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이 보수 성향의 장남에게 지분을 몰아주기 위해 일방적인 가족 신탁 변경을 시도했다가 법원에 제동이 걸렸다.
뉴욕타임스(NYT)를 비롯한 현지 언론들은 9일(현지시간) 네바다주 신탁 감독관이 머독과 그의 장남 라클런이 낸 가족 신탁 변경 요구를 거부했다고 법원 문서를 인용해 보도했다.
지난 6일 제출된 96페이지 분량의 의견서에서 에드먼드 고먼 주니어 신탁 감독관은 머독과 라클런이 취소 불가능한 신탁을 수정하려고 한 것이 "악의적(bad faith)"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현재 가족 신탁은 머독 사망 시 라클런을 포함한 네 자녀가 가족 사업의 지분을 동등하게 넘겨받고, 회사의 미래에 동등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신탁 감독관은 머독의 신탁 변경 요구가 미디어 제국에서 라클런의 경영권을 굳건히 하기 위한 의도였다면서 "정교하게 꾸며진 위장극"이라고 표현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물론, 가족 내 신탁 수익자들에게 미칠 여파가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됐다.
올해 93세인 머독은 가족 신탁을 변경해 장남 라클런에게 지분을 몰아줌으로써 TV 네트워크, 신문사들의 보수적인 편집 방향을 유지하고자 했다. 하지만 취소 불가능한 가족 신탁을 그 누구의 동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수정하고자 하자, 다른 자녀들이 법적 대응에 나선 것이다. 머독의 다른 자녀인 제임스와 엘리자베스, 프랑스로 단스는 머독과 라클런에 비해 중도적 정치 성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NYT는 "가족신탁을 둘러싼 싸움은 돈 때문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보수 미디어 제국의 미래 지배권에 대한 것"이라며 "머독은 자신의 미디어 제국을 장남인 라클런에게 완전히 넘겨주면서 폭스뉴스의 우익적 성향을 유지하고자 했다"고 전했다. 호주 출신의 머독은 미국의 폭스뉴스, 월스트리트저널(WSJ), 뉴욕포스트, 영국의 더 선, 더 타임스를 포함한 미디어 제국을 구축하며 영향력을 떨쳐왔다.
이번 법적 싸움은 머독 일가의 깊은 갈등을 대중에게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임스, 엘리자베스, 프루던스는 성명을 통해 "결정을 환영한다"면서 "이번 소송을 넘어 모든 가족 구성원 간 관계를 강화하고 재건하는 데 집중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반면 머독측 변호사는 머독과 라클런이 이번 판결에 실망했으며 항소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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