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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초동시각]의대생 복귀 가로 막는 암초들
    입력 2025.03.24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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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경제 ] 휴학 의대생 복귀 시한이 속속 도래하고 있다. 얼마 전 수도권 의대에 다니는 자녀를 둔 중앙부처 공무원을 만나 뜻밖의 얘기를 듣게 됐다. 자녀가 복귀를 고민하고 있는데 "족보 때문에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것이다.

사정은 이랬다. 족보는 각 의대의 10여년 치 기출문제와 수업 핵심 내용을 담은 자료를 뜻한다. ‘문제 유출이다, 아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쪽지 시험마저 시험 범위가 수만 페이지에 달하는 의대생에게 족보는 필수 아이템이 된 지 오래라고 한다. 그런데 그 족보는 의대 학생회에서 관리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학생회가 ‘휴학생 복귀’에 부정적인 상황에서 무턱대고 학교에 복귀했다가는 ‘족보 왕따 학생’이 돼 학교 생활과 학점 관리를 제대로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1년 넘게 이어진 의대 교육 정상화를 가를 마지막 한주가 시작됐지만 복귀할 생각을 가진 의대생들 입장에서 보면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복귀 이후가 막막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

‘족보’ 자체에 문제를 제기할 생각은 없다. 시험에 대비한 요점정리 노트인 만큼 ‘족보에만 매달려 의사가 된 사람이 환자를 제대로 볼 수 있냐’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복귀하더라도 족보를 손에 쥔 학생회 눈치를 봐야 한다는 의대생들의 현실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서울 소재 한 대학 의대 TF가 ‘수업 거부에 참여하지 않으면 족보 공유를 제한하겠다’며 학생들에게 수업 거부를 강요해 경찰 수사까지 받은 게 불과 1년 전이다. 이들의 행태는 바뀌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학생들 사이에선 ‘일단 등록해 제적을 피하고 수업을 거부해 추후에라도 족보 혜택을 보겠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고 한다. ‘족보’가 학생회의 비민주적인 행동을 정당화하는 무기가 된 셈이다.

지금 의대생들 분위기로는 수업 복귀를 희망하는 학생들이 더 많아질 수 있다. ‘족보’ 문제뿐 아니라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일부 의대에서는 수업시 학생의 이름을 부르는 방식을 바꾸는 등의 보호 지침까지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도 의대 모집인원을 증원 전 수준으로 되돌리겠다며 전제 조건으로 내건 ‘전원 복귀’에 대해서도 우선 복귀 학생을 위한 세밀한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 ‘100% 복귀’의 개념이 아닌, 정상적으로 수업할 수 있는 수준의 복귀부터 끌어내는 단계적 복귀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번 기회에 각 의대가 학습 지원 자료를 제공하는 ‘의대교육지원센터’를 공식화하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하다. 의대생을 더 자극할 수도 있고 정부가 나서 족보까지 챙긴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으나 의대교육 정상화 기로에 선 상황에서 굳이 피할 선택지는 아니다. 중장기적으로는 고충과 진로 상담 등 다른 교육 기능까지 부여해 제대로 된 지원 체계를 수립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정부와 대학의 단호한 태도도 필요하다. 정부가 내년 의대 정원을 2000명 증원 이전으로 맞추겠다고 한 만큼 끝내 돌아오지 않는 의대생들에 대해서는 원칙을 양보해서는 안 된다. "수업 거부 시 학칙을 엄격하게 적용하겠다"는 교육부의 공식 입장은 끝까지 지켜져야 한다.

의대가 있는 대학들은 "미등록 학생은 절차대로 처리" 방침을 밝히고 있다. 이 역시 일관성 유지가 중요하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미 ‘버티면 학교가 또 휴학을 묵인해 주지 않겠느냐’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정부나 의대가 의대생을 특권층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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