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한국은 국민 3분의 1이 생수를 마실 정도로 시장이 성장했지만 규제는 수십년 전에 머물러 있다. 자연 속 ‘일반세균’은 인체에 무해하다는 과학계의 연구로 주요국들은 이미 규제를 풀었는데 한국은 제자리걸음이다. 생수기업은 안전한 제품을 만들어도 영업정지를 받는 일도 부지기수다. 따라서 불합리한 생수 규제는 풀어 기업 부담을 덜어주자는 게 이번 대책의 골자다. 다만 미세플라스틱 등 새롭게 떠오르는 문제에 대해서는 대책을 담지 못한 점이 숙제로 남았다.
13일 아시아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환경부는 이달 중 ‘먹는샘물 관리 선진화 전략’을 통해 생수 규제를 정비한다. (관련 기사: [단독]국민 30%가 마시는 생수, 27년만 규제완화)
정부가 27년 만에 생수 규제를 푸는 배경에는 급속도로 커진 시장이 있다. 국내에서 생수는 1975년 미군부대 납품을 위해 처음 개발됐지만, 우리 국민에게 판매하는 행위는 20여년간 불법이었다. 그런데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으로 수돗물 불신이 커지고 생수 구매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1994년 3월 당시 보건사회부(현재 보건복지부)가 생수 판매를 허용했다. 이듬해인 1995년 생수를 관리하기 위한 ‘먹는물관리법’도 만들어졌다.
이후 생수시장은 매년 빠르게 성장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0년만 생수시장 규모는 약 3000억원대까지 올라섰다. 2018년에는 처음 1조원을 돌파했고, 예상보다 2년 빠른 2021년에 2조원의 벽을 깼다. 2023년 기준 국내 생수시장은 크기는 2조7400억원에 달하는데 지난해에 3조원을 넘어섰을 거라는 게 유로모니터의 전망이다.
해외에서 들여오는 수입생수까지 대폭 증가했다. 2013년 생수수입업체는 2013년 67개소에서 10년 동안 107개소로 40개소(59.7%) 늘었다. 이 기간 수입생수 유통량은 5만t에서 24만t으로 19만t(380%) 불어났다. 현재 먹는샘물 제조업체는 63개에 달하고 이들이 만드는 생수 제품만 300여개에 달한다. 환경부의 지난해 12월 발표한 ‘수돗물 먹는 실태조사 결과’에 의하면 생수를 직접 사는 가구는 전체 34.3%에 육박한다.
생수가 일상화됐지만 규제는 수십 년 전에 멈춰있다. 특히 생수보다 생수를 만드는 샘물의 수질을 더 깐깐하게 관리하는 1998년 방식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소비자 몸에 유입되는 생수는 1mL당 일반세균집단을 100개까지 허용하는데, 생수를 만들 때 쓰는 샘물은 일반세균집단이 5~20개를 넘을 수 없다. 안전한 생수를 만들었는데, 원료인 샘물은 안전하지 않다는 모순적인 검사 결과가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 보니 생수기업은 안전한 제품을 만들고도 징계를 받는다. 2021년 경기도에 있는 한 생수기업에서는 취수장에서 채취한 물 1mL에 일반세균집단이 45개 발견됐다. 소비자가 구매하는 생수 규제를 적용하면 두배 가량 깨끗한 물이지만, 별도의 샘물 안전기준을 따르다 보니 기준치를 2.2배 위반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해당 샘물로 만든 생수는 안전 기준을 충족해 판매했는데도 취수정지 1개월이라는 중징계에 처했다.
미국도 안하는 샘물 세균국은 국민 3분의 1이 생수를 마실 정도로 시장이 성장했지만 규제는 수십년 전에 머물러 있다. 자연 속 ‘일반세균’은 인체에 무해하다는 과학계의 연구로 주요국들은 이미 규제를 풀었는데 한국은 제자리걸음이다. 생수기업은 안전한 제품을 만들어도 영업정지를 받는 일도 부지기수다. 따라서 불합리한 생수 규제는 풀어 기업 부담을 덜어주자는 게 이번 대책의 골자다. 다만 미세플라스틱 등 새롭게 떠오르는 문제에 대해서는 대책을 담지 못한 점이 숙제로 남았다.
국제 기준과도 거리가 멀다. 미국은 2009년 12월부터 페트병에 담은 생수에 대해 식품의약국이 세균을 검사한다. 하지만 대장균군을 검사할 뿐 한국처럼 일반세균까지 구체적으로 규제하지 않는다. 공공 식수를 공급하는 공공기관이나 조직은 규제가 있지만, 1mL 당 500개의 일반세균집단까지 허용한다. 규제 수준만 단순히 따지면 한국보다 최소한 5배는 넓은 규제다.
캐나다 역시 샘물에 박테리아가 존재하는 것이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캐나다생수협회(CBWA)는 지침을 통해 ‘샘물은 자연의 산물로 박테리아가 일부 포함돼 있다’며 ‘많은 일상 식품 및 음료 제품에서 발견되고 건강을 위협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생수 제품도 일반세균 숫자를 규제하지 않고 위해를 끼치는 대장균군, 지아르디아, 크립토스포리디움의 멸균에 집중한다.
심지어 웨일스나 북아일랜드는 아예 샘물의 일반세균을 인위적으로 소독하지 못하도록 규제한다. 약품을 쓰지 않는 자외선(UV) 처리도 불가능하다.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일반세균을 없애는 노력은 오히려 샘물을 훼손하고 생태계를 인위적으로 바꾸는 비(非)친환경적 행동이기 때문이다.
일반세균에 관대할 수 있는 건 과학 덕분이다. 2002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샘물 보고서를 내고 “분변 오염만 없다면 섭취한 물의 일반세균과 인간의 건강 사이에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1990년대까지 샘물을 관리하던 대부분의 국가는 해당 발표 이후 점차 규제를 풀었지만, 한국 등 일부 국가만 샘물에도 강도 높은 규제를 유지 중이다.
이번 대책으로 생수기업의 애로사항이 상당 부분 해소될 전망이지만 숙제는 남아있다. 생수 내에 있는 20㎛(마이크로미터·0.001㎜) 이상의 미세 플라스틱 문제다.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시중에 유통되는 먹는샘물 30종에는 1리터당 평균 0.9개의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돼있다. 지난해 11월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환경부 주재로 먹는샘물 관리 선진화 토론회를 열었을 때도 미세 플라스틱 문제가 거론됐지만 이번 대책에는 빠졌다.
정부는 미세 플라스틱 저감 방안은 국제적인 기준이 정해진 뒤에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미세플라스틱을 어떻게 측정하는지에 대한 국제 표준이 확정되지 않았고 위해성에 대한 기존 자료들도 이견이 많다”며 “이번 대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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