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미국 국무부가 최근 홈페이지에서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전격 삭제하면서 미중 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이 문구는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양국 간 대만 문제에 관한 기본 원칙이었던 '하나의 중국' 정책을 상징하는 것이었으며, 44년 만의 이번 삭제 조치는 미중 관계의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당시 미국은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의 정식 수교를 단절했고, 대만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지위를 중국에 넘겨주며 유엔에서 퇴출된 바 있다. 미중 수교 이후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문구는 양국 우호 관계의 상징적 표현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삭제 조치의 파장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현 대만의 라이칭더 총통이 이전 지도자들보다 강경한 대만 독립파 인사로 알려진 가운데, 최근 국방예산을 GDP 대비 3%대까지 증액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중국과의 갈등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라이 총통은 "중국과 대만은 역사적 연원이 없다"며 하나의 중국 원칙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강경 발언은 중국 측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조치에 대해 전문가들은 중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전략적 움직임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대만을 지렛대로 활용해 중국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중국 측은 이러한 움직임이 대만의 독립 움직임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대만 정부는 겉으로는 미국의 이러한 움직임에 감사를 표명했으나, 내부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예의주시하며 긴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우크라이나가 종전 협상에서 완전히 배제된 상황을 우려하며, 자국도 미국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비슷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우려는 대만 정부의 신중한 대응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만은 적극적인 대미 협력 의지를 보이며, 미국으로부터 약 100억달러(약 14조원) 규모의 무기를 수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가 요구하는 인텔 지분의 TSMC 인수 등 경제적 요구에도 협상 모드로 전환한 상태다. 이는 대만이 처한 안보적 위기감이 반영된 결정으로 해석된다.
더욱이 미 국무장관 마코 루비오는 최근 의회에서 중국이 향후 5년 내 대만 침공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2027년 중국 인민해방군 창설 100주년을 기점으로 한 침공 가능성이 군사 전문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에 미국은 대만의 '고슴도치 전략'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고슴도치 전략은 적국이 자국을 침략할 경우, 치명적 전력손실이 가능할 수준으로 방어력을 키워 적국이 선뜻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하는 전략을 뜻한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는 아직 유사시 미군 파병 여부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가 일본과 함께 대만 유사시 대비 훈련을 강화하고 오키나와 인근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는 등 사실상 참전 가능성을 시사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직접적인 군사 개입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어, 대만의 우려를 더욱 깊게 하고 있다.
안보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대만과의 반도체 무역 협상 카드로 방위 문제를 활용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러한 안보와 무역을 연계하는 전략은 전통적인 미국의 동맹 전략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동맹국들이 미국의 안보 공약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될 경우, 향후 미국이 실제로 안보 위협에 직면했을 때 동맹국들의 지원을 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내에서도 이러한 안보와 무역을 연계하는 전략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접근이 단기적으로는 무역 협상에서 이점을 가져올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과 동맹 체제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차기 정부나 그 이후 정부에서 전통적인 동맹 정책으로의 회귀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이경도 PD lgd012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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