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K-VIBE] 건축가 김원의 세상 이야기⑭ 가장 가깝고 가장 먼 곳
    성도현2 기자
    입력 2024.10.29 16:40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김원 건축가
건축환경연구소 광장제공, 사진가 김중만 촬영

올해로 딱 20년 전 일이다. 내게는 가장 가깝지만 가장 먼 곳이라 할 수 있는 평양에 다녀온 일을 추억해봤다.

북한 평양. 탑승권에 평양이라고 선명히 적힌 게 무척이나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로 우리와는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가장 멀게만 느껴지던 지명이다.

아리랑2호가 촬영한 평양시내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그런데 인천공항을 오전 열 시 반에 떠난 대한항공 전세기는 서해상 직항로로 530킬로미터를 날아 단지 56분 만에 평양 순안공항에 우리를 내려줬다.

만일 평양-서울을 직선으로 난다면 사실 서울-대전 정도밖에는 안 된다. 이 가까운 곳을 마음대로 다니지 못한 채 우리는 80여년을 그냥 보내고 있다.

대한항공 전세기 평양 탑승권
김원 건축가 제공

실제로 그렇게 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트랩을 내리면서, 교황님이 서울에 오셨을 때처럼, 미국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갔을 때처럼, 꿇어 엎드려 땅바닥에 입 맞추고 싶었다.

평양 도착 며칠 전에 통일교육원에 '방북인사 소양 교육'을 받으러 갔을 때만 해도, 도무지 내가 평양에 간다는 일이 실감 나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1987년에 내가 설계한 건물(*편집자 주 : 김원 건축가는 강북구 수유동에 위치한 통일연수원을 설계한 바 있다)에 반나절 학생으로 교육받으러 왔다는 사실에 묘한 기분이 들어 교육보다도 건물을 둘러보느라 더 시간을 보내고 왔다. 그곳에서 말로만 듣던 순안공항에 우리 비행기를 타고 와 내린 것이다.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지척이다.

과거가 어찌 됐건 마중 나온 북측 '민화위'(민족화해조국평화통일추진위원회) 사람들은 친절하고 따뜻했다. 그냥 미소 짓는 환대가 아니라 그들 말로 '렬렬하게' 환영했다.

남쪽에서는 우리가 평양에 어린이 병원을 지어준 것이 완공(*편집자 주 : 김원 건축가는 사단법인 남북 어린이어깨동무 권근술 이사장, 서울대병원 등과 함께 평양 어깨동무 어린이병원 건립에 참여했다)돼서 준공식에 초청받았다는 설명이 아직은 잘 먹혀들지 않는 분위기였다.

출발하기 전날 밤에만 해도 나의 환송회라고 모인 자리에서 한 친구가 술에 취해 떠들었다.

"나는 그놈들 도와주는 것 절대 반대야."

그쪽이나 이쪽이나 머리가 굳어서 융통성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그렇게 다른 세상에서 한 시간 만에 또 다른 세상에 내려 환대받으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양쪽이 모두 경직돼 있을 때는 오로지 한쪽이 미소 지음으로써만 그 경직을 풀 수 있다.

어린이 열 명을 포함한 '어깨동무 재단' 대표단 90명은 세 대의 버스에 분승해 현대자동차 트라제가 경광등을 켜고 선도하는 데 따라 평양 시내로 향했다.

공항 근처 길거리는 새로 지은 아파트들로 잘 정돈돼있으나 그 거리가 끝나고 시내까지는 얕은 산언덕과 논밭을 지나는 시골 풍경이다. 경지 정리가 잘 된 것이 눈에 들어오고 지금 막 모내기를 끝낸 듯 논에는 작고 푸른 벼포기들이 연약하게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시 외곽의 '3대혁명전시관'이라는 거대한 시설을 지나니 시내에 들어온 것 같았다. 차들이 많지도 않지만, 신호등 없이 그 유명한 미녀 교통안내원들이 수신호로 다른 차들을 막아줬다.

