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올해 세계 각국의 피벗(pivot·통화정책 전환)에 되살아나던 글로벌 채권 시장이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경제 공약 리스크에 따라 세계 최대 채권 시장인 미국, 상대적으로 채권 투자 위험 시장으로 분류되는 신흥국 가릴 것 없이 투자자들이 채권을 앞다퉈 매도한 결과다.
17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인상에 따른 무역 전쟁 발발 우려, 달러 급등 등으로 신흥국 현지통화표시채권에 대한 전망이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 블룸버그개발도상국(EM)채권지수는 상승률은 지난 10월 초 이후 현재까지 3.5% 하락하며 올해 상승분을 상당수 반납한 것으로 나타났다. 블룸버그는 “(트럼프 당선인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신흥시장에 해가 될 것으로 여겨지면서 신흥국 채권시장 침체가 가속화되고 있다”고 짚었다.
채권 투자자들은 미국 달러화의 강세 탓에 신흥국 중앙은행이 더 오랫동안 금리를 높게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강달러 환경에서 신흥국이 함부로 금리를 내릴 경우 자국 통화 약세를 더욱 부추겨 무역 침체가 심화할 수밖에 없는 탓이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화 지수(달러인덱스)는 이날 106.73으로 6개월 만에 최고치를 보였다.
미국 국채 금리가 뛰고 있다는 점은 신흥국 채권 매도를 부채질할 수 있다. 소시에테 제네랄 SA의 피닉스 칼렌 전략가는 “미국 채권 금리 상승세가 지속된다면 신흥국 채권 유입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신흥국 채권 금리는 당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채권 가격 하락). TS 롬바드의 존 해리슨 신흥 시장 거시 전략 담당 상무이사는 “아마 신흥 시장 투자자들의 가장 큰 두려움은 높은 관세 부과 조치일 것”이라며 “트럼프 정책 불확실성으로 인해 모든 신흥 시장 자산의 위험 프리미엄이 높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싱가포르 UBS AG의 탠 민 란 아시아 태평양 최고투자책임자는 “향후 12개월간 아시아 현지통화채권 수익률은 마이너스에서 낮은 한 자릿수를 기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채권 시장도 동력을 잃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미국국채지수 올해 상승률은 연방준비제도(Fed)가 4년 반 만에 기준금리를 인하했던 9월17일 4.6%로 사상 최고치를 찍은 뒤 현재 0.7%까지 내려앉았다. 미국 경제 견조, 트럼프 당선인의 선거 공약에 따른 재정적자 급증 우려로 국채 금리가 뛰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Fed가 첫 금리 인하에 나섰던 지난 9월 이후부터 2개월간 미국 채권 10년 만기 금리는 71bp(1bp=0.01%포인트) 뛰었다. 블룸버그는 “1989년 이래, 금리 인하 사이클에 접어든 지 2개월 만에 국채 금리가 이렇게 크게 상승한 적은 없었다”고 전했다.
미국 국채 가격도 당분간 계속 하향 곡선을 그릴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RBC블루베이자산관리회사의 마크 다우딩 최고투자책임자는 “(현 4.6% 수준인) 미국 30년물 금리가 5%로 상승할 수 있다”면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세금 인하를 통해 재정 적자를 확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재정 측면과 채권 발행으로 인한 위험은 투자자들이 더 큰 위험 프리미엄을 요구하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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