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유럽은 '악마와의 거래'를 재개할까. 천연가스 가격이 최근 2년래 최고 수준까지 치솟으면서 유럽 일각에서 러시아와 천연가스 거래를 재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16일(현지시간) 전했다.
네덜란드 TTF 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천연가스는 이달 10일(현지시간) 전날보다 4.1% 솟구친 MWh(메가와트시)당 58유로에 거래됐다. 이는 최근 2년내 최고치다. 최근 유럽 전역이 추운 날씨에 난방 수요가 커진 데다, 우크라이나가 자국을 지나가는 러시아산 천연가스관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말 유럽 내 일부 정치인들이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재개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에너지 비용을 낮추기 위해 러시아산 가스를 다시 유럽으로 들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터무니없는 주장은 아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의 경제학자 야리 스틴은 "전쟁이 끝나면 유럽의 국내총생산(GDP)이 0.5% 증가할 것이며, 그 대부분이 저렴한 천연가스 덕분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등 일부 찬성론자들은 러시아산 가스 공급이 재개되면 블라디미르 푸틴이 평화 협상을 진행하고 이를 준수하도록 유도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럽연합(EU)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국가인 독일의 뜻도 중요하다. 2023년 기준 EU 전체 GDP에서 독일이 차지하는 비중은 24%에 달한다. 독일 차기 총리로 유력한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교민주당(CDU) 당대표는 이코노미스트와의 최근 인터뷰에서 "현재로서는 러시아산 가스로의 복귀는 없다"고 밝혔으나,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진 직후 우크라이나 주요 동맹국인 에스토니아 등 동유럽 국가들은 즉각 반발했다. 에스토니아 외교부의 카드리 엘리아스-힌도알라 부국장은 CNBC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우리는 역사적으로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로 사용해 온 것을 봐왔다"며 "러시아는 이를 반복해 입증해 왔으며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좋은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실제 2021년 유럽이 수입하는 천연가스의 45%가 러시아산이었지만, 현재는 10% 수준으로 낮아졌다. 러시아도 타격을 받고 있다. 2022년 러시아 연방 예산에서 천연가스 판매가 차지하는 비율은 13%였으나, 현재 8%로 축소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유럽 국가들에 에너지를 '무기'처럼 휘둘러왔던 만큼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낮췄다는 의미가 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가스 계약을 연장할 뜻이 없지만 슬로바키아의 국영 가스회사가 우크라이나에서 별도의 자회사를 설립해 러시아산 가스를 수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2022년 러시아·유럽 관계 악화로 중단됐던 노드스트림1을 재개하는 방안과 같은 용량의 노드스트림2을 최초로 가동하는 방안 등도 함께 검토되고 있다.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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