대동강 가르는 평양
넓고 평평한 지역이라서 평양으로 불렸다는 북한의 수도, 인구 200만 북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 평양은 보통강이 시내를 휘감아 돌아 대동강 본류와 합류하는 전형적인 대도시 모습이다. 양각도에서 바라본 전경은 멀리 대동교(앞쪽)와 옥류교 너머 능라도 경기장이 보인다. 김일성광장(왼쪽)과 주체사상탑을 사이로 양교 사이에서 뿜어대는 대형 분수대는 이곳이 마치 서울인 양 착각을 갖게한다. /김병만/북한/ 2003.10.21 (서울=연합뉴스) kimb01@yna.co.kr

완전히 우리가 옛날 높은 사람 지나갈 때 신호를 통제하듯이 대로건 교차로건 거의 100㎞/h 정도로 질주, 우리가 묵을 양각도 호텔까지는 30분 정도밖에는 안 걸린 것 같다.

호텔에서 점심을 먹고 즉시 관광에 나섰다. 가장 먼저 '만경대 고향집', 그리고 '주체사상탑', 다음이 개선문이다.

아마도 그들이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었던 순서대로가 아니었을까 싶다. '고향집'은 김일성 주석의 고향 집이며 생가라고 한다. 도시 서남부의 끝 대동강 변에 만경대라는 언덕 아래 부농의 초가집이 있고 뒤편 언덕의 만경각에서 내려다보이는 대동강의 풍경이 대단히 아름다운 곳이다.

'주체사상탑'은 대동강 변에 세워져서 앞뒤 사방 가리는 게 없이 엄청난 높이가 강조돼있다.

김일성 주체사상탑
김일성 주체사상탑을 돌아보고 있는 제주도민 방북단./사진제공:서재철/교류 2002.5.15 (제주=연합뉴스) khc@yna.co.kr (끝) <저작권자 ⓒ 2002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탑신의 높이가 150미터이고 그 위에 20미터의 횃불을 올려놓았으니 총 높이는 170미터, 조각과 형태는 그저 그렇고 높이 하나만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150미터 탑 꼭대기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면 짓다 말고 버려진 100층짜리 류경호텔 말고는 여기에 필적할 만한 높이의 물건이 없다. 5.1 인민체육관이나 인민대학습당 등 여러 개 흩어진 대규모 시설들이 눈에 들어오는 이외에는 대부분이 모형처럼 잘 정돈된 아파트들이다.

아파트들은 대개 500가구 단위로 주구(住區)를 이루어 배치된다는데, 아마도 내가 보기에 한 주구는 탁아소와 인민학교와 밥 공장을 중심으로 한 주거형 공장 형태의 기본 배치를 갖고 있지 않나 보인다.

그렇게 함으로써 직주근접(職住近接)을 이룩하고 작업의 효율을 높이며, 시내 공공교통기관의 수송량을 절대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평양 시내의 교통량을 많이 유발하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사람도 차량도 통행이 뜸하다. 대낮인데도 거의 정적에 감싸인 도시처럼 조용했다. 도시의 하늘은 맑고 깨끗해 보였다. 그 하늘 아래 넓은 녹지들이 펼쳐져 있고 건물들은 띄엄띄엄 간격을 유지하며 서 있었다.

다만 눈에 가장 크게 뜨이는 것은 동평양화력발전소의 높은 굴뚝에서 뿜어 나와 바람을 타고 도시 상공을 가로지르는 유연탄의 매연이다.

하여튼 그 덕으로나마 당시 북한의 전력 사정은 2, 3년 전보다 월등히 좋아졌다고 한다.

무슨 회담 대표 등으로 여러 번 이곳에 온 적이 있는 외교관 친구의 말로는 상급 회담(相及-장관급회담) 때도 회의장에 전기가 나가서 촛불을 켠 적이 있었다니 그것도 보통 일은 아니다.

