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이 똑같이 미국산 제품에 10~1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텅스텐 등 원료의 수출을 통제하기로 하면서 미·중 갈등이 트럼프 1기 당시처럼 '강 대 강' 대결로 치닫고 있다.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목한 1차 관세 타깃에서 빠진 한국은 상황을 예의 주시하면서 미국산 수입 확대 등 미국의 요구를 일정부분 수용하는 전략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은 중국과 달리 맞대결이 아닌 협상을 통한 양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5일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중국의 보복관세는 중국이 미국과 함께 글로벌 주요 2개국(G2)으로 미국에 맞설 수 있는 힘이 있고, 엄청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무역전쟁을 버틸 수 있는 여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며 "하지만 한국은 미국과 상당한 힘의 불균형이 있는 상태이고 대외 의존도가 크다는 점에서 미국에 대한 맞대응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영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이 맞대결을 통해 미국과 경쟁 관계에 있는 나라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기 위한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중국이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글로벌 패권 경쟁"이라며 "중국과 유사한 입장에 있는 국가들을 결집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기 위해서 미국과 대립각을 세울 수 있는 부분에서는 목소리를 강하게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무역전쟁은 트럼프 1기 때도 발발했었다.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중국에 340억달러 규모의 중국 수입품에 25% 관세를 부과하면서 촉발됐다. 이후 중국도 미국과 같이 25% 보복관세를 부과하면서 무역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는 미국산 농산물, 특히 대두(콩)에 집중됐다. 중국은 트럼프의 핵심 지지기반이었던 농업지역에 타격을 주기 위해 대두(콩)와 옥수수, 밀, 쇠고기, 돼지고기를 중심으로 연간 총 340억달러 규모 미국산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했다. 중국은 또 이런 농산물의 미국 수입을 줄이고 대신 브라질 등으로 수입처를 다변화하며 맞섰다. 이 탓에 당시 미국의 대중국 대두 수출량이 급감했다. 결국 미국은 중국산 제품에 대한 새로운 관세 부과를 보류하고, 중국은 미국의 농산물 500억달러를 사들이는 등의 내용을 담은 1단계 무역합의안을 2020년 1월 체결했다.
그러나 한국은 중국처럼 미국에 보복관세를 부과하기 어렵다. 한국이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경제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미국은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다. 맞대결보다는 완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한국의 경제적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 지난해 미국과의 무역으로 557억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김 위원은 "한국은 미국에 수입보다 수출을 훨씬 많이 하는 국가로 미국이 관세를 올리면 한국 제품의 타격이 크다"며 "(추가 관세 부과 시) 한국도 상징적으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수는 있겠지만 실익이 크지 않기 때문에 협상을 병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이 반도체 설계 등 한국 수출 주력품의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맞대결을 제약하는 요소 중 하나다. 허 교수는 "한국이 쓰고 있는 반도체 설계 기술부터 인공지능(AI), 로봇공학 등 다양한 핵심 원천기술 특허를 미국이 가지고 있다"며 "미국의 기술을 사용하는 기업의 생산물도 미국이 규제하고 있다는 점도 현실적인 제약으로 작용한다"고 강조했다. 국가 안보적인 측면도 있다. 한국에는 2만8500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허 교수는 "한국은 안보적인 측면에서 미국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며 "사실상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미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허 교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중국 견제는 더 빠르고 강하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이번 트럼프의 행정명령을 보면 1기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에 대한 이해도가 높기 때문에 미국의 많은 조치가 훨씬 더 직접적이고 굉장히 빠른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며 "다만 미국은 멕시코와 캐나다 사례처럼 협상의 여지를 열어두고 있다. 한국도 이 점을 활용해 이익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협상을 적극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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