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기업 회생을 신청하기 직전 새로 설립된 회사가 실질적으로는 채무 회피 수단에 불과하다면, 기존 회사의 빚을 함께 갚아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두 회사의 사명과 대표이사가 서로 달라도, 실질적인 자산과 인력, 사업 연속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었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31부(재판장 김상우)는 최근 벤처캐피털(VC) A사가 식품 관련 스타트업 B사와 그 대표, 그리고 신설 업체인 C사를 상대로 낸 주식매매대금 등 청구소송에서 "피고들이 공동으로 6억70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020년 A사는 정부의 모태펀드 지원금을 받아 스타트업 투자를 위한 펀드를 조성해, 유아용 간식을 만들어 팔던 B사의 상환전환우선주(RCPS) 30만주를 약 10억원에 인수했다. RCPS는 투자자가 일정 조건에 따라 보통주로 바꾸거나 원금으로 회수할 수 있는 주식이다. A사는 이듬해 B사의 전환사채(CB) 5억원어치도 추가로 매입했다.
문제는 A사 측의 반대에도 B사가 2022년 5월 법원에 기업 회생을 신청하면서 불거졌다. 투자 계약서에는 '회생 신청이나 파산 신청 등 회사 구조에 중대한 변경이 있을 경우 A사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는데, B사가 이를 어긴 것이다.
이후 A사는 계약 위반을 근거로 주식매수청구권과 사채 상환을 요구했지만, B사 측은 응하지 않았다. A사는 투자금과 위약벌, 이자 등을 더해 17억5800여만원을 청구했다. 청구 대상엔 B사와 그 대표뿐만 아니라, 신생 회사인 C사도 포함됐다. C사는 B사의 회생 신청 2주 전에 만들어진 회사로, A사는 "B사의 빚을 회피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회사"라고 주장했다.
1심은 A사의 청구를 일부 인용해 B사 측이 6억7000여만원의 빚을 갚아야 한다고 판결했다. 특히 B사와 C사가 사실상 한 회사나 다름없다고 보고, C사도 같이 빚을 갚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조사 결과, '사료 제작·판매'라는 C사의 사업 목적은 2021년 B사가 신사업으로 추가한 내용과 같았다. 또한 B사는 C사와 총판 계약을 맺어 제품 판매를 맡겼다. B사 일부 직원이 C사로 이직하거나, 디자인권 등 지식재산권이 별다른 대가 없이 넘어간 점도 확인됐다. 두 회사의 주소지마저 같았다. 재판부는 "C사의 설립은 B사의 채무 면탈이라는 위법한 목적 달성을 위해 회사 제도를 남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C사 측은 1심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했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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