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지구 구할 세기의 기회…'플라스틱 협약' 담판 한 달 앞으로
    이재영 기자
    입력 2024.10.27 06:15

내달 25일 부산서 170여개국 협상委 개최…정부 대표단 등 4천여명 총출동

선진국 "생산량 감축" vs 개도국 "재활용 초점"…오염 종식 합의에도 각론서 이견

'NO 플라스틱'
(서울=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 소비자기후행동과 서울iN아이쿱생협 활동가들이 7일 오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국제 플라스틱 협약 성안을 기원하며 플라스틱으로 만든 의상을 입고 있다. 2024.10.7 jieunlee@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지구를 지킬 세기의 기회가 다가온다'.

전 세계적인 플라스틱 오염 종식 국제협약을 도출하기 위한 부산에서의 마지막 협상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플라스틱 협약, 특히 부산에서 마지막 협상을 두고 이른바 '플라스틱 오염을 끝낼 현 세대에 주어진 단 한 번의 기회'라는 말까지 나온다.

현대사회는 플라스틱이 지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플라스틱 협약은 체결만 되면 기후변화협약과 같이 모두의 삶과 세상에 일대 변혁을 가져올 기념비적인 사건이 될 것이란 예상은 그래서 허언으로 들리지 않는다.

플라스틱 오염 종식 위한 국제 플라스틱 협약 성안 기원
(서울=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 소비자기후행동과 서울iN아이쿱생협 활동가들이 7일 오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국제 플라스틱 협약 성안을 기원하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4.10.7 jieunlee@yna.co.kr

◇ 170여개국 대표단과 로비스트까지 4천명 부산 집결

플라스틱 오염 종식 국제협약 성안을 위한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INC-5)가 다음 달 25일부터 부산 벡스코에서 진행된다.

27일 환경부에 따르면 170여개국 정부 대표단을 비롯해 무려 4천여명이 협상을 하거나 거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부산을 찾을 전망이다.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일 강력한 협약을 원하는 세계 환경단체와 이를 막으려는 정유화학업계 로비스트도 대거 찾아와 치열한 기싸움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환경법센터(CIEL)에 따르면 4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4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 때 등록한 석유화학업계 로비스트는 196명에 달했다.

이는 당시 유럽연합(EU)이 파견한 대표단보다 많은 수로, 업계가 플라스틱 협약 무력화에 사활을 걸었음을 보여줬다.

재작년 3월 제5차 유엔환경총회에서 '5/14 결의문'이 채택됐다.

국제사회는 이 결의문을 통해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법적 구속력을 지닌 국제협약을 2024년까지 마련키로 하고 이를 위해 5차례 협상위를 열기로 했다.

바로 그 5차 협상이 열리는 부산에서 타결 소식이 전해지면 내년 중순 각국이 협약에 서명하는 외교전권회의가 열릴 전망이다. 외교전권회의 유치에 나선 국가는 르완다·페루(공동개최), 에콰도르, 세네갈 등이다.

작년 11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플라스틱 오염 종식 국제협약 성안을 위한 제3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가 진행되는 가운데 환경단체 활동가가 시위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 '플라스틱 오염 끝내자' 총론엔 합의했지만 각론 합의는 '미지수'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해야 한다'는 대의엔 대부분이 동의하지만 '각론'을 두고는 이견이 상당해 협상이 타결될지는 미지수다.

현재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그룹은 EU와 한국, 일본 등 67개국이 참여한 '우호국 연합'(HAC)이다.

HAC는 지난달 25일 장관급 공동성명을 내고 "2040년까지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해야 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재확인하고 법적 구속력 있는 공동조처를 담은 협약을 성안할 것을 약속한다"고 밝혔다.

특히 HAC는 "1차 플라스틱 폴리머 생산과 소비를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줄이는 것을 포함해 플라스틱 오염 종식의 길에 올라섰음을 확실히 하는 목표에 합의해야 한다"고 촉구하며 '1차 플라스틱 폴리머 감축' 필요성을 강조했다.

1차 플라스틱 폴리머는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에서 원료를 추출해 새로 만든 플라스틱 폴리머'로 신재 플라스틱이라고도 한다. 플라스틱 협약 협상에서 최대 쟁점이 '1차 플라스틱 폴리머 감축'을 협약에 명시하느냐다.

HAC는 플라스틱 제조 시 환경이나 사람의 건강에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는 화학물질의 사용을 금지하거나 단계적으로 퇴출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플라스틱을 제조하는 데 쓰이거나 플라스틱에서 검출되는 화학물질은 1만6천여종에 달한다.

협상의 열쇠를 쥔 국가 중 하나인 미국은 HAC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입장이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8월 '협상 관계자들'을 인용해 미국이 신재 플라스틱 감축을 지지하기로 가닥을 잡았다고 보도한 바 있다.

HAC와 대척점에 선 그룹은 작년 11월 3차 협상위 때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 주도로 출범한 '플라스틱 지속가능성을 위한 국제연합'(GCPS)이다.

GCPS에는 중국, 러시아, 쿠바, 바레인, 이란 등이 참여하고 있으며 인도와 브라질이 비공식적으로 보조를 맞추는 것으로 전해진다.

GCPS는 협약에 '플라스틱 생산량 감축' 명시를 반대하며 '플라스틱 폐기물 관리와 재활용'에 초점을 맞추자고 주장한다. 플라스틱 오염 주원인은 잘못된 폐기물 관리라는 논리인 셈이다.

