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목표를 설정해두지 않는다." 지난 8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마르시아 도네르 아브레우 주한브라질대사가 임기 내 달성하고 싶은 비전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대답이다. 외교관 업무의 유동성을 조명한 셈이다. 1987년 브라질 외교연수원을 졸업 후 환경, 지속가능개발, 무역 협상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그지만, 대사의 업무는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았다. 아브레우 대사는 "하루는 스타트업 간담회에, 하루는 의료업계에, 하루는 스포츠 필드에 나간다"며 "장관을 접견하러 나갈 때도 있고 급히 외빈을 맞이해야 할 때도 있다. 외교관은 사전에 세워둔 목표에 얽매일 수 없는 직업"이라고 강조했다. 외교관은 생각보다 발로 뛰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늦은 오후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에도 아브레우 대사의 눈은 에너지로 가득했다. 체력의 비결은 운동이었다. 아브레우 대사는 "나는 굉장히 활동적인 사람"이라며 "등산을 좋아하고 가족들이 한국에 놀러 오면 양평으로 스키를 타러 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강아지와의 산책도 그에겐 빼놓을 수 없는 일과다. 그는 "강아지 니카와 함께 삼청공원이나 대사관 뒤편 삼청로에서 산책을 즐기곤 한다"고 말했다. 니카는 지난해 서울동물복지지원센터에서 입양한 유기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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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은 괄목할만한 경제력을 지닌 나라다. 일단 인구가 2억명이 넘으며 명목 GDP 기준으로는 지난해 세계 9위를 기록한 경제 대국이다. 철, 니켈, 구리 등 풍부한 지하자원과 함께 세계 최대 사탕수수 생산국으로도 알려져 있다. 특히 브라질은 중남미 국가 중 최초로 한국과 수교를 맺은 나라로 올해 수교 65주년을 맞이했다. 아브레우 대사는 "5만여명의 브라질 한인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많은 혜택을 입고 있다"며 "양국 간 교역규모도 지난 5년여간 2배 성장했다"고 자평했다.
다만 약간의 아쉬움도 토로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강국인 한국과의 수교 역사가 깊은데도 브라질 내에 반도체 생산기지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현재 브라질에 반도체 공장을 보유한 한국 기업은 하나마이크론의 자회사 HT 마이크론이 유일하다. 삼성전자의 브라질 반도체 공장 건설 논의가 이뤄진 것도 비교적 최근 일이다. 특히 브라질에서 주력으로 생산되는 메모리 반도체는 현지 수요의 8%만 충당하고 있어 수입 의존도가 높다. 아브레우 대사는 "그래도 현재 브라질에 삼성전자, LG전자, 포스코, CJ 제일제당 등 120여개 한국 기업이 진출해 있다"며 특히 제약·바이오 분야 투자 확대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브라질 의약품 시장 규모는 약 225억달러(27조원)로 추정된다.
아브레우 대사는 민감한 외교 현안들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자기 의견을 냈다. 그가 집중하고 있는 화두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다. 그는 "국제 사회가 해결해야 할 기후 변화 문제, 빈곤 퇴치, 거버넌스 개혁 모두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선결 과제"라며 "다가오는 G20 정상회의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개혁과 글로벌 부유세 도입을 적극적으로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브라질은 내달 개최되는 G20 정상회의 의장국이다. 기자는 아브레우 대사에게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브라질의 비전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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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아브레우 대사와의 일문일답.
-국제 사회가 당면한 여러 현안 중 기후 문제는 첫 손에 꼽힐 것 같다. 브라질은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 열대우림의 변화를 시시각각 목격하고 있는 나라인 만큼 기후 문제에 대해 할 말이 많을 듯한데.▲기후 문제는 경제적 불평등, 국제 거버넌스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유엔을 필두로 국제사회가 2030년까지 달성하기로 한 17개의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안에 기후 행동, 빈곤 퇴치, 사회 구조 개혁 등이 전부 담겨 있다. 브라질과 한국을 비롯한 G20 회원국들의 국가사업에도 우선순위로 반영돼 있다. 특히 브라질은 1972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엔인간환경회의(UNCHE) 때부터 '환경 보전을 위한 빈곤 퇴치'를 오랫동안 주장해온 나라다. 나라가 가난하면 경제 발전을 위해 산림을 벌채하는 등 자연스레 환경 파괴를 일삼게 된다는 점을 꿰뚫어 봤기 때문이다. 갖은 노력 끝에 우린 20년만인 1992년, 지구 환경 보전을 위한 개발도상국 재정 지원 및 기술이전 등 기본원칙을 담은 '리우 선언'을 이끌어냈다. 당시 주미대사관에 근무하고 있던 나도 리우 회의 준비에 일조했다. 브라질이 아마존 열대우림 파괴를 막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각 나라도 자신의 위치에서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브라질은 오는 11월 리우에서 G20 정상회의를 개최한다. G20 의장국으로서 어떤 목표를 갖고 있나.▲지속가능발전을 위한 빈곤 퇴치, 기후 변화 대응, 국제 거버넌스 개혁에 대해 목소리를 낼 예정이다. 최근 한국 외교부에도 이 사안과 관련해 G20 정상회의에서 브라질에 힘을 실어달라고 요청했다. 특히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들의 거버넌스 개혁은 시급하다. 유엔이 설립된 시점이 자그마치 2차 세계대전 종전 때다. 80여년간 변화한 국제 환경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상임이사국엔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 국가를 위한 자리가 단 하나도 없다. 빈곤과 불평등 해결, 지속가능한 발전 등 유엔이 헤쳐나가야 할 난관이 이렇게 많은 데 안보리의 거부권 때문에 번번이 개혁이 저지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낡은 안전보장이사회 체제를 지역 대표성과 재정 기여도를 반영해 재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국의 최신 경제 규모를 반영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 표결권(지분) 조정도 필요하다. 지구촌 구석구석의 목소리까지 국제기구 현안에 반영되도록 하기 위한 첫 단추다.
