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미국 대통령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며 환경 규제가 대거 철폐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4년간 석유 생산량이 많이 늘어날 가능성은 작다고 10일(현지 시간) 주요 외신이 보도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에너지 정책을 핵심 공약 중 하나로 내세우며 불필요한 규제를 철폐해 석유 생산량을 늘리고 소비자 가격을 낮추겠다고 했다. 당선 이후 승리 연설에서 "미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많은 '액체 금(liquid gold)'을 보유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보다 더 많다"고 말했다. 대선 레이스 중에도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을 외치며 석유·가스 시추 확대를 강조했다.
이에 석유 업계에서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해롤드 햄 콘티넨털 리소스 창업자는 "트럼프 당선인의 승리가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며 "이는 미국 에너지와 국가 안보 미래에 대한 기념비적 승리"라고 했다.
마이크 소머스 미국 석유협회 대표는 지난 4년간 규제 공세가 있었지만, 이제 역전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는 "미국에서 강력한 석유 및 가스 산업을 원한다는 행정부의 신호는 이 산업이 계속 성장하는 데 필요한 투자를 유치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배기가스 규제 폐지, 탄화수소 접근성 확대, 멸종 위기종 보호 약화 등을 기대한다. 트럼프 당선인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표적인 기후 법안 인플레이션감소법(IRA) 폐기를 공약하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첫 임기 동안 유가에 적극 개입했다. 2018년엔 OPEC에 생산량을 늘려 주유소 가격을 낮추도록 강요했고, 2020년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유가가 폭락하며 미국 셰일 업계의 파산을 막기 위해 생산량 감축을 촉구했다.
그러나 대규모 규제 완화 전망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트럼프 당선인 임기 동안 석유 생산이 빠르게 증가할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 바이든 행정부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석유 생산은 빠른 속도로 늘었다. 지난 8월 하루 1340만배럴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또 최근 수년간 석유 업계의 부채 증가로 타격을 입은 투자자들은 기업이 성장보다 수익을 우선시하길 바란다. 때문에 투자자들이 부과한 자본 규율 모델은 변함이 없을 전망이다.
짐 버크하드 S&P 글로벌 석유 시장 연구책임자는 "미국의 생산을 규제하는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가격과 월가"라고 했다. S&P는 올해 석유 생산량은 일평균 약 1320만배럴, 2025년에는 1360만배럴을 기록한 뒤 가격 하락으로 인해 생산량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트럼프 당선인의 재선은 단기 전망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본다.
다만 중국의 수요 침체와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주요 산유국 간 협의체인 OPEC+의 공급 증가 계획으로 몇 달간 가격이 하락해 에너지값을 낮추겠다는 공약이 지켜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란의 석유 수출을 제재하는 등 대이란 압박 강화 조치는 국제 유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에너지 고문 출신인 밥 맥널리 라피단 에너지 대표는 "대통령이 단기적으로 원유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단은 매우 제한적이지만 향후 몇 년간 강력한 글로벌 공급 증가가 수요를 앞지르면 트럼프 당선인이 운 좋게 원유 가격 급락을 목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2020년의 교훈을 다시 배울 것"이라며 "낮은 유가는 소비자를 기쁘게 할 수 있지만, 미국 셰일 산업을 해친다"고 덧붙였다.
환경 규제를 철폐하려는 트럼프 당선인의 계획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대형 석유 회사들이 탄소 배출 감축을 추진하는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한다. 빌 클린턴 행정부의 기후 고문 출신인 폴 블레드소는 "트럼프가 당선됐다고 해서 에너지 기업들이 배출량을 줄이고 청정에너지에 투자할 것이란 기대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이는 대중의 기대이자 투자자의 기대다"라고 말했다.
오수연 기자 sy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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