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데스노믹스' 조명…전사보상금, 평생 기대소득보다 높을 수도
"남편과 아들이 피흘려 생긴 돈" 빈곤한 중앙아 저축율 상승·건설경기 호조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만 3년을 향해 가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의 계층·지역 간 경제적 불평등 구조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병력 수급을 위해 군인에 대한 보상 수준을 크게 높임에 따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전선으로 향했다가 숨진 빈곤층 젊은이들의 가족에게 막대한 보상금이 지급되는 일이 누적되면서 지역 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3일(현지시간) 이런 현상을 '데스노믹스'(Deathonomics·죽음의 경제)라고 소개하며 "전사자들의 보상금이 러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들의 경제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전 참전 군인들에게 월급으로 최소 21만 루블(약 30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러시아인의 평균 임금인 7만5천 루블(약 107만원)의 세 배에 가까운 금액으로, 가난한 지역과 비교하면 격차는 5배까지 벌어진다.
전선에서 사망할 경우 그 가족은 정부로부터 거액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 지방정부의 추가 보상금과 보험금 등도 더해진다.
러시아 경제학자 블라디슬라프 이노젬체프의 추산에 따르면 35세 남성이 1년간 참전했다가 전사할 경우 임금과 보상금을 더해 가족이 받게 될 돈은 1천450만 루블(약 2억720만원)에 달한다. 이는 일부 지역에서는 60세까지 벌어들일 수 있는 기대소득보다 크다.
이노젬체프는 "경제학적으로는 전선에서 1년 후 전사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전선이 교착된 채 장기화하면서 러시아군의 전사자 수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지급된 보상금 규모도 막대해졌다.
WSJ은 올해 6월 기준으로 이전 1년간 지급된 보상금이 300억 달러(약 42조1천770억원)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이런 막대한 보상금이 향하는 곳은 주로 빈곤층이다. 러시아가 소모전에 따른 병력 부족을 벌충하기 위해 군인들의 처우를 끌어올렸고, 이에 반응한 청년 중에는 빈곤층이 많기 때문이다.
WSJ은 공식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95년 이래 빈곤선 아래 인구의 비율이 최저치로 떨어졌다고 전했다.
빈곤율이 러시아 전체 평균의 3배에 달하던 시베리아 남쪽 투바 공화국에서는 은행 예금액이 전쟁 발발 이전인 2022년 1월보다 151% 증가했다. 투바의 수도인 키질에서는 다층 주거 단지가 건설되는 등 건설 붐이 일고 있다.
러시아 남부 알타이 공화국에서는 올해 레스토랑과 주점 매출이 전년 대비 56% 늘었다. 러시아 평균 증가율은 9%였다.
시베리아 동부 부랴티아 공화국에서는 2022년 1월 대비 은행 예금액이 81% 증가했고 주택 건설은 32% 증가했다. 이곳에서는 수천명의 젊은이가 전선으로 향했고 이 가운데 최소 1천719명이 전사했다.
부랴티아의 한 마을에 거주하는 여성 류드밀라(54)는 전쟁으로 남편과 아들을 잃었다. 그는 보상금으로 부랴티아의 수도 울란우데에 아파트 두 채를 샀다.
류드밀라는 "남편과 아들이 피로 벌어온 돈"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정부는 이같은 빈곤층의 '슬픈 수익'을 조장하고 있다.
서방 추산에 따르면 누적 사상자가 60만 명이 넘고, 10월 한 달간 하루 평균 1천500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을 유인해야만 군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극동 지역의 한 주지사는 회의에서 "아버지의 영웅적인 행동 덕분에 아파트가 생겼다는 것을 아이들은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런 전시 경제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올해 6월까지 러시아 국가 지출 중 전사 보상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8%까지 늘어났다.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촉발되고 있으며, 중앙은행은 역대 최고에 가까운 21%까지 금리를 인상했다.
많은 남성이 전선으로 향하면서 노동 현장의 구인난도 가중되고 있다.
사회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보상금을 노린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인연을 끊고 지냈던 가족이 등장해 보상금 수급권을 주장하는 등의 사건이 각지 법원에 계류 중이라고 WSJ은 전했다.
sncwoo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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