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협상 개시에 합의했지만 유럽국가들은 안보우려로 시큰둥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빠른 종전을 목표로 러시아의 요구를 대부분 들어줄 경우 유럽 국가들은 커진 안보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종전 이후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유럽 내 안보는 유럽국가들이 책임져야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따라 유럽 각국은 앞으로 10년간 안보비용으로 최소 우리 돈 4500조원 이상을 투입해야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대러제재 이후 에너지 비용이 상승해 인플레이션 압박에 시달리는 유럽국가들의 경제적 타격이 불가피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2일(현지시간) 푸틴 대통령과 전화통화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종전협상을 즉시 개시하는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언론브리핑을 통해 "두 정상이 1시간30분에 걸쳐 전화 통화했다"며 "우크라이나 상황과 분쟁의 평화적 해결방안을 논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적대행위의 조속한 중단과 평화적 해결에 찬성했고, 푸틴 대통령은 분쟁의 원인을 제거해야한다고 언급했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러시아 정상이 직접 전화통화를 통해 종전협상 논의를 한 것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이후 처음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향후 신속한 종전을 위해 러시아의 요구사항을 대부분 수용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러시아의 요구사항은 우크라이나 내 점령지에 대한 실효지배권 인정과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거부 등이다.
유럽연합(EU)는 트럼프 행정부의 '속전속결' 종전안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카야 칼라스 EU 외교담당 고위대표는 최근 주요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조기종전보다는 우크라이나를 더 지원하는 것이 훨씬 돈이 적게 들 것이다. 러시아는 여전히 평화를 원치 않는다"고 말하며 확전 가능성을 열어뒀다. 익명을 요구한 EU의 한 고위관계자도 블룸버그통신에 "이대로 종전 된다면 러시아는 향후 5~8년 안에 나토 회원국 영토를 공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지난주 벨기에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방위연락그룹(UDCG)' 회의에서 "우크라이나 국경을 2014년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비현실적인 목표임은 인정해야한다"며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도 전쟁 협상의 현실적 결과물로 보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종전 이후의 유럽 안보에 대해서도 유럽국가들이 스스로 안보에 책임을 져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은 태평양에서 중국과의 전쟁을 억제하는 것을 우선시하고 있다"며 "유럽의 안보를 계속 미국에 의존하는 불균형적 관계는 청산돼야하며 유럽이 스스로 안보에 책임지도록 하는데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종전협상 이후 우크라이나에 배치될 평화유지군에 미군이 파견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평화유지군의 활동은 나토 임무의 일환이 돼선 안되며, 집단방위조항인 나토 조약 제5조의 조치에서도 제외돼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이에따라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난 이후 유럽국가들은 막대한 방위비용을 마련해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휴전 이후 우크라이나 방위를 위해서는 우크라이나군 재건, 평화유지군 구성과 유지비용, 각국의 방위비 증액 등이 필요하며 향후 10년간 최소 3조1000억달러(약 4500조원) 이상의 안보비용이 들어가야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어 "우크라이나 평화유지군은 현재 유럽 내에서 4만명 규모로 예상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는 이보다 훨씬 많은 20만명이 필요하다고 주장 중이고 재건비용 등을 생각하면 훨씬 많은 재원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앞으로 우크라이나 방위문제에 개입하지 않고 더 나아가 나토 탈퇴 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힐 경우, 러시아의 확전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는 진단도 나온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나토가 더이상 회원국들의 방위를 보장할 수 없게 되고 미국의 탈퇴 가능성 등이 현실화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다음으로 발트3국을 노리게 될 것"이라며 "러시아와 가까운 동유럽 국가들의 경우 나토와 EU의 안보보장을 믿지 못하게 되고 러시아와 개별협상을 벌이면서 EU도 분열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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