이들은 '공통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CBDR) 원칙 도입도 내세운다. 그간 선진국들이 플라스틱을 더 많이 사용했으니 더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플라스틱 제조에 사용되는 위해 화학물질과 관련해 GCPS는 '광범위하게 사용되므로 과학적으로 충분히 검토한 뒤 규제하자'라는 입장이다.

기업들도 입장이 갈린다.

코카콜라와 유니레버 등 250여개 기업·금융기관·비정부기구(NGO)가 참여한 '플라스틱 국제협약을 위한 기업연합'은 '1차 플라스틱 폴리머 생산'을 포함한 전(全) 주기적 접근으로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는 협약을 지지하는 '부산으로 가는 다리 선언'(Bridge to Busan Declaration)에 최근 동참했다.

반면 석유화학업계는 GCPS와 입장을 같이한다.

엑손모빌 제품 솔루션 책임자인 카렌 맥키는 최근 회사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현재 폐플라스틱 10%만 재활용되고 90%는 매립되거나 자연에 버려진다"면서 재활용률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자고 주장했다.

그는 플라스틱 생산 규제가 개발도상국을 타격할 것이란 논리도 펼쳤다.

그린피스, 환경부 장관에게 플라스틱 협약 촉구 서한 전달
(서울=연합뉴스)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국제협약 마련을 목적으로 열리는 제5차 정부간 협상위원회를 한 달 앞두고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환경부에 협약을 촉구하는 서한을 전달했다고 18일 밝혔다. 사진은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플라스틱 협약을 촉구하는 모습. 2024.10.18 [그린피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 '우호국 연합'이지만…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 1위 한국 '모호성' 전략

한국은 HAC에 속해 있지만, 아직 정부가 주요 쟁점에 명확한 입장을 발표한 적은 없다.

협상 전략상 '모호성'을 어느 정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점과 함께 석유화학산업이 주력산업 중 하나인 '플라스틱 다(多)생산, 다소비 국가'인 측면이 입장을 명확히 하는 데 걸림돌인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석유화학협회 석유화학편람을 보면 한국 합성수지(플라스틱) 생산량은 지난해 1천451만3천t으로 중국(9천794만t), 미국(3천857만t), 사우디아라비아(1천463만5천t)에 이어 주요 10개국 중 4번째로 많았다.

1인당 합성수지 소비량은 116.2㎏으로 10개국 중 압도적인 1위다.

1인당 플라스틱 폐기물 배출량은 2021년 기준 90.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두 번째로 많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79차 유엔총회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에서 진행된 플라스틱 협약 협상 관련 고위급 부대행사. [외교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협약 운명 여전히 '안갯속'…추가 협상위 가능성도

플라스틱 협약의 운명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1차 플라스틱 폴리머 감축이나 플라스틱 제조에 사용되는 위해 화학물질을 제외하고도 쟁점이 많아서다.

한국환경연구원 연구진이 올해 국제법학회논총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플라스틱 협약은 유해화학물질이나 수은을 다루는 협약처럼 세부 사항까지 협약에 한꺼번에 규정하는 '특정협약'이 적합하다. 앞서 협약 사무국인 유엔환경계획(UNEP)이 발표한 협약 초안도 특정협약 형태였다.

다만 연내 성안에 무게가 실리면 큰 틀의 방향만 협약에 규정하고 세부 사항은 추후 의정서나 협정을 체결해 보충하는 '골격협약'이 맺어질 가능성이 크다.

1992년 체결된 유엔기후변화협약이 대표적인 골격협약이다. 현재 중국 등이 골격협약 체결을 주장하고 있다.

부산에서의 5차 협상위에서 각국이 이견을 못 좁히고 추가 협상위를 열어 논의를 이어가는 경우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UNEP의 잉거 안데르센 사무총장은 지난달 유엔 미래정상회의에 앞서 "(각국 의견이) 하나로 모이기 시작하는 지점이 존재한다"면서도 "플라스틱 생산 규제를 비롯해 중대한 이견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자원순환의 날'인 지난달 6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자원순환센터에 플라스틱 재활용 쓰레기가 가득 쌓여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2040년 생산량 7억3천600만t…20년간 69% 증가 전망

최근 OECD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4억3천500만t이었던 전 세계 연간 플라스틱 생산량은 2040년 7억3천600만t으로 69% 늘어날 전망이다.

약 15년 뒤면 배로 화물을 수출할 때 사용하는 40피트짜리 표준 컨테이너 2천777만여개를 동원해야 그해 생산한 플라스틱을 모두 담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연간 플라스틱 폐기물량 역시 2040년 6억1천700만t으로, 2020년 3억6천만t에서 대폭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데 재활용률은 6%대에 계속 머물고, 잘못 관리된 플라스틱 폐기물은 2040년 1억1천900만t으로 2020년 8천100만t에서 오히려 늘 전망이다.

바다와 강 등 자연에 유출되는 플라스틱은 2040년 3천만t으로 2020년 2천만t보다 1천만t이, 플라스틱을 생산해서 폐기하기까지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2040년 2.8기가t으로 2020년 1.8기가t보다 1기가t 각각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5%가 플라스틱에 기인하는 셈이다.

jylee2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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