호인은 “벌금형을 받고 정식재판을 청구한 경우에도 국선변호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며 “소송 남발이 우려되는 사안까지 국선이 필요한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9년 국선변호인이 선임된 70세 이상 피고인은 6500명 수준이었지만 2020년 7300명, 2023년 8500명으로 계속 늘고 있다. 4년만에 30% 증가다. 필요적 국선 요건에 해당하는 미성년자(919명) 장애인(146명), ④사형·무기 또는 단기 3년 이상의 징역·금고에 해당하는 사건(4438명) 보다 훨씬 많은 상황이다.

한 국선전담변호인은 “재판을 고의적으로 지연하는 경우 진행 편의를 위해 재판부가 그 자리에서 국선전담변호인을 지정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임의적 국선변호 사례 가운에서도 ‘공짜로 변호사 쓰는 법’을 알고 악용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했다. 꼼수가 성행하면 제도의 본질이 흐트러지는 법이다.

국선 전담변호사의 보수는 2007년 이후 19년째 월 600만원(최초위촉 기준) 수준이다. 월평균 20건 안팎의 사건을 맡는 걸 감안하면 건당 약 31만원을 받는 셈이다. 한 국선전담변호사는 “통계적으로 국선변호인이 형사사법절차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만, 사회경제적 취약층에게 집중되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는 결국 국민 세금이 엉뚱하게 새는 결과로도 귀결된다.

김정욱 대한변협회장은 “국선보수 보수 인상과 국선전담변호인 처우 개선이 필수로 이루어져야 한다”면서 “국선 변호 허용 대상을 명확하게 선별해 사회적 약자가 실질적이고 충분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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