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장거리 무기 허용에 푸틴 핵교리 개정으로 응수
우크라戰 양상에 따라 핵보유국간 경쟁적 대응 우려
(서울=연합뉴스) 이우탁 기자 = 핵무기 보유국가들은 핵무기 사용을 위한 규정을 마련해놓고 있다. 이를 핵교리라 부른다.
핵무기를 보유하면 적국이 공멸을 각오하지 않는 한 공격해올 수 없다는 '핵억제(nuclear deterrence)' 개념이 성립한다.
이에 따라 핵교리는 핵무기 선제사용 가능 여부와 핵무기의 보유 목적에 따라 '처벌억제'와 '거부억제'로 분류된다.
처벌억제는 적국이 핵무기를 사용한 공격을 가했을 때 이에 대해 응징할 수 있음을 과시해 공격 자체를 억제하는 것이다.
거부억제는 핵무기에 대한 방어 능력을 통해 적이 핵무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인식시키는 일종의 억제 효과를 말한다.
통상 핵교리는 해당 국가가 적국과 비교해 우세한 재래식 군사력을 갖는 경우 핵무기에 대한 선제 불사용을 전제하며 처벌효과를 강조하는 쪽으로 설정된다.
물론 해당 국가의 핵교리는 자국이 판단하는 안보상황에 따라 변화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개정된 핵억지 분야 국가정책의 기초(핵교리)를 승인하는 대통령령(러시아연방의 핵억제 정책에 관한 기본 원칙)에 서명했다고 타스통신이 전했다. 개정 핵 교리는 이날부터 발효된다.
이번 핵교리 개정에 대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우리의 원칙을 현재 상황에 맞출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황을 둘러싼 국제상황의 변화에 대응이라는 설명이다.
세계 최대 핵무기 보유국 러시아는 지난 2020년 6월에 핵교리를 개정했다.
당시에는 ▲ 핵무기나 다른 대량살상무기가 러시아나 동맹국에 사용됐을 때 ▲ 적의 재래식 무기 공격이 러시아의 존립을 위협할 때 ▲ 러시아나 동맹국의 영토를 겨냥해 탄도미사일이 발사됐다는 믿을만한 정보가 입수됐을 때 ▲ 보복 핵공격 능력을 약화할 수 있는 핵심 정부·군사 시설이 공격당했을 때 핵무기 사용을 최종적 수단으로 고려할 수 있었다.
대체로 핵무기의 선제사용은 원칙상 불가능한 것으로 국제사회는 받아들였다.
그런데 4년여만의 이번 개정으로 ▲ 러시아와 동맹국인 벨라루스의 주권과 영토 보전에 중대한 위협을 주는 재래식 무기 공격이 있을 때 ▲ 러시아와 동맹국에 대한 핵무기 및 대량살상무기 공격이 있을 때 핵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에 대해 미국이 우크라이나가 미국산 미사일을 러시아 본토 공격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 데 대한 대응으로 풀이했다.
비핵국가라도 핵보유국의 지원 하에 러시아를 공격할 경우 모두 핵 공격 대상으로 삼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꾸준히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위협을 해왔다. 지난 2022년 12월 푸틴 대통령은 "미국의 선제타격 개념을 러시아 안보를 위해 채택하는 것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또 지난 6월에도 "핵 교리는 살아있는 도구"라고 강조했다. 물론 당시에는 "핵무기를 사용해야 할 조건이 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번 핵교리 개정에 대해서도 페스코프 대변인은 "러시아가 항상 핵무기를 억지 수단으로 간주해 왔다"면서도 "러시아가 대응해야(할) 강제적인 상황에서만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의 핵교리 개정에 대해 미국의 대응이 주목되는 시점이다. 흔히 핵보유국 사이에는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이 생기며 이를 상호확증파괴(MAD)로 설명하기도 한다.
매슈 밀러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러시아의 무책임하고 호전적인 수사는 러시아의 안보를 개선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은 현재로선 비례적인 대응 조처를 취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양상에 따라 러시아의 호전적인 핵사용 위협은 고조될 것이며, 이에 따라 미국의 대응도 가사회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사회는 지난 1970년 핵확산금지조약(NPT)의 발효를 계기로 국제 비확산체제를 유지해왔다. NPT는 기존의 5대 핵보유국 외에 새로운 핵개발 국가들의 출현을 막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기존 핵보유국의 핵무기 사용을 억제해왔다.
장기화되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국제비확산체제의 최대 위협요소로 부각되는 형국이다.
lw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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