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문화사학자가 조명한 사교계 이야기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하녀였던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마거릿의 핏줄은 사실 좀 복잡했다. 아빠가 있었으나 그는 그녀의 진짜 아빠가 아니었다. 최상류층에 사는 부유한 남자, 윌리엄 매큐언이 그녀의 진짜 아빠였다. 마거릿은 엄마가 매큐언과 바람을 피워 낳은 자식이었다.
마거릿의 법적인 아버지가 죽자 엄마는 바람피운 상대인 매큐언과 재혼했고, 마거릿은 부유한 집안의 상속자가 됐다. 새아빠 매큐언은 마거릿을 런던 사교계에 데뷔시켰다.
마거릿은 귀족 가문 출신이지만 한량인 로니를 신랑감으로 택했다. 다루기 쉬운 인물이라고 판단해서다. 수완 좋은 그녀는 로니를 정치계로 이끌었다. 화술에 정통한 그녀는 마키아벨리적인 권력욕이 있었다. 후일 아서 밸푸어(1848~1930) 영국 총리는 마거릿의 화법을 '달콤한 독약 같은 것'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마거릿은 남편과 달리 야망이 컸고, 권력에 가까이 다가가겠다는 의지도 강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에 짧은 평화기였던 20세기 전간기, 영국 사교계를 움직인 건 마거릿과 같은 여성들이었다. 최근 출간된 '여왕벌'(열린책들)은 영국 정계를 쥐락펴락했던 여섯 명의 여성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영국의 문화사학자 시안 에번스는 흡입력 있는 필치로 영국 사교계 현실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책은 각기 개성 넘치는 여섯 명의 '여왕벌'을 조명한다. 낸시 애스터, 로라 코리건, 에메랄드 커나드는 미국 태생, 시빌 콜팩스, 이디스 런던데리, 마거릿 그레빌은 영국 출신이었다. 이중 상류층 출신은 미국인 애스터, 영국인 런던데리뿐이었다.
이들 여섯명은 서로 다른 배경 출신이었지만 하나같이 계급 사다리를 오르는 과정에서 과단성 있고 야심만만한 '출세주의자' 같은 면모를 드러냈다. 이들은 결혼을 발판 삼아 영국 사회의 권력층에 안착했다. 또한 똑똑했다. 정규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했지만, 머리가 좋았고 호기심이 많았으며, 대개 독학으로 배움을 채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들의 성공을 이끈 가장 큰 요인은 패배를 모르는 근성이었다. 이들은 저마다 인생에서 당면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다. 사생아라는 낙인이 따라다니거나, 가난 속에서 자라며 상처 입거나, 사랑받지 못한 유년기의 슬픔에 시달리거나, 사랑하는 부모가 세상을 떠나거나, 이혼녀라고 손가락질받거나, 남편의 부정으로 쓰라린 상처를 입거나, 미망인으로 살아가며 외로움을 느끼거나, 자식을 잃는 등 각양각색의 아픔을 겪었지만 모두 이를 보란 듯이 극복해냈다.
여왕벌 중 한명인 로라 코리건은 죽기 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어렸을 때 나는 세상의 모든 왕과 왕비를 알게 되길 꿈꿨다. 그게 지금껏 나의 소원이었다."
정미현 옮김. 496쪽.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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