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지난 13일 오전 11시 서울 성동경찰서 여성청소년강력범죄수사팀. 강형준 순경(28)은 밤사이 발생한 청소년 폭행 사건의 물증을 확보하기 위해 공원 CCTV를 샅샅이 뒤졌다. 사건의 정확한 경위를 파악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특정하기 위해서다. 강 순경은 “CCTV 분석을 통해 단순 청소년 다툼인지, 학교폭력인지 등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인내를 갖고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확인한다”고 말했다.
2023년 6월 경찰로 임용된 강 순경은 한양지구대에서 근무 후 지난해 2월 성동경찰서 여성청소년강력범죄수사팀으로 발령받았다. 강 순경은 “경찰 지구대원으로 근무하며 여성·청소년 관련 사건을 많이 접했다”며 “심층적으로 수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지원하게 됐다”고 했다.
여성청소년강력범죄수사팀은 아동학대, 가정폭력, 성폭력, 스토킹 범죄를 수사한다. 2020년 의붓아버지·의붓어머니의 상습 폭행으로 숨진 ‘정인이 사건’을 계기로 신설된 팀이다. 성동경찰서 기준으로 팀장, 주임 등 총 4명이 일하는 소규모 조직이지만 지난해 3~12월 187건의 강력 사건을 해결했다.
강 순경의 수사 강점은 공감 능력이다. 그는 “여성·청소년 관련 사건의 경우 대부분 관계성 범죄(가까운 사이에서 일어나는 범죄)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이 매우 클 수밖에 없다”며 “저 자신의 강점인 공감 능력을 통해 여러 사건에서 피해자의 결정적 진술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강 순경은 피해자들이 망설이지 않고 수사기관 등에 정식으로 도움을 요청하길 바란다. 관계성 범죄는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한 재발의 위험이 높고, 반복되며 강력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강 순경은 상습 가정폭력 피해자 사건 해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당시 현장 조사, 피해 아동 보호조치 등 절차를 진행하고, 추후 가해 부모가 더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때 여성청소년강력범죄팀 경찰관으로서 큰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강 순경은 “가정폭력의 경우 일단 신고가 이뤄져야 부모 등 가해자가 ‘내가 크게 잘못했구나’라고 인지하게 된다”며 “개선 가능성이 보이면 가해자 처벌보다 가정보호사건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비로소 피해자가 평온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이라며 “피해가 발생했을 때 주저하지 않고 신고를 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여성청소년강력범죄는 주로 주말과 밤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야근이 잦다. 피해자가 신청한 접근금지명령을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경찰은 사건 발생 36시간 내 검찰에 관련 서류를 신청하고, 검찰은 48시간 내 법원에 청구해야 한다. 강 순경은 “검찰에 서류가 도착하는 데까지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는 점을 고려해 서류를 미리 작성해야 하므로 초과 근무가 많을 수밖에 없다”며 “처음에는 업무 시간이 불규칙한 탓에 애로사항이 있었지만 저로 인해 피해자가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강 순경은 서울 성수동이 MZ세대(밀레니얼+Z세대)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면서 성범죄 신고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강 순경은 지난해 12월 K문화에 관심을 갖고 한국에 온 외국인 여성의 성범죄 사건에 대해 끈질긴 수사를 벌여 지난 1월 검찰에 송치했다. 강 순경은 “외국인 여성은 출국했고, 피의자는 완강히 범행을 거부해 혐의 입증이 쉽지 않았지만 동선을 추적한 결과 결정적인 범행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실 강 순경은 은행원으로 일하다 경찰을 제2 직업으로 삼았다. 은행 창구 업무 3년 차에 접어들 때쯤 어릴 때 ‘나쁜 사람을 잡아 세상을 밝게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 순경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줬다는 성취감으로 인해 업무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했다.
강 순경은 은행원 경력을 바탕으로 추후 경제범죄수사팀에서 사기, 횡령, 배임 등 경제범죄 사건을 수사해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은행에서는 부동산 대출, 펀드 및 파생펀드 등 상품을 중점으로 다뤄왔다”며 “금융 관련 지식이 있어 중대한 경제범죄 수사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강 순경은 정보공학 관련 전공으로 야간대에 진학해 컴퓨터 프로그래밍 등 다양한 기술 분야에 대한 배경지식도 쌓고 있다.
강 순경은 “누구나 믿을 수 있는 경찰이 되고 싶다”며 “앞으로 수사 역량을 키워 피해자뿐만 아니라 경찰 팀 내에서도 저를 믿고 사건을 맡길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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