개선문은 개선 거리와 모란봉 거리의 교차점에 있으면서 김일성경기장 광장을 중심으로 한 청년 공원, 어린이공원의 입구가 된다. 건축의 발상은 촌스럽지만, 주체적 사상성을 표현하느라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궁륭 형의 개구부 상단에는 현판 대신에 지금은 안 부른다는 옛날 '국가' 1, 2절이 앞과 뒤에 새겨져 있었다. 내가 어렸을 적에 여성 군관에게서 배운 노래다.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국' 개선 거리는 10차선의 대로인데 우리 인원 100명이 개선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대로를 다 차지하고 있어도 차 한 대 지나가지 않아 신기했다. 차들이 정말 그렇게 뜸하게 다니는지, 교통을 통제하고 있었는지….

평양 양각도호텔
연합뉴스 자료사진

우리가 4박 5일을 묵었던 양각도(羊角島) 호텔은 최신의 최고급 호텔이란다. 사실 시내의 고려호텔이 더 고급이라지만, 이곳은 대동강 한가운데 떠 있는 양(羊)의 머리 뿔(角) 모양으로 생긴 작은 섬이라 보안 유지에는 적격의 위치라고 짐작한다. 긴 삼각형의 평면에 높이가 47층이니, 평양에서는 100층으로 짓다 만 류경호텔과 고려호텔 다음으로 가장 높은 건물이다.

외부에 알루미늄판을 붙여서 여느 다른 건물들보다 시공 상태가 깔끔해 보였다.

내 방은 32층 25호실, 응접실이 딸린 트윈 베드에 한 사람당 150 유로(약 180달러)라니까 꽤 비싼 방이다. 섬 한 가운데라 호텔 양편으로 대동강이 유유히 흐른다. 더구나 주변에 다른 건물이 없으니 32층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은 아름답고 평화롭다.

그러고 보면 평양은 물의 도시라는 인상이 짙다. 서울의 인상이 주변의 산들로 다가오는 것이라면, 평양은 오히려 시내를 달리며 자주 부딪히고 건너게 되는 강물의 인상이 강하다.

대동강
연합뉴스 자료사진

대동강은 도시의 북서쪽에서 흘러 들어와서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동남으로 빠지는데, 그 줄기가 갈라져 도시 한복판을 한 바퀴 휘돌아 다시 대동강에 합쳐지는데, 이 강을 보통강이라고 한다.

대동강과 보통강은 크게 곡선을 그리면서 도시 한복판을 유유히 사행(蛇行-meandering)하는데 그것은 이 벌판이 국면이 넓은 평야 지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물의 유속은 느리고 물의 흐름이 오래 머무르므로 강물 하나가 여러 개로 가지 치며 빙빙 돌아 도시 전체를 강변에 뜬 듯이 보이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강변에 유휴지가 많고, 이를 잘 이용한 도시계획 덕분에 경관이 수려하며 쾌적하다.

더구나 우리처럼 강변에 바짝 붙여 아파트를 지어 병풍을 두르는 탐욕적 작태를 막을 수도 있고 또 일찍부터 통제되고 계획된 사회 분위기에서 지도자와 당의 교시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고 집행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잘 정돈된 무대장치 같은 도시가 탄생한 것으로 보였다.

거기다 1982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우상화 정책이 도시계획에까지 힘을 실어줘서 - 아니 도시 개조계획이 우상화를 선도해 - 그 무대장치에 더욱 강렬한 질서를 부여했다.

옛 평양성 내성은 대부분 없어지고 일부만 남아 있지만 대동강 쪽에는 대동문이, 보통강 쪽에는 보통문이 남아 옛 성의 일부를 보여줬다. 두 곳이 모두 문루(門樓)는 위엄이 있으나 전쟁 때 파괴된 것을 중건했다는 이야기이고, 다만 옹성의 축성 구조가 전형적 고구려를 보여줬다.

평양시 가까운 주변에는 높은 산이 없고, 귀에 익은 만수산 대성산 등은 아주 멀리 보였다.

