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멕시코, 캐나다에 25% 관세폭탄을 던진 뒤 불과 이틀 만에 이를 한 달가량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관세 면제 시한은 각국에 상호관세를 예고한 4월2일까지로 못박았다. 관세발(發) '트럼프세션(트럼프 대통령 정책으로 발생하는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하루 단위로 바뀌는 롤러코스터 관세 정책에 외신은 "한 편의 사이코드라마"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멕시코, 캐나다 수입품 중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의 적용을 받는 모든 상품에 대해 4월2일까지 관세를 면제하는 내용을 담은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번 관세 일시 유예 조치는 미국이 지난 4일 두 국가에 한 달 유예했던 25% 관세를 발효한 지 이틀 만에 나왔다. 백악관은 관세 부과 하루 만인 전날 멕시코, 캐나다산 자동차 관세를 한 달 면제한다고 밝힌 데 이어 하루 뒤인 이날 면제 대상을 대부분 품목으로 확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행정명령 서명에 앞서 자신이 만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과 통화한 후 멕시코가 USMCA에 해당하는 모든 상품에 관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데 동의했다"며 "이 협정은 4월2일까지 유효하다"고 말했다.

4월2일은 트럼프 대통령이 각국의 관세와 비관세 장벽 등을 감안해 이에 상응하는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예고한 시점이다. 멕시코, 캐나다는 물론 이들 국가에 생산 기반을 둔 자동차 업체 등 미 기업들은 일단 시간을 벌었지만, 한 달 뒤 또다시 고율 관세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도 이를 염두에 둔 듯 "멕시코와 캐나다가 펜타닐에 대해 충분히 좋은 일을 하길 희망한다"며 "새로운 관세가 적용될 때 이 부분의 대화는 (협상) 테이블에서 제외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백악관 측은 USMCA 적용을 받는 캐나다산 수입품의 38%, 멕시코 수입품의 절반이 관세 유예 대상이라고 밝혔다. USMCA의 적용을 받지 않는 많은 캐나다산 에너지 제품에는 10%의 관세가 부과된다. 다만 CNN은 미국이 그동안 USMCA에 해당하지 않는 품목에도 실질적으로 관세를 부과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일시 유예한 배경에는 북미 3국 공급망이 자유무역협정(FTA)인 USMCA에 따라 고도로 통합돼 미국 역시 관세 조치로 인한 경제적 타격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미국 빅3 완성차 업체가 전날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 유예를 요청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미국 내에서도 관세 인상으로 물가가 오르고 경기가 둔화하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 둔화 속 물가 상승)' 우려가 커지고 있다. 멕시코, 캐나다뿐 아니라 미국도 경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트럼프세션 전망도 등장했다.

미국 기업들은 이미 관세 불확실성으로 보수적인 경영 활동에 나서고 있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올해 1월 무역수지 적자는 1314억달러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폭격으로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수입품 사재기에 나선 결과로 분석된다. 미 공급관리자협회(ISM)는 2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 보고서를 통해 "고객(기업)들이 관세 불확실성으로 신규 주문을 중단하고 있다"고 썼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달 철강·알루미늄 등 품목별 관세에 이어 다음 달 상호관세 부과를 공언한 만큼 경제적 불확실성 확대 우려에도 '막가파식' 관세폭주는 지속될 전망이다. 불확실성을 극대화해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계산된 '매드맨(광인)' 전략이란 분석에도 전 세계는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상황이다.

로이터 통신은 트럼프 행정부와 협상하는 멕시코, 캐나다 측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미국이 관세를 부과하는 이유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며 "30일마다 반복되는 사이코드라마 같은 관세 협상이 상대방을 좌절하게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미국)=권해영 특파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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