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자서전 '희망'에 쓰인 프란치스코 교황 "교회, '탈 남성화' 돼야"
    입력 2025.01.14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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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경제 ] 2013년 베네딕토 16세의 충격적인 자진 사임 이후 교황으로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이 당시 일을 회고했다.

연합뉴스는 14일 전 세계 80개국에서 동시 출간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자서전 '희망'을 인용해 보도했다. '희망'에서 교황은 선출 직후 로마 남부의 교황 여름 별장인 카스텔 간돌포에서 베네딕토 16세를 방문했던 일을 언급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로이터 연합뉴

당시 베네딕토 16세가 건넨 커다란 흰색 상자를 주며 "모든 것이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베네딕토 16세는 또 "가장 어렵고 고통스러운 상황과 관련된 문서들, 학대, 부패, 어두운 거래, 잘못된 행위들에 대한 자료들"이라며 "나는 여기까지 했고, 이런 조처를 했으며, 이런 사람들을 해임했으니 이제는 당신의 차례"라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상자에 대해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자서전에 "나는 그의 길을 계속 걸어가고 있다"고 밝혔을 뿐이다. 앞서 베네딕토 16세가 프란치스코에게 건넨 상자에 어떤 자료가 담겼는지와 관련해 여러 추측과 소문이 있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흰 상자'의 비밀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 자서전이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자서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콘클라베(교황선출회의)에서 교황으로 선출된 순간도 언급됐다. 교황 선출방식으로 알려진 콘클라베(Conclave)는 교황이 선종하거나 사임하면 후임 교황을 뽑는 절차를 뜻한다. 투표권이 있는 추기경들이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교황을 뽑는다. 초기에는 로마의 성직자와 평신도들이 뽑다가 1059년 추기경단에서 선택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외부와 차단된 채 진행하는 콘클라베는 1274년 시작됐다.

2013년 3월23일(현지시간) 프란치스코와 베네딕토 16세 사이에 흰 상자가 놓여 있다. EPA 연합뉴스

당시 콘클라베에는 전 세계에서 115명의 추기경이 소집됐다. 누군가가 교황이 되기 위해서는 추기경 115명 중 3분의 2 이상인 77표를 얻어야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4번째 투표에서 69표를 얻었을 때 자신의 운명이 결정됐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다섯 번째 투표에서) 내 이름이 77번째로 불렸을 때,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며 "결국 몇 표를 얻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더 이상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추기경들의) 목소리가 심사위원의 목소리를 덮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교황은 여성과 관련해 교회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chiesa'가 여성 명사라는 점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교회는 여성이다. 남성이 아니다"라며 "여성들이 사회와 교회 생활의 다양한 영역에서 더 완전하게 참여하고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새로운 방법과 기준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긴급한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여성 사제 허용은 여전히 배제했다. 교황은 "우리가 저지른 가장 큰 죄 중 하나는 (교회를) '남성화'한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탈남성화'돼야 한다"며 "동시에 여성을 '남성화'하는 것은 인간적이지도 기독교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꾸준히 제기된 건강 이상설과 그에 따른 자진 퇴임설에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그는 "나는 건강하다. 사실은 아주 간단하게 말해서 늙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무릎과 허리 통증 탓에 휠체어에 자주 의존하는 그는 "교회는 다리가 아니라 머리와 마음으로 운영된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에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른쪽 아래턱에 시퍼런 멍이 든 채로 추기경 회의에 참석해 건강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2021년 7월 4일 결장 협착증 수술을 받았고, 그로부터 2년 뒤인 2023년 6월에는 탈장을 치료하기 위해 다시 수술받았다. 88세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건강에 큰 이상은 없지만 최근 무릎과 허리 통증이 심해지며 대중 앞에서 휠체어를 이용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2024년 9월 동티모르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 AP 연합뉴스

한편, 교황의 자서전 '희망'은 애초 교황의 사후에 출간될 예정이었지만 교황이 25년마다 돌아오는 올해 희년에 맞춰 출간을 앞당겼다. 공동 저자로 참여한 이탈리아의 출판업자 카를로 무소는 지난 6년 동안 이 책을 공동 집필해왔다고 밝혔다.

교황의 자서전 '희망'은 303페이지 분량이다. 그는 책을 통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자란 자신의 성장 과정, 아르헨티나 주교로서의 생활, 그리고 전 세계 교회의 지도자로서 내린 결정에 대해 되돌아봤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역대 교황 중 가장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013년 취임 이후 성 소수자(LGBTQ)를 포용하는 태도를 취했고, 지난해 동성 커플에 대한 가톨릭 사제의 축복을 공식 승인했다.

교황은 "축복받는 건 관계가 아니라 사람"이라며 "교회에 있는 모든 사람은 축복받을 수 있다. 이혼한 사람, 동성애자,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축복받을 수 있다. 동성애는 범죄가 아니라 인간의 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교황청은 성관계를 멀리하는 순결한 동성애자 남성일 경우 사제를 양성하는 신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는 새로운 지침을 승인했다. 다만 동성애적 성향을 과시하는 남성은 교육에서 배제된다고 전했다.

김현정 기자 kimhj202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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