그러므로 축성은 주로 강변을 따라 이뤄지며, 산보다는 강물이 방어를 위한 지형지물로 활용됐고 그사이의 낮은 산들만이 문루나, 옹성이나, 장대 등으로 활용됐다.

나는 터가 넓고 웅장한 이 도시가 통일한국의 수도가 될 경우를 상상해 봤다. 또는 베를린처럼 통일 후에 행정수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1948년 9월 8일 제정된 북한 헌법 103조에는 '조선인민공화국의 수부는 서울이다'라 하고 평양을 임시수도로 했었다. 그러다가 24년이 지난 1972년 12월 27일의 최고인민회의 제5기 제1차 회의에서 헌법을 개정하여 정식수도로 됐다고 한다.

우리도 언제 헌법을 개정해 수도 이전 문제가 거론될 수 있을는지, 옛 성의 유구를 바라보며 잠시 상념에 젖었다.

여러 갈래의 물줄기를 따라 수변공간을 경관 요소로 잘 이용한 덕에 녹지가 많은 도시 공간은 여유로워 보였다. 다만 유속이 느린 만큼 토사의 퇴적도 많아져서 하상(河床)이 높아진 듯 곳곳에 준설선들이 배치돼 있으나 열심히 작업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거리에 자동차도 많지 않으니 공기도 깨끗하고 기본적인 대도시의 암소음(暗騷音)이 없어 낮이나 밤이나 아주 조용했다. 도무지 공칭 200만이라는 인구가 모두 어디서 무얼 하는지 도시 전체가 생명력이 없이 가라앉아 차분하기만 했다.

밤에 창밖을 내다보면 야간조명의 조도가 낮고 시가지 전체가 어두워서 별들이 반짝이는 게 설악산만큼이나 초롱초롱하다.

첫날밤의 환영 만찬은 우리를 여러모로 깜짝 놀라게 했다. 서울에서부터 이날 만찬을 위해 준비해 간 정장 차림의 신사·숙녀들에게 이 호텔의 대연회장은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웅장한 실내 공간과 휘황한 샹들리에와 한복으로 아름답게 멋을 부린 북측 접대원들과 최고의 술, 맛있는 음식으로 정중하고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특히 남남북녀란 말이 손색이 없도록 이 젊은 여인들은 아름답고 교양 있고 세련됐다. 아무리 선발돼 왔고 특수교육을 받고 행동을 제한당하고 있다고 해도 이들은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쳐 있었다.

그 점이 나에게는 정말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만일 그들이 깡마르고 주름투성이에 촌스러운 한복 차림으로 눈치를 보며 쭈뼛거렸다면 우리는 얼마나 서글펐겠는가?

아침에 다시 호텔을 나와 섬 주변을 둘러보니 여러 곳에 안내원 선생들이 서 있지만 별로 제지하지 않고 돌아다니는 대로 내버려 뒀다. 전에 듣던 것보다는 부드러워진 것 같기도 하고 섬 안에서 제가 가 본들 어디까지 가겠느냐며 두고 보는 것 같기도 했다.

호텔 앞에는 골프장이 있다. 파 쓰리(par 3)로 나인 홀을 돌게 했다.

구두와 채를 빌리고 캐디피를 포함한 골프장 이용료가 25유로, 약 4만원이다.

북한 평양에서 골프를 쳤다는 사실이 신기해서 한번 해 볼까 하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뭘 여기까지 와서…. 강둑을 따라 조깅 코스가 있고 골프 연습장이 또 있었다. 대동강 물을 향해 공을 때리면 공은 물 위를 날아가고 빠진 공은 물밑에 쳐 놓은 그물로 나중에 건져 올린단다.

섬의 반대편 끝에 양각도 축구경기장이 있고 우리 호텔과 사이에는 2년마다 열린다는 평양국제영화축전을 위한 전용 극장이 있었다. 당시는 축전 기간(9.12-9.20)이 아니니까 비어 있고 잠겨 있다.

