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국제 신용평가사인 피치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처음으로 내놓은 신용등급 평가보고서에서 한국의 신용등급을 ‘AA-’로 유지했다.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은 크지만, 경제 여건은 크게 악화하지 않았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정치적 교착 상태가 장기간 이어질 경우 정책 효율성, 경제 성과, 재정건전성 등이 악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신정부의 보편과세 부과에 따른 수출 둔화 우려 등을 반영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1.7%로 내려잡았다.
피치는 6일(현지시간) 한국의 신용등급에 대한 평가의견을 내고 신용등급과 전망을 각각 기존과 같은 ‘AA-’, ‘안정적’이라고 밝혔다. ‘AA-’는 피치의 신용등급 평가체계에서 AAA, AA+, Aa2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것으로, 또 다른 신용평가사인 S&P(AA)나 무디스(Aa2)와 비교하면 한 등급 아래다. 한국의 피치 등급은 영국, 프랑스, 벨기에 등과 같고 일본보다 두 단계 더 높다. 피치는 2012년 9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에서 ‘AA-’로 한 단계 상향 조정하고, 14년째 같은 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평가는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처음으로 나온 국제 신용평가기관의 공식 평가다. 피치는 계엄 사태 직후 보고서를 내고 적시 해소가 안될 시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실제 평가에서는 등급과 등급전망을 유지했다. 피치는 이번 보고서에서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앞으로 수개월간 지속될 수 있다"고 보면서도 "이것이 한국의 거버넌스와 경제를 실질적으로 훼손할 것으로 예상하지는 않는다"고 평가했다. 정치적 불확실성 속에서도 '펀더멘탈 안정성(Fundamentals Stable)'은 유지되고 있다는 평가다. 다만 "이러한 정치적 교착상태가 장기간 지속될 경우에는 정책 결정의 효율성, 경제 성과, 재정건전성 등이 악화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피치는 "정치적 불확실성에 따른 심리 위축, 미 신정부 보편관세 부과에 따른 수출 둔화 우려 등으로 인해 올해 경제 성장률은 1.7%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당초 전망(2.0%)보다 0.3%포인트 내린 것이다. 다만 "내년부터는 소비 및 설비·건설 투자의 개선에 힘입어 성장률이 2.1%로 회복될 것"으로 봤다.
다소 보수적인 평가 스탠스를 가진 재정 부문에서는 "지속적인 재정수입 회복과 지출 통제 노력에 따라 지난해(GDP 대비 -1.7%)에 비해 올해는 재정수지가 개선(-1.0%)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올해 정치 상황에 따라 향후 재정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졌으며, 고령화 지출 등으로 정부부채가 지속적으로 늘어날 경우 신용등급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가계부채가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다"고 평가하며 "고금리 장기화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 관련 리스크는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리스크 역시 정부의 선제적인 정책대응과 구조조정 노력에 힘입어 관리가능한 수준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대외신인도에 직결되는 경상수지와 순대외자산에 대해서도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피치는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는 높은 수준(GDP 대비 4.5%)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지속적인 경상수지 흑자와 GDP 대비 23%(피치 자체추정)에 달하는 순대외자산이 한국의 견고한 대외건전성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평했다.
피치는 매년 한 차례 한국 신용등급에 대한 공식 평가의견을 내놓는다. 지난해에도 3월에 평가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작년 12월 이후 정치적 불확실성이 확대된 가운데 이번 결과가 발표됨에 따라, 한국의 대외신인도에 대한 해외투자자들의 불안도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세종=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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