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트럼프는 하나로 통합된 북미 경제 공동체를 파괴하고 규칙 기반의 무역 시스템을 전복시켰다. 미국을 위한 조치라고 했지만, 트럼프조차도 그 파괴적인 결과에 놀라게 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 후 첫 관세 타깃으로 캐나다, 멕시코(각각 25%)와 중국(10%)을 정조준했다. 미 경제·통상 전문가들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동맹과 적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관세 폭탄'을 던지며 글로벌 교역 환경과 경제를 예측하기 어려운 큰 혼란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큰 무역적자를 보고 있는 한국 역시 트럼프 2기 관세 폭탄의 사정권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2일(현지시간) 글로벌 경제·통상 전문가인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윌리엄 A. 라인시 국제경제석좌는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관세 조치로 캐나다, 멕시코에서 대량 해고가 발생하고 미국으로 부품 등 유입이 중단돼 생산 마비가 초래될 것"이라고 말했다. 라인시 석좌는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상무부 차관을 지냈다.
그는 "미국의 이번 관세 조치로 인한 직접적인 영향은 엄청나게 파괴적일 것"이라며 "향후 상대국의 보복 조치까지 고려하면 비용은 더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 투자 자문사인 록크릭 어드바이저의 마이클 J. 스마트 총괄 이사는 "캐나다, 멕시코의 대미 수출 의존도는 80%로 이번 25% 관세 부과 조치로 이들 국가의 국내총생산(GDP)은 2%포인트 이상 감소할 것"이라며 사실상 두 국가 경제가 마비되고 북미 경제 공동체가 붕괴할 것으로 전망했다. 스마트 이사는 국제 통상 전문가로 미국 상원 재정위원회의 민주당 소속 무역·통상 고문을 지냈고, 이전엔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국제 무역·투자 업무를 담당했다.
미국 경제 또한 트럼프발(發) 관세 전쟁으로 인한 악영향이 불가피하다고 봤다.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산업으로는 농업이 공통적으로 꼽혔다.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급등 우려도 제기됐다.
스마트 이사는 "미국에서 과일·채소와 같은 농산물, 가솔린 등 에너지와 자동차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라인시 석좌 역시 물가 상승을 우려하며 자동차 가격이 3000달러 오를 수 있다는 울프 리서치 분석을 소개했다.
캐나다, 멕시코에 대한 관세 25%와 대중 관세 10% 부과 조치를 달리 봐야 한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협상 의지를 담은 신호를 보냈다는 해석이다.
라인시 석좌는 "트럼프는 시진핑과 협상에 관심이 있고 60% 관세 부과는 협상 가능성을 없앨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중국이 협상하지 않거나 향후 협상에 실패하면 트럼프가 대중 관세를 인상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스마트 이사 역시 "트럼프가 틱톡 금지법 시행을 유예한 데 이어 비교적 온건한 10% 관세를 부과한 것은 시진핑과의 관계 회복 의지가 있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의 대중 관세율이 평균 20%로 이미 높은 편이고, 중국의 대미 수출 의존도 역시 15%에 불과해 이번 조치가 중국에 심각한 타격을 주진 않을 것으로 봤다.
무엇보다 트럼프 2기의 관세 전쟁 상대는 동맹과 우방을 가리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스마트 이사는 "트럼프는 중국보다 캐나다, 멕시코, 유럽연합(EU) 등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국에 대한 관세 부과에 더 적극적으로 보인다"며 "미국의 친구든, 적이든, 누구나 표적이 될 수 있고 어떤 나라도 안전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관세의 역할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됐다. 관세가 협상 레버리지이자 무역 적자 해소, 제조업 복원, 세입 확대 기반, 불법이민·마약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 등으로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라인시 석좌는 "관세 인상의 주된 동기는 감세로 더 많은 세입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라며 "무역 적자 해소, (제조업 등) 경제 재건 등 다양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다음 타깃은 한국이 될 수 있다는 전망 또한 나왔다. 한국은 지난해 약 557억달러의 대미 무역흑자를 달성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스마트 이사는 "EU가 다음 차례로 유력하지만, 한국을 비롯해 일본, 대만, 베트남 등 대미 무역흑자가 큰 국가들도 트럼프의 표적"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한국 등이 미국 외에 다른 국가들과 교역 기반을 확대해 대미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라인시 석좌는 "다음 관세 움직임은 트럼프가 지난달 31일 예고한 대로 철강·구리·제약·반도체 등 특정 업종이 될 수 있다"며 "아마도 모든 국가가 관세를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조치가 보복 관세 도미노를 불러일으켜 글로벌 교역 환경을 교란하고 세계 경제와 정치 지형에 큰 후폭풍을 초래할 것이란 경고도 거듭 제기됐다.
라인시 석좌는 "트럼프는 그가 협상했던 미국의 가장 중요한 무역 협정을 깨고 규칙 기반의 무역 시스템을 전복시켜 우리를 정글의 법칙으로 되돌렸다"며 "트럼프는 미국을 위한 조치라고 했지만 그조차도 그 결과에 놀라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스마트 이사는 "동맹을 결집하는 공유 가치를 포기하고 경제적으로 무차별적인 힘을 가하고 있다"며 "이는 미국에 오랫동안 비교 우위를 제공해 온 동맹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뉴욕(미국)=권해영 특파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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