우리네처럼 축전 기간 이후에는 (평소에는) 어떻게 활용하느냐 하는 걱정 없이, 축전에만 쓰는 그야말로 전용관이었다.

김정일이 1만 5천개의 영화필름을 소장할 정도로 잘 알려진 영화광이므로 축전은 지도자 동지의 절대적인 성원 하에 치러지는 것 같다. 다만 문제는 북한 사람 자신들은 이 축전을 즐기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항상 검열과 번역에 문제가 생기며 그런 이유로 100여명의 북한 관객만이 모든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린다고 한다.

1987년부터 시작해서 방문 당시인 2004년에 9회를 맞는 이 축전에는 40여 국가에서 90여 편의 영화가 출품됐다. 당시에 나는 부산국제영화제(PIFF)의 전용관 짓는 일로 외국 사례를 모으는 중이라 외형이나마 잘 봤다는 생각으로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마침 주일날이라 나는 전부터 기대했던 대로 장충성당에 가겠다고 신청했다. 천주교인은 장충성당, 기독교인은 봉수교회, 그리고 나머지 무교인은 단군릉에 가도록 나누어졌다. 전체 90명 일행 중 12명이 성당행 차에 올랐다. 가는 길에 평양 지하철을 구경시켜 줬다.

두 개의 노선이 있다는데 우리가 간 곳은 1970년에 먼저 만든 것이라 100미터를 내려가고 다음에 만든 것은 150미터 깊이라고 했다. 하여튼 모두 가파른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그 엄청난 깊이에 놀랐다.

모스크바의 지하철도 이랬다. 우리는 옛날에 이것이 핵전쟁을 대비한 비상대피소를 겸하여 만들어졌다는 보도를 본 일이 있었다. 부흥역에서 영광역까지 '세킬로'(3km)를 왕복해 타봤다. 물론 일반 시민들과 섞이지 않도록 우리만 전용칸에 태웠다.

성당은 알던 대로 공소예절만을 지낸다. 약 200명의 북한 신자가 작은 성당을 가득 채웠다. 입당과 말씀의 전례, 그리고 모든 성가는 우리 것들과 똑같다. 다만 성찬례에 와서 예절은 끝났다. 신부님이 없으니 영성체가 될 수가 없다.

마침 오늘이 '성체 성혈 대축일'인데, 다만 그 점이 유감이었다. 2, 3년 전엔가 함세웅 신부님으로부터 바티칸에 북한 신학생 두 명이 공부하러 왔다가 적응을 못 하고 그냥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참 암담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서 이번에 그렇게 실망스럽지는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언젠가 여기 우리 신부님이 본당신부로 부임해 혹시라도 숨어 있을 진짜 신자들에게 고백성사와 영성체를 줄 수 있을 날이 오기를 기도했다.

우리 공소예절이 일찍 끝났기 때문에 우리 차에 기독교인들을 태우러 봉수(烽燧)교회로 갔다. 가톨릭과는 달리 교회에는 목사님이 예배를 주관하고 있어서 아주 활기가 있어 보였다.

평양 봉수교회 전경
연합뉴스 자료사진

우리 일행뿐 아니라 연변과학기술대 동포 일행들이 와 있어서 찬송과 기도와 박수 소리가 요란했다. 하기야 평안도라면, 특히 평양이라면 우리나라로서는 개신교를 처음 받아들인 선각자들의 고향이 아니던가?

봉수교회에서 다른 일행들과 합류하여 점심을 먹으러 유명한 옥류관으로 갔다. 이 집 냉면 맛에 대해서는 일찍이 많이 듣던 바다.

수령 동지(?)께서 직접 현지 지도하신 맛이라니 오래전부터 한번 먹고 싶었다. 나는 온면 100그램, 물냉면 100그램, 쟁반 냉면 100그램을 시켜서 고루고루 맛을 봤다. 보통 사람은 200그램을 먹고 적게는 100, 많게는 300을 시켜 먹는다는데 나는 300을 시켰으니 약간 많았지만 모두 색다른 맛이어서 재미가 있다.

