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 1기 시절 무기화했던 철강·알루미늄 관세 카드를 또다시 꺼내 들었다. 추가 관세 조치로 11~12일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s)’ 부과 방침을 밝히면서 관세 전쟁이 전 세계로 확전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상대국이 보복관세로 맞대응할 경우 각국의 관세 정책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과 함께 새로운 무역전쟁을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은 9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10일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철강과 알루미늄에 25%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프로풋볼 결승전인 ‘슈퍼볼’이 열리는 뉴올리언스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기자들에게 이 같은 계획을 공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으로 들어오는 어느 철강이든 25% 관세를 부과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알루미늄에 대해서도 "그렇다"라고 답변했다. 관세에 대한 이야기는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제철의 미국 철강기업 US스틸 인수 관련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 ‘국가 안보 위협’을 이유로 철강에 25% 관세를, 알루미늄에 10% 관세를 각각 부과한 바 있다. 당시 한국은 미국과 협상을 통해 철강 관세를 면제받는 대신 수출 물량을 제한하는 쿼터제를 받아들였다. 카롤리네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새로 발표하는 관세는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기존 관세에 추가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조치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위협에도 꿈쩍 않는 유럽연합(EU)을 더욱 압박하기 위한 카드란 해석도 나온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때 EU를 알루미늄·철강 관세로 압박한 전례가 있다. 당시 EU는 이 조치를 수용하지 않고 보복 관세로 맞섰다. 미국의 관세 부과 조치에 반발해 유럽이 유예했던 미국산 상품에 대한 보복관세 조치를 재개할 가능성도 있다. EU는 미국 리바이스 청바지, 버번위스키, 할리 데이비드슨 모터바이크 등에 10%의 보복관세를 부과했다가 미국과의 관세 합의로 이를 철폐했다. 이들 제품에 대한 관세를 2024년 1월 재부과할 예정이었으나 2025년 3월까지 이를 유예한 상태다. 다만 중국은 이번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 조치로 인한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세계 최대 철강 생산국이지만 미국이 중국산 철강을 수입하는 규모는 크지 않아서다. 미국 철강 수요 중 중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0.6%에 그친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하나의 관세 무기로 상호관세를 도입하겠단 뜻을 전했다. 그는 오는 11일이나 12일에 상호관세를 발표할 계획이며 상호관세는 거의 즉시 적용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이 우리에게 130%(관세)를 부과하는데 우리가 아무것도 부과하지 않는다면, 그런 상황(아무것도 부과하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상호관세는 ‘호혜적이고 공정한 무역’을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내건 공약 중 하나다. 관세 체계를 고쳐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고 일자리와 부를 창출하겠다는 취지로 파악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상호무역법’ 도입을 공약했다. 외국이 미국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관세와 동일한 세율을 미국도 해외 수입품에 부과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미국의 현재 평균 관세율은 3% 수준으로 다른 나라와 비교해 매우 낮다. 트럼프 대통령은 EU에 대한 관세 인상과 함께 반도체·철강 등 산업 섹터별 관세 부과를 예고한 상태다.
그는 취재진에게 특히 자동차 관세 부과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의 미·일 정상회담 후 기자들과 만나 "그것은 항상 논의 대상이며 아주 큰 문제"라면서 "우리는 그것(차 관세)을 동등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무차별적인 관세 공격으로 전 세계는 무역 전쟁의 초입에 들어섰다. 지난달 20일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기 출범과 동시에 공격적인 관세 인상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는 지난 1일엔 미국으로 유입되는 불법 이민과 마약을 막지 못했다며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들어 오는 모든 수입품에 25% 관세, 중국산 모든 수입품에 기존 관세에 더해 추가 10%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캐나다와 멕시코에는 발효를 하루 앞두고 관세를 한 달간 전격 유예했지만, 중국에는 지난 4일 자정부터 관세 인상 조치를 적용했다.
미국의 대(對)중국 10% 보편 관세 인상에 맞서 중국도 10일 0시(현지시간)부터 일부 제품 보복 관세 부과 정책을 개시했다. 양국의 조기 협상 가능성도 점쳐졌지만, 구체적인 논의 진전 없이 ‘무역전쟁’ 2라운드가 시작됐다. 앞서 중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 문제에 대한 중국의 대응 부족 등을 이유로 지난 4일 오전 0시(미국 동부 시간)를 기해 중국산 수입품에 10% 추가 관세 부과를 강행하자 즉각 맞대응 조치를 발표한 바 있다. 미국산 석탄·액화천연가스(LNG)에는 15% 관세, 원유·농기계·대형차·픽업트럭에는 10% 관세를 더 물리겠다는 것이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뉴욕(미국)=권해영 특파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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