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리투아니아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등 발트3국이 구소련에서 독립한지 30여년만에 처음으로 러시아 전력망에서 빠져 나왔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가입 이후에도 러시아 전력의존도를 줄이지 못하고 있던 발트3국은 드디어 완전히 러시아의 입김에서 벗어나게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가 유사시 전력 공급 차단을 무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발트3국의 에너지정책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는 평가다.
발트3국은 지난 9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과 함께 러시아 전력망에서 벗어나 EU 전력망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마쳤다고 밝혔다.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는 '발트 에너지 독립의 날' 행사가 열렸고, 옛 소련 붕괴로 독립한 이후 34년만에 러시아 전력망 지배에서 벗어났다는 선포도 있었다.
행사에 참여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적대적 이웃과 연결된 전력망이란 쇠사슬은 이제 과거의 유산"이라며 "이번 전환은 위협과 협박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영상 연설을 통해 "러시아는 더이상 발트3국을 상대로 에너지를 무기화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원래 발트3국은 옛 소련 붕괴 이후에도 계속 러시아 전력망에 속해있었다. 2001년 러시아, 벨라루스와 함께 발트3국은 브렐협약을 체결해 러시아로부터 전기공급을 계속 받기로 약조했다. 그러나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병합 이후 EU 전력망으로 전환 논의가 시작됐고, 2018년부터 EU와 전력망 전환 계획을 세워 2030년대부터 러시아 전력망을 단절하기로 했다. 이후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전력망 전환 속도는 크게 앞당겨졌다.
발트3국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급하게 전력망 전환을 서두른 주된 이유는 러시아의 전력공급 차단 위협 때문으로 풀이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이후 체르노빌, 자포리자 등 우크라이나의 주요 원자력 발전소를 장악했으며, 무인기(드론)와 미사일 공습을 통해 전력망을 파괴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력망이 러시아의 공세에 취약했던 이유는 우크라이나의 원전 및 수력발전소 등 대부분이 옛 소련시대 때 건설돼 러시아가 전력망 정보를 많이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군은 개전 이후 발전소 뿐만 아니라 고압 변전소와 주요 전력망 지점들을 폭격해 우크라이나 주요 대도시의 정전과 단전을 유도한 바 있다.
이에따라 장기간 러시아 전력망을 쓰고 있던 발트3국에서는 러시아의 전력망 공격에 매우 취약하다는 우려가 제기돼왔다. 발트3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부터 러시아산 전력구매를 10% 내외로 대폭 줄이고, EU 전력망으로의 전환 준비를 가속화했다. EU도 총 16억유로(약 2조4000억원)의 전력망 전환 비용을 지원했다.
향후 EU 전력망에 대한 러시아의 파괴시도가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전력망 보호 방안은 EU가 풀어야 할 숙제다. CNN은 발트해를 통과해 발트3국과 북유럽 국가들로 이어지는 전력케이블, 광통신케이블 등 해저케이블 11개가 손상됐다고 최근 보도했다. 러시아는 부인하고 있지만 미국과 서방 정보당국은 러시아 정부가 석유 밀수선박인 일명 '그림자함대(Shadow fleet)' 유조선을 이용해 발트해 일대 해저케이블을 고의적으로 손상시키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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