서울의 평양냉면과는 아주 맛이 다르다. 전혀 조미료를 쓰지 않은 이유도 있을 것이고 가위로 자르지 않은 이유도 있을 것이다. 또 식초는 고명을 옆으로 밀어내고 꼭 면발에다 뿌려야 하며, 겨자는 꼭 국물에다 풀어야지 면발에 묻히면 안 된다 했다.

그런 다음에 양손으로 젓가락을 한 짝씩 잡고 - 옛날 우리 자장면 비비듯이 - 비벼야 한다며 시범을 보여주는 접대원 동무의 미모에 반한 것도 맛이 다른 한 가지 이유는 될 것이다.

식후 산책이라며 을밀대(乙密臺)를 보여줬다. 6세기에 고구려 사람들이 쌓은 평양성 내성의 장대라고 한다.

평양 을밀대
서해문집 제공

을밀대가 올라앉은 성벽의 일부는 틀림없는 고구려식 돌쌓기로 된 고구려 성이다. 그래서 아주 촘촘하고 단단한 성 쌓기가 스케일과 솜씨에서 남쪽과 다르다. 한마디로 스케일은 크면서 터치는 섬세하다.

이것이 바로 수나라 당나라 및 돌궐, 거란 같은 엄청난 외세에 대항하기 위한 강인함이었던가.

안내원의 설명에 따르면 한때 세계 최대의 도시를 뽐내던 장안(長安)의 성벽 길이가 19㎞였던 데 비해 평양성 내성이 23㎞였다.

그러나 사실 우리 일행에게는 그보다는 모란봉과 을밀대와 부벽루는 "이수일과 심순애"로 더 친근하다.

을밀대에서 내려다보는 대동강도 매우 아름다웠다. 건너편 언덕에는 숲 사이로 북성의 북장대(北將臺)였다는 최승대(最勝臺)라는 정자가 아름답고, 강 아래쪽으로는 청류 다리라는 현수교(suspension bridge-이 사람들은 '쇠밧줄다리'라 한다)가 특히 아름다웠다.

기술로나 미적 감각으로나 우리의 현수교들보다는 어느 모로나 한 수 위다.

대동강 변 문수 거리에 미국 정보함 푸에블로호가 묶여 있어 외세 축출을 부르짖는 전시관으로 쓰이고 있다. 이 자리는 병인신미양요(丙寅申未洋擾) 때 미국 해군함 제너럴셔먼호가 격침된 곳인데 그 격침 작전에는 김일성의 조부 김모가 주동했다고 하니 역사적인 장소라고 할만하고 김씨 일가의 대를 이은 독립운동의 증거라고 선전한다.

다만 놀라운 사실은 원산 앞바다에서 나포된 푸에블로호를 어떻게 여기까지 끌어다 놓았는지 하는 점이다.

육로로 그걸 운반했을 리는 없고, 그렇다면 동해와 남해와 서해안을 멀찌감치 돌아 공해상으로만 이동을 했을 텐데 미국의 인공위성이 그걸 알았다면 그냥 두었을 리 없고, 몰랐다면 그건 또 말이 안 되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는다.

오후 시간은 동명왕릉 구경이었다. 동명왕릉은 우리가 서울로 돌아온 직후인 2004년 7월 1일에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고구려 유물-동명왕릉
연합뉴스 자료사진

고구려 시조 고주몽-동명성왕의 능은 시내에서 차로 40∼50분 거리 떨어져 있다.

남쪽에 알려지기는 '진파리 고분군'인데 안내원의 설명으로는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이 집안에서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시조의 능을 이장했다는 것이다. 천도에 따라 국조의 능묘를 이장하는 것은 고구려 당시의 풍습일 뿐만 아니라 왕조의 정통성 확보와 위언의 과시에도 필요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하여튼 15기의 고분군 가운데 가장 큰 것을 동명왕릉이라 하고 나머지 것들을 충신들의 무덤이라 하여 주변에 시위하게 했다.

