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일상 속 경제·인구 분야 '이상신호'
북한군·장거리무기 변수 속 트럼프 행보에 주목
(모스크바=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 지난 17일(현지시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북서부의 대형 쇼핑몰 '아비아파르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아이들에게 입힐 '산타 옷'을 살펴보는 부모도 눈에 띄었다.
19일은 러시아가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에서 '특별군사작전'을 시작한 지 1천일째 되는 날이다. 하지만 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모스크바에서는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
18일 모스크바를 향해 날아오던 우크라이나 드론 2대가 격추됐다는 러시아 국방부 발표도 나왔지만 모스크바에서 안전에 큰 위협을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러시아 사회가 내부적으로는 장기화한 '특별군사작전'에 곪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로변 대형 광고판, 버스정류장, 슈퍼마켓 입구 등 어디에나 걸려 있는 군인 모집 광고는 러시아의 병력 부족을 방증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하철 매표기에도 모병 광고가 있는데, 입대하면 첫해 520만루블(약 7천200만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지하철 1회 탑승료인 57루블(약 800원)의 9만배가 넘는 금액이다.
최근 군 계약 광고와 함께 모스크바에서 자주 보이는 광고 중 하나는 은행 광고다. 러시아 중앙은행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연 21%로 올린 가운데 시중 은행들도 연 24∼25%대 이자를 지급하는 예금 상품을 줄줄이 출시한 것이다.
이처럼 높은 이자로 인해 예금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지만, 일각에서는 소련 붕괴 직전의 개인 예금 동결 사태가 되풀이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고 현지 매체 '뉴스.루'는 전했다.
중앙은행이 20여년 만의 최고치로 기준 금리를 인상한 것은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한 조치다. 러시아는 군인 임금을 포함해 군사 분야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으면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
러시아 정부가 자녀가 셋 이상인 대가족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것도 전사자 증가와 출산율 감소로 인한 인구 감소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거리에서는 '대가족'을 장려하는 포스터 또한 자주 눈에 띈다.
러시아는 사상자 수를 공식 발표하지는 않는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9월 약 100만명의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이 전장에서 죽거나 다친 것으로 추산했다.
인구, 경제적으로 큰 손실을 보는 상황에서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 도네츠크·루한스크·자포리자·헤르손주에 형성된 전선을 따라 진격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영토의 약 20%를 장악하고 있는 러시아는 지난 2월 동부 도네츠크의 격전지 아우디이우카를 점령한 이후에도 우크라이나군을 계속 밀어붙이면서 다른 요충지들도 노리는 상황이다.
러시아는 지난 8월 기습 공격을 당해 우크라이나군에 일부 영토를 내준 쿠르스크 탈환도 노리고 있다.
점령지를 러시아의 새 영토로 인정해야 한다는 러시아와 이들 지역을 되찾아야 한다는 우크라이나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해결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장거리 무기 사용 승인 등 초대형 변수들이 줄줄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우크라이나와 한국, 미국 정부는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이 러시아군과 함께 쿠르스크 전투에 참여 중이라고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 매체들은 최근 쿠르스크 지역에서 10∼15분 간격으로 러시아군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군 파병에 대응해 우크라이나에 미국이 제공한 장거리 미사일로 러시아 본토를 타격하는 것을 허가했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17일 보도했다.
우크라이나가 사거리가 약 300㎞인 에이태큼스(ATACMS) 미사일로 쿠르스크 지역을 공격하면 러시아의 쿠르스크 공세가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러시아가 제3차 세계대전 가능성을 운운하며 반발하고 있어 사태가 오히려 장기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서방의 도움 없이는 장거리 무기로 러시아 본토를 타격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장거리 무기 사용 승인은 곧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와 전쟁 중이라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종전 협상을 공언하며 미 대선에서 승리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푸틴 대통령과 트럼프 당선인은 모두 서로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상태다.
트럼프 당선인의 종전 계획은 아직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으나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유예하고 현재 전선을 동결하는 방안이 현지 보도를 통해 거론된 바 있다.
이 경우 휴전 협상 시점에 러시아·우크라이나가 각각 점령한 영토를 기준으로 협정이 체결될 가능성이 있어 그때까지 양국은 계속 격렬한 전투를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abb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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