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멕시코, 캐나다에 대한 25% 관세를 한 달 유예했지만 국내 증시를 둘러싼 하방 압력은 여전하다. 이른바 '트럼프 관세'의 타깃이 언제든 한국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자동차·이차전지·가전기기 등을 중심으로 국내 수출기업의 약세가 지속될 전망이다. 반면 내수 중심의 금융주, 관세 무풍지대로 꼽히는 조선·방위산업주, 인터넷게임 관련주는 피난처로 떠올랐다. 경기민감주인 운송산업의 경우 상위업체들로선 이러한 관세 리스크가 운임을 올릴 수 있는 기회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한국투자증권 리서치본부는 4일 공개한 '제2차 무역전쟁 : 한국 업종별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향후 국내 증시와 산업에 미칠 여파를 이같이 분석했다. 김대준 연구원은 관세 리스크로 인해 전날 국내 증시가 약세를 보이며 저평가 영역에 재진입했다는 점을 짚으며 "유럽연합(EU) 그 다음 (관세 부과) 순서는 한국이 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미국발) 관세 리스크가 해소되기 전까지 수출주에 불리한 환경이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멕시코, 캐나다에 대한 30일 관세 유예 결정으로 이날 코스피는 상승 출발했으나, 미국발 관세전쟁 리스크는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다.
구체적으로는 미국 내 생산이 가능함에도 해외에서 제품을 공급하는 기업들이 보편관세 압박에 휩싸일 것으로 예상됐다. 김대준 연구원은 "국내에서 이러한 업종에 속하는 건 자동차, 이차전지, 가전기기 등"이라며 "관세 문제가 공식적으로 협상 테이블에 오르기 전까지 부진을 이어갈 수 있다"고 봤다.
국내 대표 자동차 제조사인 현대차와 기아는 트럼프 관세로 올해 영업이익이 악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김창호 연구원은 "한국 자동차 업계가 직면한 리스크는 한국산 10%, 멕시코산 25% 보편 관세"라며 "관세 부과 시 현대차 영업이익 영향은 약 1조9000억원으로 2025년 추정치의 14%"라고 분석했다. 이는 미국향 수출량인 55만대, 관세율 10%, 현대차 ASP 3400만원 가정한 수치다.
기아의 경우 한국산 10% 관세, 멕시코산 25% 관세 부과 시 영업이익 악화폭이 약 2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이 또한 2025년 추정치의 약 16% 수준이다. 그는 "보편관세가 확정될 경우 실적 추정치에 반영될 것"이라면서 "밸류에이션 매력 축소에 따라 당분간 자동차 업종 관련 주가는 부정적일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전기·전자 업종의 경우 완제품 기업에 직격탄이 될 전망이다. 박상형 연구원은 "관세 영향은 부품사보다 IT 완제품에 더 직접적"이라며 "부품사의 고객이 기업인 반면, IT 완제품은 고객이 개인이다. 미국 고객에게 제품을 팔기 위해서는 미국이 부과하는 관세를 (개인이)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고 짚었다. LG전자의 2023년 미국향 매출 비중은 24.2%다.
다만 그는 "완제품 소비 둔화는 곧 부품 수요 둔화로 이어진다"며 직접적인 관세 사정권에 들지 않더라도 이러한 관세 리스크가 부품사에도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도 언급했다. 또한 전기·전자 업종에서 미국발 관세 리스크에서 가장 자유로운 분야는 자국 내수시장 의존도가 높은 중국 스마트폰 브랜드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도체 부문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대중국 정책이 이어지며 관련주 투자심리가 위축될 것으로 전망됐다. 다만 메모리 반도체는 대부분 미국 외에서 생산되고 있어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란 관측이다. 채민숙 연구원은 "메모리 반도체는 트럼프 1기에 이미 대중국 관세를 경험했다"며 "이후 중국 공장에서 생산한 반도체는 최대한 중국 내에서 소비하고 대미 수출은 대부분 한국 공장 생산품으로 대응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인공지능(AI) 관련 메모리 판매와 B2B(기업 간 거래) 매출 비중이 높은 SK하이닉스가 가장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다.
상대적으로 트럼프발 관세전쟁의 우려에서 비켜난 업종으로는 조선, 건설, 방산 등이 꼽힌다. 김대준 연구원은 "미국이 필요한 제품이지만 자국에서 만들 수 없는 것이 있다. 조선, 원전, 전력 등"이라며 "한국 외에 마땅한 대안이 없어 관세를 부과해도 얻을 게 없다. 즉 관세 리스크가 높지 않기에 주가가 흔들리면 저가 매수로 대응하며 버티면 된다"고 분석했다.