그것을 1992년에 개건하고 진입로, 진입광장, 능 주변의 문관석, 무관석을 단장하고 전시관과 정릉사(定陵寺) 절을 새로 지었다.

봉분의 기단석은 전형적인 고구려식 돌쌓기다.

정방형의 장대석으로 사방을 두르고 경사지게 쌓으면서 단마다 조금씩 후퇴시켜 안정감을 주었다. 92년에 새로 만들어 세운 문인석과 무인석들은 돌을 조각한 솜씨가 현대적이면서 위엄이 있어 훌륭했다.

무덤 주변의 소나무 숲이 일품이고 우리에게 보여준 여러 개 충신 묘 중의 하나인 온달장군과 평원왕 공주(평강공주)의 묘도 전형적인 고구려식 적석묘에 천정을 줄여나간 돌쌓기가 편안해 보인다.

어린 시절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던 부왕의 농담이 진담이 되어 바보에게 시집가게 된 역경을 이겨내고 바보 남편을 장군으로 출세시켰다던 우리나라 대표 여성 평강공주의 설화가 여기 사실로 눈앞에 재현됐다.

정릉사라는 절은 부근에 주춧돌만 흩어져 있던 자리에서 정릉(定陵)이라 새겨진 기와 편이 발견됐다 해, 이것이 동명왕릉을 이장할 때 능 위치를 정한 기념 사찰이라고 보고, 92년 중건할 때 그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하여간 절의 규모는 장대하고, 건축은 고졸한 구조양식을 재현해 놓았다. 검은색의 정장 위에 붉은 가사 장삼을 어깨띠처럼 걸치고, 머리는 깍두기 모양으로 깎은 주지스님이 우리를 맞아, 절의 유래를 설명하고 대웅전으로 안내하여 절과 시주로 공양을 드리게 했다.

기분이 그래서인지, 분위기 탓인지, 도무지 서투른 연출을 보는 것 같아 외면하고 말았다. 그렇거나, 저렇거나, 나 자신의 이런 집착들조차도 모두 부처님의 눈에는 소인배로 보일 것은 분명했다.

저녁밥을 먹으러 모처럼 시내에 있는 민족 식당에 안내받았다. 음식이 맛있다고 소문난 곳으로 평양 의과대학 건너편에 있고, 그 바로 옆에는 윤이상 음악당이 있는 동네다.

이곳 접대원 동무들은 모두 대단한 미인들로 우리 호텔 사람들보다 좀 더 개방적이고 쾌활하다. 술도 자진해서 따라 주고 자신 있게 동반 촬영에도 응하여 적극적인 포즈를 취하는가 하면, 남이 안 보는 데서는 살짝 팁을 받아 감추기도 한다.

음식 역시 듣던 대로 남쪽 관광객의 입맛에 맞도록 시험 개발을 하는 중인 듯 서울 취향이다. 예컨대 주요리인 불고기 양념의 고기와 해산물 모둠은 남한발 북한식 퓨전요리다.

나에게는 특히 '쇠고기 오겹살'이 맛있었는데 그놈이 옆에 따로 놓은 오징어와 섞이니까 영락없는 횡계마을의 '오삼(오징어와 삼겹살)불고기' 맛이 나는 것이다. (계속)

김원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

▲독립기념관·코엑스·태백산맥기념관·국립국악당·통일연수원·남양주종합촬영소 등 설계. ▲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삼성문화재단 이사, 서울환경영화제 조직위원장 등 역임. ▲ 한국인권재단 후원회장 역임. ▲ 서울생태문화포럼 공동대표

* 자세한 내용은 김원 건축가의 저서 '행복을 그리는 건축가', '꿈을 그리는 건축가', '못다 그린 건축가'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정리 : 이세영·성도현 기자>

rapha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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