(브라질은 자국을 비롯한 인도·독일·일본 등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추가 진출을 피력하고 있으나, 이는 한국의 입장과는 다르다. 한국을 비롯한 이탈리아, 스페인, 캐나다, 멕시코 등은 유엔 개혁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으나, 단순히 상임이사국 수만 늘릴 경우 안보리의 지속가능성·대표성을 저해하게 된다는 이유에서 구시대적 산물인 상임이사국 증설을 지양하고 정기선거로 선출하는 비상임이사국을 늘리는 방안을 주장하고 있다.)
-글로벌 부유세 도입도 G20의 화두가 될 것 같은데.▲브라질은 글로벌 억만장자들에 대한 2% 부유세 도입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 10억달러(약 1조3500억원)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전 세계 3000명의 슈퍼리치가 그 대상이다. 미국의 경우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반대 의사를 표명하긴 했지만, 브라질이 이번 G20 정상회의 의장국인 만큼 다시 한번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지난 7월 G20 재무장관들도 이와 관련해 협력하기로 뜻을 모은 상태다. 납세는 시민의 의무다. 서민들은 예외 없이 세금을 납부하는데 부자들만 조세 피난처로 향하는 것을 놔둘 수는 없다. 세금 없인 정책도 군대도 없다. 난 제네바에서 근무할 당시 거대 스위스 은행들이 슈퍼리치 고객들의 돈을 숨겨주거나 세탁하다가 덜미가 잡히는 것을 목격했다. 공직자인 나와 내 가족들이 10원 한장까지 세무 당국에 탈탈 털리는 것처럼 이들도 자산의 움직임이 투명하게 자동 기록되는 시스템에 편입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브라질은 생산되는 전력의 80%가 신재생에너지에서 나올 정도로 친환경 산업에 진심인 나라다. 최근 브라질이 주력하고 있는 차세대 친환경 기술이나 산업은 무엇인가.▲그린 수소와 에탄올이다. 브라질은 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면서 수소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갖고 있다. 태양광 패널을 설치할 넓은 땅, 물의 낙차를 이용할 수 있는 강과 댐들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브라질 동부의 광대한 대서양 연안은 해상 풍력 발전에도 최적화된 입지 조건이다. 특히 에탄올은 우리의 차세대 성장동력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사탕수수와 옥수수밭을 보유한 브라질은 이들 농작물에서 바이오에탄올을 추출해 대체 연료로 쓴다. 현재 차량용 휘발유의 27%까지 바이오에탄올을 의무적으로 혼합하도록 법으로 강제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가 에탄올에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2차 석유파동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부모님과 파리에 있었는데 모든 게 깜깜했다. 기름이 너무 비싸 도시를 밝힐 수가 없었다. 브라질은 멈춰버린 자동차들을 굴리기 위해 어떻게든 대체 연료를 만들어야 했고 그래서 개발한 게 에탄올이다. 인도와 인도네시아도 점차 에탄올 혼합 연료를 채택하는 추세다. 그린 수소와 에탄올은 한국도 큰 관심을 갖고 개발하고 있는 분야다. 최근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브라질을 방문해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을 만나 수소 등 친환경 분야 미래기술에 2032년까지 11억달러(1조4600억원)를 투자하기로 약속하기도 했다.
-브라질의 탄탄한 내수시장에도 불구하고 현지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양국이 앞으로 투자 확대를 위해 지원·협력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내 생각에 한국 기업들은 해외 투자를 결정할 때 2가지 기준을 보는 것 같다. 그 나라가 첨단 기술과 최신 자원에 접근할 수 있을 정도로 강대국인지, 그리고 큰 내수 시장을 보유하고 있는지다. 브라질은 내수 시장은 탄탄하지만, 첫 번째 기준에서 한국기업들에 확신을 주지 못했을 수 있다고 본다. 외국 투자 결정은 민간의 영역이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지만 투자가 확대될 전망이다. 지난해 11월,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었던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마르시오 엘리아스 로사 브라질 개발산업통상서비스부 차관과 '한-브라질 무역투자촉진프레임워크(TIPF)'에 서명했다. TIPF는 상호 경제 협력을 증진하고 그린·디지털·바이오 등 새로운 통상이슈까지 아우르는 협력체로 남미 국가 중에서는 브라질이 최초로 한국과 체결했다. 우리는 한국에 원자재를 팔고 한국은 우리에게 반도체를 수출한다. 특히 바이오시밀러 분야 협력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세계 최대 고객이다. 이밖에 셀트리온 헬스케어, GC 녹십자 등의 제약사도 브라질에 진출해있다.
김진영 기자 cam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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