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갑은 을에게 매월 150만원을 지급한다. 을은 갑에게 150만원을 받아 80만원은 베트남 부모님께 드리고 70만원은 병에게 준다"
지난해 한 국제결혼중개업체를 통해 베트남 여성과 결혼한 한국 남성 A씨는 결혼 전 중개업체로부터 '결혼합의서' 계약서를 받았다. A씨가 아내의 한국 입국 후 7년간 매달 150만원을 아내에게 지급하면, 이중 80만원은 아내가 베트남 친정에 보내고 나머지 70만원은 중개업체가 받는다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앞서 A씨는 중개업체에 이미 2000만원 이상 결혼 중개비용을 내고 아내를 소개받아 만난 상태였다. 그런데 A씨가 중개업체에 아내와 결혼할 의사를 밝히자마자 갑작스럽게 업체에서 이 문서를 내밀었다. 해당업체는 계약서가 작성되지 않으면 결혼이 성사될 수 없다며 자신들이 받는 70만원은 베트남 현지에서 아내가 입국 전 한국어 공부 수업료로 쓰일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실제 합의서에도 중개업체는 이 돈을 일시납으로 받는 대신 베트남 아내가 한국비자를 받을 수 있도록 한국어 교육을 책임진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한국어능력시험인 토픽(TOPIK) 4급까지 교육한다고 명시했다. 여기서 토픽시험이란 교육부 산하 국립국제교육원이 주관하는 시험으로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외국인, 재외동포의 한국어 사용능력을 측정·평가해 비자 취득이나 국내 대학 유학 및 취업 등에 활용하는 시험을 뜻한다.
결혼이민비자(F-6)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최소 한국어 토픽(TOPIK) 1급 자격을 획득해야한다. 3급 취득자는 전문인력(E-7)비자 발급을 신청할 수 있고, 4급 취득자는 한국 대학 및 대학원에 입학, 학과를 수료한 후 졸업할 자격이 주어진다.
해당 중개업체에서는 베트남 아내의 한국어 토픽 시험을 통과시키는 교육 비용으로 70만원을 받겠다고 한 것이다. 이와함께 7년동안 베트남 아내가 무단가출로 혼인취소나 이혼사유가 발생하면 또다른 베트남 여성과의 결혼을 무상 중개해준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미 중계비용을 모두 치른 것으로 생각한 A씨는 중개업체가 월 150만원씩 별도비용을 내야햐나느 합의서를 요구하자 황당해했다. 해당 합의서를 이상하게 여긴 A씨는 아내의 비자신청을 처리하기 위해 행정사를 찾았다가 합의서 내용에 대해 문의했다. 문의 결과 이러한 형태의 계약은 국제결혼중개 표준약관에 전혀 들어있지 않은 불법 계약이었다.
국제결혼이 보편화되고 있지만 A씨와 같이 결혼 과정에서 불법계약 피해를 입은 한국인 남성들의 피해사례는 여전히 많다. 만남부터 결혼식까지 불과 4박5일, 혼인신고 등 제반절차까지 합쳐도 9일 내로 이뤄지는 국제결혼 관행으로 제대로 계약을 확인할 시간조차 없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집계한 '2023 국제결혼중개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제결혼 중개업체를 통해 현지 맞선에서 결혼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9.3일로 나타났다. 그나마 2017년 4.0일, 2020년 5.7일 보다는 늘어난 수준이지만 여전히 만남부터 결혼까지 이뤄지는 전체기간은 매우 짧은 편이다.
통상 중개업체를 통한 국제결혼은 국내에서 한국남성이 중개업체에 등록한 뒤 온라인 화상채팅 등을 통해 맞선 대상 여성들을 소개받은 후, 약 4박5일간 한국 남성이 베트남 등 현지국가로 떠나 실제 만남을 갖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중개계약 및 혼인절차가 모두 이뤄지고 현지 및 국내 법적절차와 비자업무 등을 모두 중개업체서 맡게된다.
결혼까지 과정이 순식간에 이뤄지는데 비해 혼인절차는 복잡하다보니 정보 불균형 상태에서 사기 계약을 당하기 쉽다. 황선훈 행정사는 "혼인 비자 취득과 관련돼 일반인들이 정보를 얻기 힘든 점을 악용해 사기를 벌이는 악덕업체들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이러한 불법계약으로 인해 파탄에 이르는 다문화가정이 늘고 있고 일부 국제결혼한 남성들이 아내를 돈주고 사왔다는 인식을 가지면서 가정 내 여러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피해가 여전하지만, 국제결혼 비율은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서 다시 상승추세다. 통계청의 다문화인구동태 통계에 따르면 전체 혼인건수 중 다문화혼인(국제결혼) 비율은 2019년 10.3%를 기록했다가 코로나19로 2020년 7.6%, 2021년 7.2%까지 하락하다가 2023년 다시 10.6%로 올라섰다.
문제가 많다는 이유로 지자체의 국제결혼 지원조례가 대부분 폐지 절차를 밟고 있지만 강화·고성·정선·강진·하동군 등 5곳은 현재까지 사업을 유지하고 있다. 고성·하동·정선·강화군은 35세 이상 남성, 강진군은 30세 이상~45세 미만 남성을 대상으로 국제결혼시 지원금을 지급한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김진선 기자 carol@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