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독일 정치권이 군비 확충과 경기 활성화를 위해 700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규모의 특별 예산을 편성하기로 했다. 미국이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지원에서 발을 빼며 방위비 증액이 시급해진 가운데 일명 '부채 브레이크'를 풀어 자금 조달에 나선다.
4일(현지시간) 독일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과 사회민주당(SPD) 대표들은 연정 협상 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열어 인프라 투자를 위해 10년간 5000억유로(약 773조원)의 특별기금 조성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는 작년 독일 연방정부 예산 4657억유로를 넘는 규모다.
양당은 국방비 조달을 위해 필요한 경우 국내총생산(GDP)의 1%를 넘는 부채를 허용하도록 기본법(헌법)의 부채한도 규정을 개정하는 데도 의견을 모았다. 해당 규정은 재정건전성을 위해 연간 신규 부채를 GDP의 0.35%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국방비 확대 규모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미국이 유럽 대륙에서 안전보장을 축소하려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모든 군사적 지원 중단을 명령하면서 유럽 국가들의 방위비 증액이 시급해진 상황이다. 앞서 ARD 방송 등 현지 매체는 경제학자들로 구성된 자문단이 국방비 4000억유로, 인프라 투자비 4000억~5000억유로를 제안해 이를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대로면 GDP의 1%인 약 450억유로 이상을 추가로 국방에 투입할 수 있게 된다. 독일 정부는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일반 국방예산(연 500억유로)과 별개로 1000억유로(154조원)의 특별기금을 편성해 매년 200억유로 안팎을 사용해왔으나, 2027년께 고갈된다.
블룸버그 통신은 "독일은 일반적으로 지출 증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 때문에 이 발표는 유럽 방위에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차기 총리로 거론되는 프리드리히 메르츠 CDU 대표는 다음 주 연방의회에 특별기금 조성을 위한 기본법 개정안을 상정하겠다고 밝혔다. 메르츠 대표는 "우리는 더 많은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유럽은 성장해야 하고 스스로 방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양당은 SPD의 연립정부 파트너인 녹색당의 협력을 통해 이달 내 특별예산을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이다. 특별기금 조성과 부채한도 규정 개정은 연방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해야 한다. 그러나 새 의회에서는 국방비 확대에 부정적인 좌파당과 극우 독일대안당(AfD)의 의석수 합계가 개헌 저지선인 재적 3분의 1을 넘는다. 좌파당은 특별예산이 통과될 경우 헌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알리스 바이델 AfD 공동대표는 메르츠 대표가 총선 승리 후 국방비 확충을 논의하자 "선거 사기"라고 주장했다.
오수연 기자 sy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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