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미국이 전 세계 국가들을 대상으로 이르면 12일(현지시간) '상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표하면서 한국을 포함해 대(對)미 무역 흑자 폭이 큰 국가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한국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영향이 적을 것이란 관측도 있지만, 철강·알루미늄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예외 없이' 적용하겠다며 기존 한미 간 약속인 쿼터제가 유명무실해진 전례가 존재한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도 수출액 1위 품목인 자동차를 비롯해 의약품 등 일부 분야가 상호 관세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와 기대감을 높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털시 개버드 국가정보국장 취임 선서식에서 상호 관세 부과 행정명령에 서명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조금 뒤에 서명할 수도 있고, 내일 아침에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는 오랫동안 미국을 이용해 왔다"며 "그들은 우리에게 막대한 관세를 부과했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관세를) 부과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번 상호 관세 조치에 대해서도 "그들이 부과하는 만큼 우리도 부과한다. 아주 간단한 원칙"이라고 짚었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13일(현지시간)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방문 전에 상호 관세 정책이 발표될 것으로 믿는다"며 "상호 관세에 대한 세부 사항은 대통령이 직접 논의할 것이지만,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레빗 대변인은 "상호 관세를 부과하려는 이유는 매우 간단한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며 성경에 나오는 '황금률'을 인용해 상호 관세 조치를 정당화했다. 황금률은 마태복음 7장 12절의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구절이다.

한국의 경우 미국과 FTA를 체결해 대부분의 무역 상품이 무관세다. 상호관세 조치가 시행되더라도 상대적으로 영향권에 들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미 상무부 국제무역국(ITA) 따르면, 2024년 미국 상품 무역적자 폭이 가장 큰 국가는 중국으로 2954억달러를 기록했다. 한국은 8위로 660억달러로 집계됐다. 한국 입장에선 그만큼 무역흑자를 보고 있다는 의미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내달 4일(현지시간)부터 시행되는 철강·알루미늄 25% 보편 관세에 대해 "예외는 없다"고 밝혀 국내 산업계가 뒤집힌 바 있다. 안심하긴 이르다는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 첫 임기 당시 한국은 미국과 협상을 통해 철강 관세를 면제받는 대신 수출 물량을 제한하는 쿼터제를 수용해 현재 '263만t 무관세'를 적용받아 왔다.

일각에선 자동차와 의약품 등 일부 분야가 향후 상호 관세 적용 대상에서 빠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존재한다. 익명의 소식통은 이날 로이터통신에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6일 공화당 하원의원들과 회동하는 자리에서 자동차와 의약품을 비롯해 4가지 분야에서 상호 관세를 면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미 연방의회 하원의장도 이날 상호 관세 정책에서 자동차와 의약품 분야가 예외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미 자동차 수출은 347억달러(약 50조원), 반도체는 107억달러로 둘을 합쳐 65조원을 웃돌았고, 전체 대미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분의 1을 넘어섰다. 자동차는 전체 수출액 중 단일 품목으로도 1위다. 미국 자동차업체 포드의 짐 팔리 최고경영자(CEO)는 "현대차·기아가 사실상 관세 없이 차를 팔고 있다"며 최근 한국 차에 대한 관세 부과를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자동차 교역을 상호 관세 1순위로 지목했다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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