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전 세계적으로 '콜포비아'(전화공포증)를 겪는 Z세대가 늘고 있다. 문자메시지나 이메일 등 텍스트 기반 소통을 선호하고, 전화 통화는 기피하는 현상을 뜻한다. 콜포비아를 겪는 이들은 전화벨이 울리면 불안감을 느끼고 심한 경우 식은땀과 함께 심장이 빨리 뛰는 신체적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이 같은 현상이 확산함에 따라 해외 일부 교육기관에선 전화 통화에 대한 자신감을 북돋아 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 경제매체 CNBC는 최근 Z세대 사이에서 전화를 받기 전 불안감을 호소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실제로 지난해 8월 영국 소비자사이트 유스위치(Uswitch)가 자국 성인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8~34세 응답자의 23%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답했다. 또 이들 중 61%는 통화보다 문자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노팅엄 칼리지의 진로상담사 리즈 백스터는 "Z세대는 전화를 걸고 받는 경험이 부족하다"며 "문자 메시지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소통하는 데 익숙해지면서, 전화 통화를 활용하는 빈도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 반에 25~30명의 학생이 있을 때, 최소 4분의 3은 전화 사용에 대한 불안을 경험한다"고 덧붙였다.
Z세대가 통화를 두려워하는 주된 이유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 때문으로 보인다. 노팅엄 칼리지 학생 도나(16)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세대는 문자에 익숙해서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매우 불안하다"며 "전화가 오면 긴급상황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또 다른 학생 잭 켄트(18)는 "벨소리가 울리면 긴장되기 때문에 휴대전화를 대부분 무음 상태로 설정 해둔다"고 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대면 소통이 줄어들면서 통화의 필요성은 더욱 감소했다. 그 결과, Z세대는 전화 통화를 더욱 부담스럽게 여기게 됐다. 백스터는 "코로나19로 인해 2년 동안 사회적 상호작용이 줄어들었고, 이는 콜포비아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며 "오랜 기간 대면 소통 없이 메시지만 주고받다 보니, 음성 통화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 됐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국내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플랫폼 '알바천국'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Z세대 응답자의 40.8%가 '콜포비아를 겪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텍스트 소통 선호율은 ▲2022년 59.3% ▲2023년 69.9% ▲2024년 73.9%로 꾸준히 상승한 반면, 전화 소통 선호율은 ▲19.9% ▲14.3% ▲11.4%로 하락세를 보였다.
콜포비아가 확산하면서 해외 일부 교육기관에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세미나를 운영하고 있다. 노팅엄 칼리지에서는 취업을 앞둔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화 훈련 세미나'를 열고 있다. 세미나에서 학생들은 병원 예약 전화나 직장 병가 신청 등 일상적인 상황을 기반으로 다양한 시나리오를 연습한다. 특히, 이들은 등을 맞대고 앉아 음성만으로 원활하게 의사소통하는 법을 익힌다. 백스터는 "단 한 번의 교육만으로도 학생들의 자신감이 눈에 띄게 향상된다. 전화 받는 것이 무서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실제 통화 방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심리학자 칼리 도버 또한 콜포비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했다. 그는 "통화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완벽할 필요는 없다"며 "처음에는 간단하게 연습하고, 점점 더 어려운 주제의 전화로 확장해 나가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도버는 ▲통화 경험 늘리기 ▲ 통화 중 실수를 지나치게 걱정하지 않기 ▲공포가 극심할 경우 전문가의 도움 받기 등을 제안했다.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최신순
추천순
답글순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