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남동부를 강타한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최소 95명이 사망했다고 CNN 등 주요 외신이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날 앙헬 빅터 토레스 스페인 국토정책부(MPTMD) 장관은 전날 스페인 남동부 지역에 쏟아진 폭우로 인해 현재까지 95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가장 큰 피해를 본 발렌시아는 92명이, 인근 카스티야 라 만차에서 2명이, 말라가에서 1명이 목숨을 잃었다. 구조 당국은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사람도 상당수라며 추가 희생자가 나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디언은 "1996년 피레네 산맥의 캠프장을 강타해 87명이 숨지게 한 폭우 이후 스페인이 겪은 가장 심각한 홍수"라며 "유럽이 겪은 가장 최근의 재앙적인 홍수는 2021년 7월 발생한 것으로 당시 독일, 벨기에, 루마니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에서 243명이 사망했다"고 진단했다. BBC는 "이번 홍수는 1973년 발생한 스페인 홍수 이후 가장 많은 사망자를 냈다"며 "당시 스페인 사상 최악의 홍수로 희생된 사람만 최소 150명으로 추산된다"고 전했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이날 "정부는 홍수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며 경계를 늦추지 말 것을 요청했다. 마가리타 로블레스 스페인 국방부 장관은 1000명 이상의 군인이 구조 활동 지원에 투입됐다고 밝혔다. 스페인 정부는 31일부터 내달 2일까지 사흘간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현지 기상전문가들은 이번 폭우의 원인을 스페인 남동부를 가로지르는 차가운 공기가 지중해의 따뜻한 바닷물 위로 이동할 때 발생하는 '콜드 드롭'(고타 프리아) 현상 때문으로 보고 있다. 스페인 기상청(AEMET)은 스페인 남동부 지역에서 하루 동안 한 달 치 비가 내렸으며, 발렌시아 동부 지역의 치바 마을에서는 8시간 동안 거의 1년 치의 비가 내렸다고 밝혔다. 발렌시아에는 협곡과 작은 하천들이 많이 한 번 비가 쏟아지면 물이 금방 차오른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폭우로 인해 철로와 고속도로, 하늘길이 이날까지 대부분 막혔으며, 15만여 가구에 전기 공급이 끊겼다. 발렌시아는 모든 학교에 휴교령을 내리고 각종 외부 행사도 취소한 상태다. 스페인 내무부는 "모로코, 이탈리아, 프랑스, 포르투갈, 튀르키예, 체코, 그리스, 슬로베니아가 구조 수단과 자원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 차원의 지원도 이뤄질 예정이다.
일각에선 스페인 재난 당국의 폭우 경고가 미흡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스페인 기상 당국은 29일 오전 7시36분에 발렌시아 지역에 폭우가 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적색경보'를 발령했지만, 상황의 심각성이 전달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리즈 스티븐스 레딩대학교 기후 위험 전문가는 "경보 자체는 사람들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발령됐지만, 적색경보만으로는 어떤 영향이 있고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전달하지 못한다"며 "스페인 정부는 재난 대응에 있어서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비판했다. 호르헤 올치나 알리칸테 대학 지리학 교수는 국민들의 생명이 위험에 처해 있을 때 보내는 '블랙 경보'를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김진영 기자 cam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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