강경태 연구원 역시 "고관세 정책이 확대돼도 조선업은 미국 관세 무풍지대"라며 HD현대미포를 조선업종 톱 픽으로 유지했다. 그는 미국은 선박을 수입하지 않는다면서 전략 상선단 참가 목적으로 미국 선주들이 발주할 선박도 관세에서 자유로울 것이라고 짚었다. 또한 선종 구성상 HD현대미포가 미국 선박 관련 정책 수혜주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그는 건설업종 또한 미국 관세정책 변화에 흔들림 없는 곳이라고 평가하면서 "수주, 매출, 이익 대부분 내수에서 발생하고, 해외 성과에서 미국이 기여하는 비중이 낮다"고 설명했다.
인터넷, 게임 업종에서도 관세에 따른 부정적 영향은 없을 것으로 예상됐다. 오히려 인공지능(AI)과 관련해 긍정적인 기술적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만큼 최근 거시환경에서 수혜를 볼 수 있는 섹터라는 평가다. 방산업 역시 트럼프 관세의 영향이 제한적인 업종으로 함께 꼽혔다. 장남현 연구원은 "방산기업 실적에서 미국향 무기체계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없다"며 "향후 수출은 중동, 동유럽,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발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장기적 관점에서 국내 방산기업이 미국 시장 진출을 추진할 경우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미국우선주의 기조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철강업의 경우 지난해를 기준으로 한 한국 철강의 미국 수출비중이 9.8%에 그쳐 관세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2014년 17.2%였던 한국 철강의 대미 수출 비중은 트럼프 1기가 시작된 2017년 11%를 기록하는 등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최문선 연구원은 "미 수출 주요 품목은 자동차용 강판"이라며 "한국산과 미국산 가격 격차를 감안하면 관세가 20% 이상 부과돼야 현지 가격보다 한국 공급가격이 높아진다. 10% 관세 부과 시에도 미국 수출 흐름은 유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유·화학 업종에서는 단기적인 관세 정책변화에 따른 여파보다는 공급 구조조정 요인이 더 중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글로벌 에너지 시장 변화와 맞물려 미국의 캐나다산 원유 관세 부과로 오히려 반사이익이 기대된다는 관측이다.
경기민감주인 운송산업 역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공급 병목이 곳곳에서 이어지는 가운데 충분한 물류 인프라와 서비스 경쟁력을 갖춘 상위업체들엔 운임 인상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최고운 연구원은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강화되면 중장기적으로 교역량이 감소하겠지만 정책 도입 초기 과도기에는 그 이상으로 운임이 급등할 수 있다"며 현대글로비스, 대한항공 등의 공급자 우위가 강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식음료 업종에서는 미국 내 생산시설을 보유한 기업 중 CJ제일제당이 수혜기업으로 꼽혔다. 강은지 연구원은 "트럼프 고관세 정책에 따른 수혜가 예상된다"며 "바이오사업부에서 생산하는 대형아미노산 제품의 주요 경쟁자가 중국업체들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농심 역시 미국 내 생산시설을 보유하고 있으나 경쟁사들도 마찬가지기에 수혜는 제한적일 것으로 분석됐다.
이 밖에 증권업종에서는 조건부 부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수출주를 중심으로 투심이 악화하며 국내 주식 거래대금이 축소될 경우 부정적이라는 진단이다. 2018년 미·중 무역분쟁 여파가 본격적으로 반영됐던 2019년 국내 주식 일평균 거래대금은 9조3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9% 감소했었다. 금융업종에서는 교역량 축소 등으로 국내 경제의 순수출 기여도가 축소될 경우 채권금리 하방압력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이 언급됐다.
김대준 연구원은 "관세가 결국 수출 관련 이슈인 만큼 한국 내수 관련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현명한 대처"라며 투자자들에게 밸류에이션 매력이 높아진 은행, 보험 등 금융주와 음식료 관련주 등에 관심을 기울일 것도 제언했다.
미국의 고율관세 정책은 한국 경제 전반에도 하방압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문다운 연구원은 "아직 한국을 직접 겨냥한 정책이 공개된 것은 아니나 보편관세 도입 및 고율 관세 장기화 가능성 배제하기 어려워졌다"며 단기적으로는 환율 등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중장기적으로는 글로벌 교역 및 대미수출 축소에 따른 수출 물량 감소를 우려했다. 이러한 양상은 앞서 트럼프 1기 당시에도 확인된 바 있다. 그는 "모두 한국 수출과 성장에 하방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올해 상저하고 궤적이 예상되는 가운데 트럼프 정책 전개 양상에 따라 상단과 하단 눈높이 더 낮아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투자증권이 제시한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은 1.4%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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